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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키우는 역사논술] (13) 역사는 스냅사진이 아니다

누가 윤봉길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하는가

  • 기사입력 : 2009-05-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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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 전 필자는 한 보수우익단체 계열의 교과서포럼에서 만들어진 근현대사 대안 교과서를 보았다. 그 교과서에는 김구 선생이 항일 테러활동을 했다고 기술하고 있었다.

    또한 그 단체 산하의 한 모임은 백범기념관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임시정부와 윤봉길 의사가 소속된 한인애국단은 알카에다보다 더 무서운 테러조직이라고 주장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주장에 대해서 당황하겠지만, 필자는 나름대로 그들의 논리를 분석해 보았다.

    폭탄은 던졌다는 행위 자체가 불법 폭력 행위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시각을 벗어나 전 세계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는 ‘객관적’으로 테러 행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테러를 통해 공포를 조장하고 정치적 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액면 그대로만 봤다면 단어 몇 글자 수정하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부당한 행위’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비겁하게 테러 행위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물론 더 깊은 내면에는 ‘일제는 비록 우리 민족을 억압했지만, 우리의 근대화를 일깨워준 존재’라는 생각까지 깊이 스며들어 있다.

    후자에 대한 부분은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앞선 내용부터 살펴보자.

    1932년 중국 상해. 평화로운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그 행사장에 젊은 사내가 뚜벅뚜벅 걸어가 단상에 폭탄을 집어 던졌다.

    이 장면만 살펴봐서는 분명 평화를 해친 폭력행위, 테러로 여겨질 만하다. 그러나 진정 평화는 누가 해쳤던가?

    일제는 1870년대부터 근대적 무장을 앞세워 무력으로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우리의 수많은 동학농민군과 의병들이 일제의 총에 쓰러졌다. 만주에서 독립군들이 활약할 당시에 일제는 간도참변을 일으켜 많은 양민들을 학살했다. 3·1운동 시기에 일제는 또 수많은 우리 민족을 살해했다.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을 침략하고 우리 민족이 당했던 것 이상으로 중국인들을 살육했다.

    이런 큰 역사적 흐름에서 ‘침략’이 있었고, 그에 대한 ‘저항’으로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다.

    그러나 윤봉길 의사를 테러라 지칭하는 이들은 단순히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지는 그 순간의 장면을 가지고 테러라 지칭하였다. 전체적인 역사적 맥락이나 흐름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그 장면만 바라본 것이다. 이건 애초에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을 모르는 유아적 사고에 불과하다.

    역사 이해에 있어서 이런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특히 유명한 전쟁, 발명, 사건 등을 보면서 그 안의 장면에만 신경 쓰다 보면 전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놓치거나 그 내면에 흐르는 본질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순신의 승리만을 기억하면서 임진왜란의 본질을 고찰하지 못하거나, 혹은 이순신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을 보면서 ‘만약 이순신이 살아 있었다면 일본에 쳐들어가지 않았을까?’하는 유아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모두 역사의 한 장면에만 집착한 결과라 볼 수 있다.

    다시 윤봉길 얘기로 돌아가자.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전 세계는 한민족이 일제에 치열하게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또한 중국인들은 한민족을 ‘일제와 함께 싸워야 할 동맹군’으로 여기기 시작했으며, 이는 민족연대전선을 낳게 되었다. 이런 노력으로 결국 일제 패망과 함께 우리 민족이 광복을 맞는 역사적 성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규정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제의 침략과정 → 우리 민족의 저항과 운동 → 세계 여론의 환기와 독립의 약속 → 독립’이라는 큰 역사적 흐름을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큰 틀에서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우리 민족 독립운동사에 큰 사건이었고, 지지부진한 독립운동이 일제에 대한 반격의 실마리를 잡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이런 유아적 실수를 토대로 역사를 기술하는 것일까? 보통 역사의 장면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특정한 생각이나 방향을 강조하기 위하여 역사의 한 장면을 발췌하여 넣는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넣어버리면 자신의 생각과 부조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전체적인 역사적 맥락 가운데 유리한 부분을 자르고 잘라, 한 장면만을 넣는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역사적 흐름에서 ‘의거’라고 규정해 버리면, 자신들이 교과서에 쓴 일제에 의한 근대화, 일제 식민통치를 합리화하는 데 큰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그 장면만을 부각하여 ‘테러’라는 단어를 씀으로써 우리 민족과 윤봉길 의사를 분리해 버렸다. 우리 민족은 일제에 만족하고 사는데, 특정 정치세력이 무리하게 독립을 요구하려다 테러라는 극단적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강조한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를 뒤져 보아도, 자기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희생한 사람을 테러라는 부정적 단어를 덧씌워 기술한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의 역사 교과서에 워싱턴 대통령이 반란군의 수괴라고 기록되어 있고, 보스턴 차 사건이 강도질 또는 테러 행위로 적혀 있을 리 만무하다. 간디의 불복종 운동을 불법 집회, 불법 파업이라는 식으로 인도 교과서에 적혀 있을 리도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일부 교과서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있게 해 준 독립운동이 테러활동으로 변신해 있다. 이는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 땅을 부정하는 것이고,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들은 일본 극우세력과 함께 사는 것이 더 적합하리라 생각된다.

    필자는 그들의 어이없는 주장을 보면서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지금 이런 교과서가 나오는 것도 역사의 한 장면이 아닐까? 우리가 역사를 냉철하게 살펴볼 수 있는 지혜를 쌓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역으로 우리가 ‘아, 역사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안 되는구나. 역사를 기술할 때에는 단어 하나에도 신중을 기해야 하는구나’라고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역사적 장면만을 꼬집어서 만든 유명한 교양서가 있다. 한국사 100장면, 세계사 100장면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책을 막상 살펴보면 그 장면에 대한 설명은 맨 처음 1~2문단에 불과하다. 나머지 3~4쪽은 그 장면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원인에 대해 폭넓게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역사적 흐름에서 전체적으로 그 장면을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있다.

    이런 책들을 학생에게 읽힐 때, 학생들은 역사를 이해하는 능력이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역사는 스냅사진이 아니라, 활동사진(흐름)이다.

    임종금(‘뿌리깊은 역사논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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