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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성공한 대통령 돼라”/이상권기자

  • 기사입력 : 2009-05-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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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12월 26일. 노무현 전 대통령과 출입기자단의 송년 만찬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다. 대선 패배 직후였던 만큼 분위기는 차분했다. 비보도를 전제로 한 행사여서 발언은 공개되지 않았다. 급작스런 서거 소식이 당시 대통령의 발언을 다시 한번 곱씹게 한다.

    인사말에 나선 노 전 대통령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예의 장시간 정치철학과 인생관 등을 털어놨다. 반주를 곁들인 식사 직후여서 일부에서 조는 이들이 있었을 정도로 다소 길었던 기억이다.

    노 전 대통령은 모두에 “내가 대통령이 됐을 때 지인들이 성공한 대통령이 돼라고 했다. 그냥도 아닌 ‘꼭 돼라’고 했다. 성공하고 칭송받는 대통령이 보고 싶다는 소망 같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임기내 양분된 국민적 평가를 의식한 듯 “이제 칭송 받는 대통령은 물 건너간 것이 됐다. 역사적 평가를 받는 대통령으로 넘겨진 것”이라고 현실과 괴리를 인정했다. 하지만 자신에 차 있었다. “역사는 사람마다 평가가 다른 것 아닌가. 정도전 선생이 있다. 수백 년 내 최고의 업적자로 본다. 정조 때에 와서야 제대로 복권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자부심 떳떳한 대통령이 되기로 했다. 내 기준으로는 그것이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다”고 평가했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를 바랐던, 자존심 강했던 고인이 금품수수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로 참여정부 전체의 도덕성이 곤두박질하는 상황을 참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심경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돌이켜 보면 미리 있을 불행을 암시라도 한 듯한 발언도 있었다. “나는 옛날부터 ‘지사(志士)’를 존경해 왔다. 어떤 경우도 굴하지 않고 굽히지 않으면서 결국은 마지막에 홀로 목숨을 놓는 지사의 삶이 고귀하다고 봤다.” 원칙과 도덕에 대해 결벽증에 가까웠던 집착이 스스로를 무너뜨렸던 것 같다.

    그해 겨울 밤, 북악을 휘감던 바람만큼이나 시리고 휑한 기운이 가슴을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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