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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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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마니아를 찾아서 (12) 천체관측 마니아 염관식씨

밤마다 ‘별 헤는 남자’
14살 때 별 관측 시작…15년 걸려 직접 천체망원경 만들어

  • 기사입력 : 2009-04-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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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대 운동장에서 천체망원경을 설치하고 있는 염관식씨.


    소년은 그 책을 10번도 넘게 읽었다. 아버지가 사 오신 ‘학생대백과사전 1권-우주와 천체편’. 같은 내용과 그림인데도 소년은 책을 펼칠 때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처럼 빨려들었다. 우주가 궁금했고, 별과 달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천체망원경의 가격은 소년에게 너무 높았다.

    4년 후, 14살이 된 소년은 그 꿈을 직접 실현하기로 마음먹는다. 천체망원경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막연했지만 자신이 있었다. 보일러 강화유리를 구해 손으로 유리를 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고, 실패가 반복됐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하는 모습에 소년의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가봐야 하는거 아니냐”고 걱정을 했다. 아무리 해도 혼자 힘으로는 벅찼다. 고민하던 소년은 카이스트대학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고, 마음씨 좋은 한 교수의 도움으로 소년에겐 쓸 만한(?) 구경 6인치 망원경이 생겼다.

    그리고 30여년이 흘렀다. ‘천체망원경을 들고 하늘 보기’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던 10대 소년은 기계를 연구하는 평범한 40대 아버지가 됐다. 두산인프라코어에 근무하는 염관식(48·창원시)씨. 꿈꾸던 과학자는 포기했지만, 마·창 천체관측 동호회 ‘길라잡이별’의 총무로 활동하며 천체관측 활동에 푹 빠져 사는 그를 지난 10일 창원대 대운동장에서 만났다.

    아들 주상(14)군과 함께 나온 염씨는 운동장 한편에서 어른 키 높이만한 천체망원경을 설치하고 있었다. 삼각대 위에 놓인 3개의 굴절 망원경. 70kg의 거구인 이 천체망원경 세트는 15년 걸려 마련한 그의 ‘보물’이다.

    “한꺼번에 사면 너무 비싸니깐 조금씩 돈을 모아서 사고, 괜찮은 중고제품이 나오길 기다렸다 사고, 연결하는 부위는 직접 만들고, 그러다 보니 15년이 걸린 거죠.”

    어렵게 장만한 이 망원경 세트는 ‘천체사진’을 찍기 위한 장비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광경을 잡아내 주는 천체사진에 그가 빠진 것은 7년 전부터다.

    “사진을 찍지 않으면 이렇게 비싼 장비들은 필요하지 않아요. 우주의 다양한 현상들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매력에 빠지면, 도저히 헤어나올 수가 없어요. 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할 수가 없을 거예요.”

    하늘을 보기 좋은 날은 주로 가을, 겨울이다. 하지만 그의 하늘 보기는 날씨가 좋은 밤이면 언제 어디서나 이뤄진다. 좋은 날씨란 하늘이 맑은 날이다. 그런 밤이면 그는 지체 없이 망원경을 메고 길을 나선다. 꼬박 밤을 하늘에게 맡긴 채 새벽녘에야 집에 돌아온다는 그는 “밤새 하늘을 본 다음 날이면, 숙면을 취했을 때보다 더 기분이 상쾌하고 덜 피곤하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나도 그는 낮보다는 밤을 기다린다. 모두가 잠든 밤에 망원경을 들고 별이 잘 보이는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가 봤던 가장 아름다운 하늘은 호주의 코발트색 하늘이다.

    “호주는 사막이 많고 기후가 깨끗해 어느 곳보다 훨씬 다양한 천체를 볼 수 있었죠. 하늘이 크고 밝아서 육안으로 봐도 그 색이 확연히 달라요. 평생 그 기억은 못 잊을 것 같아요.”

    인근 지역에서 그가 자주 찾는 곳은 의령 한우산과 거창의 월성산이다. 관측하기에는 어둡고 깊은 곳일수록 좋지만, 몸무게보다 무거운 장비를 들고 산을 오를 수 없기 때문에 차가 갈 수 있는 최대한의 높이로 올라간다.

    “위험하기 때문에 주로 2~3명이 짝을 지어 움직입니다. 밤중 산행 운전을 하다보니 조금만 실수해도 큰 사고가 나거든요.”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장비를 설치하는 데 40여분, 보통 한 컷을 촬영하는 데 1시간 이상이 걸린다. 사진 한 장을 위해 추운 겨울날 온몸을 떨며 밤을 새우기도 한다.

    그는 “최소한 몇십만년에서 몇백만년이 걸려 지구에 도달한 빛을 촬영하는 느낌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며 “또 별과 별 사이의 은하, 이중성의 아름다움을 포착해내는 쾌감 때문에 이 일을 놓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속한 은하계에만 2000억개의 별이 있죠. 천체를 관측하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죠.”

    그에게 삶의 목표를 묻자 “내 이름을 딴 관측소를 하나 갖는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여전히 10대의 그때처럼 별을 향한 꿈을 꾸고 있는 모양이다.

    글=조고운기자 lucky@knnews.co.kr

    사진=성민건기자 mkseu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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