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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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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나라사랑 나들이’ 떠나요

■ 지리산 빨치산토벌 전시관

  • 기사입력 : 2009-06-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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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빨치산토벌 전시관


    지리산 빨치산토벌 전시관


    지리산 빨치산토벌 전시관


    지리산 빨치산토벌 전시관


    지리산 빨치산토벌 전시관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이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초개 같이 버린 젊은이들, 전쟁의 참상으로 자식과 남편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유족들.

    우리는 이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주말 가족들과 함께 인근 전쟁기념관을 찾아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분들의 넋을 기리고, 역사의 현장을 직접 체험해 보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민족의 명산인 지리산은 6·25전쟁을 전후로 치열했던 빨치산과 군·경 토벌대 간의 피로 얼룩진, 민족상잔의 아픔이 서려 있는 우리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

    1949년부터 5년 동안 1만717회에 걸쳐 계속된 지리산 교전에서 2만여 명의 아까운 생명들이 처절하게 목숨을 잃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지리산을 배경으로 처절하게 싸운 빨치산과 군·경 토벌대 간의 아픔의 상흔이 오롯이 남아 있는 ‘지리산 빨치산토벌 전시관’을 찾았다.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중산관광단지 내)에 위치한 ‘지리산 빨치산토벌 전시관’.

    전시관 앞마당에 들어서자 토벌대와 빨치산이 화해의 손을 맞잡고 ‘헤어지지 말자’고 다짐하는 조각 작품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지리산과 빨치산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 1층에는 ‘해방과 빨치산’ ‘전쟁과 빨치산’을 주제로 빨치산의 정체와 해방 그 이후, 남북 분단, 여순 10·19사건, 반란군 사건, 토벌대의 추적 등 해방 이후부터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이 땅에 비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배경과 빨치산의 태동, 지리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빨치산 사건 등 당시 빨치산의 실체와 사회상을 이해하는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전시관 2층에는 빨치산의 실체와 역사의 기초가 되는 빨치산의 생활을 알아보고 지리산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통해 지리산이 간직한 역사와 자연 경관, 산청의 문화관광자원을 알아보는 공간 등 빨치산에 대한 역사적 사실, 유품, 사진자료, 문학작품, 영상물 등이 설치돼 있다.

    ‘전투의 현장 속으로’라는 터널을 지나면 외부전시관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에는 실제 빨치산이 산속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 수 있는 주거지 모형과 주요 아지트 등이 재현돼 있다.

    초가집으로 꾸며진 ‘민가 아지트’는 내원골의 민가 구들장을 교묘히 이용했다. 토벌대(군·경)가 검문 검색을 하면 아궁이의 솥단지를 들어내고 방고래를 통해 구들장 밑으로 숨은 뒤 아궁이는 다른 곳에서 태운 재로 소복이 덮고 솥은 뜨거운 물을 채워 토벌대의 눈을 속였다. 구들장 아래 몸을 숨긴 빨치산의 모습을 재현한 마네킹이 언뜻 보기에 섬뜩할 정도다.

    바로 아래에는 빨치산들이 산속에서 가장 손쉽게 만들어 생활했던 ‘초막 아지트’가 만들어져 있다. 장정 4~5명은 거뜬히 들어갈 정도의 원두막(네모꼴)형과 움집(원뿔꼴)형이 대표적인데 나무, 풀, 억새, 산죽 등으로 즉석에서 집을 지었다고 한다.

    또한 ‘암반굴 아지트’는 8부 능선에 자연적으로 조성된 암반굴을 이용한 것으로 높이 1.5m, 깊이 4m, 폭 3m 정도로 20여 명이 함께 생활할 수 있었으며 동굴 안쪽에 물이 나고 바깥쪽은 지대가 높아 경계와 은신이 용이했다고 한다. 암반굴 아지트 입구에서 상처 입은 빨치산을 치료하는 모습과 따발총을 들고 경계근무를 서는 빨치산의 모습을 재현한 마네킹을 보니 민족의 아픔이 새삼 느껴진다.

    또한 야외 전시장의 전시물 중에는 동족끼리 서로 총칼을 들고 싸우다 눈과 머리에 부상을 입어 붕대를 두른 한 병사의 지친 모습과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총칼 아래 시름에 잠긴 모습이 있어 당시의 참혹했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산청군은 2001년 지리산 빨치산토벌 전시관 건립과 함께 지리산 내원골 등지에 빨치산의 흔적과 이동통로 등을 발굴한 ‘빨치산 루트’를 조성해 역사 교육장과 테마 등산 코스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리산 빨치산 토벌 제1체험코스(중산리 방면)는 중산전시관(두류동)- 경남자연학습원 삼거리- 순두류 아지트- 망바위- 칼바위 아지트- 두류동 주차장이며, 제2체험코스(대원사 방면)는 소막골 주차장- 소막골 아지트- 대원사- 중땀 암반굴 아지트- 윗새재- 조개골 아지트 구간, 제3체험코스(내대리 방면)는 거림매표소- 길상암- 이영희부대 아지트이며, 제4체험코스(내원리 방면)는 내원매표소- 내원사- 구들장 아지트(정순덕 생포지)이다.

    ▲찾아가는 길= 창원- 남해고속도로- 대전통영고속도로- 단성IC- 시천면 방면(20번 국도)- 중산관광지- 지리산 빨치산토벌 전시관

    ■ 도내 가볼 만한 전쟁 유적지

    ▲거제 포로수용소= 거제 포로수용소는 6·25전쟁에서 발생한 포로들을 수용했던 곳으로 거제시 신현읍, 연초면, 남부면 일대 1200만㎡ 부지에 조성됐다.

    1951년 6월 북한군 15만명, 중공군 2만명, 여자 포로, 의용군 등 17만3000여 명이 수용됐다.

    지금은 경비대 막사와 PX 및 무도장 등 잔존 건물 일부만 남아 있는 이곳에 당시 포로들의 생활상, 막사, 사진, 의복 등 생생한 자료와 기록들을 바탕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다시 태어나 전쟁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흥남철수 기념비와 분수광장 등이 마련된 만남의 존과 프리쇼 존, 한국전쟁 존, 포로수용소 존, 포로수용소 유적관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창녕 박진전쟁기념관= 박진기념관은 6·25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의 최후 보루지인 박진나루가 있던 곳으로 부산을 점령하기 위해 낙동강을 도하하여 최후의 발악을 했던 북한군과 미군이 사투를 벌였던 격전지다.

    당시 북한 최정예 부대인 제4사단이 8월 5일 야간에 이목나루터를 이용, 은밀히 기습침투를 감행하면서 강변을 방어하고 있던 미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치열한 전투 끝에 마침내 북한군을 물리치면서 인천상륙작전과 더불어 압록강까지 진격할 수 있는 반전의 계기를 만든 전투다.

    창녕군 남지읍 월하리의 박진기념관에는 전투 모형도와 피복용구 등을 진열한 전시실, 전쟁 영상물을 방영하는 영상실, 자료실 등이 있으며 전쟁 발발, 박진지구전사, 남으로 남으로 자유를 찾아서, 최후의 저지선 낙동강, 낙동강 돌출부 전투지형 모형, 6·25전쟁 참전국, 남북한의 전투장비 등 9개의 테마로 꾸며져 6·25전쟁의 실상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글·사진= 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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