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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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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실토실 토속붕어 가시까지 고소하네

제철 별미/ 창녕 우포 붕어찜

  • 기사입력 : 2009-04-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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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무청·양념 듬뿍 넣고

    장작불로 종일 끓여 냉동보관

    손님 오면 ‘즉석 조리찜’으로 내놓아

    붕어가 맛이 좋을 때? 1년에 딱 3번이란다. 봄 중간쯤 붕어가 알을 뱄을 때, 여름철 비가 많이와서 물이 넘칠 때, 그리고 늦가을 서릿발이 날리기 시작할 때. 10년간 붕어요리를 팔아온 식당 주인장이 몸소 얻어냈다는 ‘생활 속 발견’을 빌린 이야기다.

    어쨌든, 그 ‘때’에 맞춰 봄의 중턱에 길을 나선다. 목표는 창녕 향토요리인 ‘붕어찜’. 목적지는 창녕군 이방면에서 가장 오래된 붕어찜 식당이다.

    우포의 길목마을인 소목마을을 향해 꼬불꼬불 차를 몬다. 길가에는 앙증맞은 빛깔의 새순이 파들거린다. 하늘빛의 늪과 쪽배, 수풀, 버드나무 그리고 화살 모양으로 쳐놓은 그물을 지나쳐 우황산 자락 아래 도착하면 슬레이트 지붕에 조립식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이 집의 간판은 두 개다. 한눈에 새로 단 듯한 ‘우포늪민물나라’와 허름한 풍채의 ‘우포늪 민박’. 본래 민박집을 하던 곳인데, 주인 할머니의 손맛에 반한 손님들의 성화에 10여 년전부터 음식업도 시작했기 때문이다.

    식당 앞에는 30m가량 너비의 둔벙(웅덩이)이 서너 개 만들어져 있다. 그 가운데는 오래돼 보이는 수차(水車)가 물을 열심히 튀겨내고 있다. 이곳의 정체는 ‘자연식 수족관’이다.

    “붕어를 보관하는 곳이에요. 우포늪에서 그물로 잡아 오다보니, 배 위에 오래 있어서 붕어들이 힘이 없거든요. 그것들을 다시 생명력을 갖도록 이 연못에 풀어 놓는 것이죠.” 주인장 윤갑이(66) 할머니의 설명이다.

    ‘우포늪에서 태어나고 먹고 자란 붕어는 그 맛도 푸르고 깊을까.’ 어쭙잖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일단 붕어찜을 주문한다. 붕어찜은 사람 수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2인은 1만5000원, 3인은 2만원, 4명은 3만원짜리 찜이 나간다.

    주인장 할머니, 몇명이냐고 묻더니 따로 주문도 받지 않고 조리에 들어간다. 호기심에 할머니를 따라 들어간 주방, 그런데 조리라는 게 냉동고에서 냄비 하나를 꺼내더니 가스불 위에 얹는 게 전부다. 냄비 안에는 완전하게 조리된 붕어찜이 꽁꽁 얼어 있었다. 둔벙에서 살아 움직이는 붕어가 있는데 웬 냉동이란 말인가. 할머니는 조리시간이 너무 길어서라고 답했다.

    할머니의 붕어찜 만드는 과정을 들어보자.

    가마솥에 무를 깔고, 양념에 버무린 무청을 듬뿍 덮고, 토실하게 살이 오른 붕어를 올리고, 또다시 무로 덮는다. 아궁이에 가마솥을 놓고 장작으로 불을 때기 시작하는데, 센불로 한번 익힌 후 약한 불로 다시 24시간 가열한다. 은근하게 푹 고아야지 제 맛도 안 잃고, 뼈도 부드럽게 익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십 번의 불조절로 붕어찜이 완성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뜨거운 붕어찜은 흐물흐물하기 때문에 다시 식히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붕어의 살과 뼈들이 몸속의 기름을 통해 제 모습을 그나마 찾기 때문이다. 봄철부터 여름까지는 실온에 두면 상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급냉동을 시켜놨다가 다시 끓여내는 방법을 쓴다.

    가스 대신 나무로, 즉석요리 대신 하루 종일 고아내는 붕어찜이라니, 미련하면서도 정겹다. 이 조리법은 우포늪 토박이인 할머니가 어릴 때부터 집에서 해먹던 토속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드디어 찜이 테이블에 놓인다. 냄비 뚜껑을 열자 구수하고 달큰한 냄새가 확 풍겨온다. 얼마나 고았단 말인가. 이미 냄비 속 붕어는 양념, 야채와 혼연일체가 돼있다. 붕어찜은 부드러운 살과 고소한 뼈를 함께 먹어야 제맛인데, 그에 앞서 가장 먼저 ‘대가리’부터 먹는 게 제대로 먹는 방법이라는 게 주인장의 ‘충고’다. 칼칼하고 얼큰한 육수 맛은 직접 재배해서 만든 고춧가루 덕이요, 짭짤하게 입맛을 사로잡는 감칠맛은 집간장 덕이리라. 붕어의 차지고 달큰한 살맛에 따글따글 씹히며 혀를 자극하는 알맛은 여느 생선과 비할 수 없는 독특한 맛이다. 24시간 고아낸 육수 또한 깊고 진한 맛이다. 처음에는 젓가락으로 무, 무청, 살, 알을 골라내 먹지만, 먹다보면 숟가락으로 가릴 것 없이 푹푹 떠먹게 된다.

    냄비를 뚝딱 비우고 늪을 가로질러 가는 길, 눈앞에 펼쳐진 우포의 푸른 풍광이 모두 내 배에 들어온 듯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글=조고운기자 lucky@knnews.co.kr

    사진=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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