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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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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김지하 칼럼] 샘물의 깊이-시인(동국대 석좌교수)

  • 기사입력 : 2009-04-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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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샘은 우물과 다르다. 우물이 판 것이라면 샘은 솟는 것이다. 판 데서는 안 솟는가 물을 수 있다. 안 솟는다. 우물물은 그럼 무엇인가? 우물물도 물은 물이지만 샘물과는 질이 다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물물을 먹고 병에 걸리는 이는 많으나 샘물 먹고 병 걸린 이는 드물다.

    우물물의 수맥이 보통 지하 10m 정도라면 고작이지만, 샘물은 적어도 100m 이하라야 한다. 100m라면 풍수지리에서 보통 층위변경(層位變更)이라 하여 그 샘에 제사 지낼 것을 청권할 정도다. 안 그러면 동티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층위’란 귀신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함부로 손 못 대는 지명이라는 것이니 솟아날 그 나름의 신이한 까닭이 있어야 샘물이 솟는다는 것이 풍수나 박수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런 것 예전엔 동네 상식인데 요즘엔 아는 사람 거의 없다. 하기야 수돗물이냐, 병에 든 생수냐 하는 판인데 무슨 그런 구닥다리 얘기냐 할 것이다.

    얼마 전 아침 신문의 1면에 두 가지 기사가 떴다. 위는 멕시코의 돼지독감 기사요, 아래는 월가의 전문가들이 월급 반값 수준의 한국기업에 이력서를 보내는 사태 이야기다.

    둘 다 희한한 일이다. 둘 다 알고 보면 우물물과 샘물에 관련된 이야기다. 어째서 그럴까?

    간단하다. 멕시코 돼지독감은 물의 정화 능력 여부에 연결돼 있고, 월가 전문가들의 한국 동경은 빙 에둘러 샘물의 새로운 가능성과 연관이 있다. 무슨 뜻일까?

    돼지독감의 문제는 전염 문제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오염된 물의 병균 전파 경향이니 당연하고 월가 얘기는 창조성의 영역이다.

    마치 100m 지하의 귀신의 층위라고 제사 지낼 정도의 숨은 무엇인가 한국의 새로운 창조적 폭발력이 확실히 느껴질 만큼 온 세상이 다 그렇고 그렇다는 뜻이다. 왜 그런가?

    이야기가 이쯤 되면 엉뚱한 다른 문제들도 연이어 발견된다. 동티 얘기다. 동티가 무엇인가? 사람 손때가 너무 묻거나 한때 인기에 우쭐해서 너무 까불면 귀신이 노해서 벌을 준다는 옛 표현이다. 이 역시 요즘 세상에 무슨 ‘거지발싸개’ 같은 소리냐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전직 대통령 노무현씨 부패사건을 보고 안됐다고 혀 차는 사람 단 한 사람도 없다. 왜 그럴까? 우물물 근처 얘기다. 얇고 천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러면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어!’정도다. 또 있다. 북한 까부는 건 어떤가? 평양에서 아무리 왕왕대도 남한 국민들 눈 하나 깜짝하는 사람 없다. 어째서 그럴까? 간단하다. 뻔할 뻔자라는 것이다. 이 역시 우물물과 관련된 사건일 게다.

    나는 최근 전례 없이 끊임없는 짜증에 사로잡히고 있다. 강의하거나 공부하거나 글을 쓰는 고된 시간 이외에 유일한 낙이 텔레비전 보는 일인데 이게 꼭 우물물 중에도 더러운 수챗구멍 근처 우물물 같고 돼지독감보다 더 혐오스러운 괴질 중의 괴질만 같아서다. 왜?

    영화도 그렇지만 텔레비전은 더욱이, 탤런트나 모델, 아나운서 등의 ‘포토제니’, 즉 독특한 타고남의 매력이 가진 깊이와 신선함에다 역시 톡톡 쏘는 메시지의 슬기의 힘이 결함되는 데서 오는 카리스마가 그 생명이다. 그래서 문화자본주의니 소울 마케팅이니 하며 그 신선함과 영성을 찬양하는 터이다. 그런데 요즈음의 한국 텔레비전은 어떤가?

    한마디로 똑같은 한 성형공장에서 한날한시에 수술 끝내고 출시한 똑같은 성형제품들 나열한 가판대 꼴이다. 똑같은 쌍꺼풀에 똑같은 높인 코, 똑같은 깎은 턱, 똑같은 깎은 광대뼈에다 약 발라서 부풀린 젖가슴, 만들어낸 둥근 엉덩이, 발광약품 바른 허어연 허벅지에 똑같은 허리 비틀기, 똑같은 섹시 보이스, 똑같은 브랜드 미소. 구역질이 난다.

    ‘빠꼼이’ 국민들에다 촛불을 켠 적까지 있는 젊은이들과 여성들이다. 아마도 곧 집단적 시청 보이콧 운동이 벌어질 것이다. 돼지 인플루엔자에 한술 더 떠 우물물에 독약을 푼 꼴이니 말이다.

    시중엔 묘한 말이 돌고 있는 요즘이다.

    뉴욕 맨해튼 최고 유행은 갸름한 눈매에 갸름한 목덜미의 타고난 동양미인형이라는 것. 월가 전문가들의 한국 동경과 같은 흐름이다.

    무엇을 보고 그들이 그러는 것인가? 샘물일 게다. 한국의 감추어진 100m의 신이한 샘물의 깊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아시안 네오르네상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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