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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지역 농산물 가득한 동네 장터를 꿈꾸며-정한진(창원전문대 식품조리과 교수)

  • 기사입력 : 2009-05-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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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음식들에게 묻는다. “너 어디서 왔니?”

    아마도 누구나 수시로 묻고 싶은 질문일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농수산물과 식품은 외국에서 들어온다. 한마디로 먹거리도 글로벌 시대다. 게다가 광우병이나 멜라민과 같은 음식물 파동 외에도 크고 작은 식품 관련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아무리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강조하더라도, 돼지 인플루엔자 확산은 식품 안전에 대한 우려를 더 키우고 있다.

    혹시나 해서 가공 식품에 들어간 수많은 식재료의 원산지를 확인해 보면 다국적이다. 국내에서도 먼 거리에서 온 농산물은 보존제와 소독제를 사용하여 씻을 때 미끈거려 몇 차례에 걸쳐 씻어도 남아 있을 거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그러다 보면 “차라리 직접 내가 길러 먹는 게 낫지”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직접 길러 먹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대다수는 사정이 여의치 않다. 그렇다면 대안은 자신이 살고 있는 가까운 지역에서 안전하게 생산된 먹거리를 제철에 맞게 구입하는 것이다. 우선 공간적 거리와 시간적 거리를 줄임으로써 보존제와 같은 각종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신선한 먹거리를 제때에 먹을 수 있다. 또한 광우병이나 멜라민 첨가와 같은 여러 위험 요소로부터 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한다. 그리고 소비자는 출처를 알기 어려운 먹거리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나아가 먹거리를 먼 곳까지 이동시키기 위해 교통수단이 쓰는 화석연료를 줄임으로써 지구의 온난화도 막을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지역 농민들이 직접 기른 농산물을 갖고 인근 도시의 소비자가 살고 있는 주택 단지나 아파트 단지 내의 일정한 장소에 장터를 열면 좋겠다. 동네 장터에서 농민 자신이 애지중지 기른 먹거리를 마을 주민과 얼굴을 맞대고 파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정겹다. 지금도 도심에 서는 장터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 판매자는 농민이 아닌 유통업자들이다.

    무엇보다도 농민과 직접 대면한다면 소비자는 판매자와 먹거리를 동시에 신뢰할 수 있다. 또한 서로 말을 나누다 보면 농민도 소비자가 요구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 피드백이 가능하다. 농민은 대형마트에서 외면하는 소량의 다양한 농산물도 제공할 것이며,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도 더더욱 농산물의 안전에 신경을 쓸 것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 뉴스에서 상추 4kg 한 상자의 출하 가격이 1500원에 불과해 5000원이 넘는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 밭을 갈아엎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대형마트에 오면 가격이 9배에서 15배까지 뛴다고 한다. 유통 마진이 줄어든다면 당연히 그것은 농민과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온다. 먹거리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좁히는 지역 먹거리 운동은 미국과 유럽에서는 ‘로컬푸드’ 운동이란 이름으로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현재 미국에서는 ‘농민 장터’의 수가 4000개에 가깝고, 이곳을 찾는 이들만 해도 3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도심에서 열리는 농민 장터는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관광 상품이기도 하다.

    지역 먹거리 운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제도적인 장치들이 필요하다. 농민들이 여는 동네 장터도 지역 주민단체와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 속에서 일정한 틀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동네 장터뿐만 아니라, 학교급식과 단체급식 등에서도 가능한 한 지역 먹거리를 구입하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한 회사와 한 농촌 마을, 한 학교와 한 농촌 마을이 결연을 맺어 농산물을 직거래하고 서로 왕래하는 실질적인 인적·물적 도농교류도 있다.

    지역 먹거리 운동은 지역이기주의가 아니다. 신선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통해 건강을 유지하면 의료의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 농촌 지역사회의 유지는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는 길이다. 또한 FTA 협정에 따라 다국적 농산물 기업의 거대한 파고가 밀려올 때, 한 국가가 식량자급과 고유의 다양한 농산물 생산을 지켜갈 방도이다. 최근 몇몇 지역에서는 자치단체가 나서서 지역 먹거리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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