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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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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개와 바다-이림(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09-05-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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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주말, 제주 걷기 여행을 했다. 2박 3일 일정으로 지금까지 개장한 제주 올레 열세 개 코스 중 1코스와 7코스 구간을 걸었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달려간 성산포. 1코스 시작 지점인 말미 오름은 봄 햇살 아래 눈부셨다. 아직 이 세상 빛으로 정착하지 않은 듯 신비로움을 띤 새 초록빛들. 그 피안(彼岸)의 풀빛 사이로 미나리아재비, 양지꽃, 사대풀 같은 들꽃들이 웃으며 차안(此岸)의 인간을 피안의 세계로 안내했다. 그랬다. 제주의 봄 오름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눈 아래 펼쳐지는 성산포 앞바다는 또 다른 선경을 연출했다. 왼편으로는 우도를, 오른편으로는 일출봉을 끼고 신비경을 이루고 있었다.

    말미오름에 연이어 솟은 알오름은 갯무꽃 천지였다. 연무 낀 봄하늘과 어울린 야생 갯무꽃밭은 노란 유채꽃밭과는 또 다른, 우아하고 기품 있는 섬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두 오름을 내려와 걷는 해안길은 좀은 지겹고 힘들었다. 걷다, 쉬다… 네다섯 시간이 더 지난 뒤 기진맥진해 도달한 곳은 광치기 해안, 드디어 1코스 종착지였다.

    광치기 해안은 이름이 주는 느낌 그대로 드넓고 호쾌했다. 일출봉 모습을 가장 완벽하게 보여 주는, 제주 홍보 사진에서 일순위로 보는 바로 그 일출봉 옆 바닷가였다. 광활한 해안으로 드센 파도가 거침없이 들고 날고 있었다.

    철썩철썩철썩~ 너만 자유냐, 나도 자유다. 우리 모두 자유다. 황금에 매인 사람, 명예에 매인 사람, 가족에 매인 사람… 모두 모두 오너라. 나와 함께 자유로워져라.

    한갓 필부인 나도 풀어야 할 것이 자못 많은 듯 진지하게 수평선을 응시했다. 아무리 작은 얽매임일지라도 얽매임은 싫은 것이다.

    왈왈왈왈. 파도 소리 속에 개 짖는 소리가 섞여들었다. 평소에도 개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편이라 조건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앞 모래밭 위 잔디 길에 개집이 있었다. 철망 친 네모 통 네 개가 나란히 붙어 그 속에 개 한 마리씩을 가두고 있었다.

    왈왈왈왈~월월월월~컹컹! 네 마리 개들은 가까워지는 사람들을 보며 그악스럽게 짖어댔다. 두 번째 칸, 송아지만큼이나 큰 개는 그 큰 몸을 채 다 펴지도 못하고 광분하고 있었다. 다들 곧 철망을 뜯고 나올 기세였다. 사육해 식용으로 쓰는 개인 것 같았다. 저렇게 극심한 억압과 분노 속에서 키워진 개를 삶아 먹은 인간들은 어떻게 될까?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하필 자유를 외치며 철썩거리는 파도 앞에 세워진 개집이라니…. 아무리 인간 맘대로 길러, 인간 맘대로 데리고 놀고 부리고, 인간 맘대로 잡아먹는 금수에게라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한 상황이다.

    털끝만 한 얽매임도 싫다며 구름처럼, 떠돌며 선경 운운하는 게 인간이거늘, 가축일망정 그 존재만큼의 자유로운 몸놀림은 보장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동물을 식물처럼 붙박아 사육해 그것을 먹으면, 그 속에 든 분노가 인간에게 옮아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그 결과에 고통을 받고 있다.

    다음 날, 절대 미를 지닌 제주 해변, 외돌개 길을 걸으면서도 광치기 해안 개들이 문득문득 생각났다. 내가 저지른 가학적인 일들도 같이 떠올랐다.

    시골집 난로 속에 들어온 새를 치여 죽게 한 일, 마당에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를 물을 퍼부어 쫓은 일, 수많은 파리와 모기와 개미와 진딧물을 죽인 일. 텃밭에 난, 내가 원하지 않는 싹들을 호미로 쓱쓱 문지르거나 빼버린 일….

    하긴 광치기 해안 파도도 어찌 보면 지구 원심력에 꼼짝 못하고 얽매여 있는 존재이긴 하다. 만물의 영장 인간도 절대자가 정한 만큼의 자유밖에 누리지 못하는 피동적 존재이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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