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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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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가시고기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이영동(논설실장)

  • 기사입력 : 2009-05-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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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시고기라는 물고기가 있다. 이 물고기 수컷은 다른 물고기들과 달리 암컷이 산란을 하고 가 버리면 알을 먹으려 달려드는 다른 물고기 등 적들과 사투를 벌여 가며 알이 부화될 때까지 지켜주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육신까지 새끼들의 먹이로 제공하여 부성애(父性愛)의 상징이 된 고기다.

    마땅히 부성애의 상징이 될 정도로 가시고기 수컷이 알이 부화되기까지 지키는 과정은 처절하다. 암컷이 산란 후 사라지면 그때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알 옆에서 지느러미를 계속 움직여 알에 산소를 공급한다. 다른 물고기들이 가시고기의 알을 먹기 위해 침입하면 피투성이가 돼 가며 싸워 그들을 내쫓는다. 10여일이 지나 알이 하나둘 부화되기 시작하면 상처 투성이가 된 가시고기 수컷은 기운이 다 빠져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육신은 자신의 보살핌으로 무사히 부화를 마친 새끼들의 먹이가 된다.

    ‘가시고기 부성애 이야기’에는 가시고시 암컷에 대한 비난이 녹아 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암컷이 새끼를 돌보기 때문이다. 모성애를 보이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산란 후 가시고시 암컷은 어디론가 가 버리고 없기 때문에 수컷의 부성애는 부각되고 반면 암컷에게는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나쁜 엄마’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가시고기 암컷은 어디로 갔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암컷은 죽으러 갔다. 자신이 낳은 알을 지키기 위해서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가시고기 암컷은 낳은 알을 수컷에게 맡겨두고 알을 낳은 곳으로부터 되도록 멀리 떨어져 죽음을 맞는다. 알을 낳고 그 자리 또는 그 주변에 있을 경우 알을 낳을 때 몸에서 분비되는 냄새를 맡고 다른 물고기들이 알을 먹으려 몰려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란과 동시에 있는 힘을 다해 최대한 빨리, 최대한 멀리 달아나다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적들로부터 알을 지켜내는 것이다.

    최후까지 적들과 싸워 알을 지켜냄으로써 부성애의 대명사가 된 가시고시 수컷의 새끼 사랑에 비해 ‘가시고기 암컷의 희생’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더구나 알을 낳은 후 사력을 다해 최대한 빨리, 최대한 멀리 달아나다 기운이 떨어져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암컷의 그 위대한 희생을 알지도 못했다. 사건이나 사물의 이면을 잘 보지 못하는 것처럼 단지 눈앞에 보이지 않고 일반적으로 암컷이 하는 일을 수컷이 하고 있는 그 현상 하나만 보고 가시고기 수컷은 부성애의 대명사가 되고 암컷은 비난의 대상이 돼 왔다.

    암컷의 희생이 뒤늦게 밝혀지긴 했지만 가시고기는 어버이의 자식을 위한 희생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암수 모두 그 희생은 부모의 자식 사랑의 전형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 암컷의 경우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이 자식 사랑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가르쳐 주고 있다. 부모의 이혼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일반적인 가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는 가족 구성원의 입장에서는 가시고기 암컷처럼 현재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한쪽도 자식 사랑만큼은 변함없다는 것이다.

    이달은 가정의 달이고,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사회가 복잡 다양성을 띤 지 오래다. 그동안 가족의 형태도 많이 변했고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이 시대의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가족관념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이 시대의 가족과 관련된 키워드들은 대부분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모자가정, 부자가정, 조손가정, 기러기아빠 등 하나같이 긍정적 의미보다는 부정적 의미다. 게다가 호주제의 폐지로 생겨난 성씨 다른 부자 부녀가 함께 사는 가족도 있다. 생기는 용어 족족 부정적이다.

    부부가 중심이 돼 가정을 이룬다. 부부의 사랑으로 자녀가 생겨나고 희생으로 자란다. 그게 가정이다. 가족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고도 한다. 가족이 소중하고 중요하다면 오늘날 부정적인 가족과 관련된 각종 키워드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아마 산란을 한 후 그 알을 지키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달아나다 죽는 가시고기 엄마를 찾으면 그 답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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