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금요칼럼] 지역문학의 자리-정일근(시인)

  • 기사입력 : 2009-06-05 00:00:00
  •   

  • 최근 부산의 한 출판사가 창사 20주년을 맞이해 발표한 ‘부산시민 독서의식 실태조사’에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부산의 문인을 묻는 설문에서 응답자의 82.5%가 아는 문인이 없다고 답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부산을 대표하는, 한국 문단의 거목이었던 요산 김정한(1908~1996), 향파 이주홍(1906~1987) 선생에 대해서도 84.5%가 모른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문학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답이 이렇듯 부정적이었다면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면 그 답 또한 그랬을 것이다.

    부산시민의 10명 중 8명이 부산의 문인을 모른다고 대답한 것은 그 인근 지역인 경남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니, 이 설문의 답은 한국의 어느 지역에 대입을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는 지역문학의 자리가 한국의 어느 지역에서나 제 앉을자리를 이미 잃어버렸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지역에서 문학 활동이 예전에 비해 저조한 것은 아니다. 문인의 수는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매년 늘어나고 있으며 다양한 개인 창작 작품집과 두툼한 문예지는 다달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헤아려보면 문학 관련 행사도 거의 주말마다 열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외화내빈일 뿐 언제부터 지역문학의 자리가 턱없이 왜소해지고 지역문인들의 지명도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지역에서 마련되는 주요 무대에 ‘문학’이 주요 내빈으로 초대되기는 고사하고 축하손님으로도 앉을자리가 없어졌다.

    문학행사도 마찬가지다. 문학행사에서 가장 큰 손님인 독자 구경하기가 어렵다. 사실 요즘 문학행사는 ‘그들만의 리그’뿐이다. 문인들만이 참석하는 문인들만의 행사로 변했다는 것이다. 문학행사에서 문학의 꿈을 가진 젊은 독자들의 빛나는 눈동자를 만나는 것은 이젠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지역문학이 지역독자와 소통하지 않은 채 존재하거나 발전할 수는 없다.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고인 물’과 다를 바 없다. 언제부터인가 지역문학이 고이기 시작했다. 흐르지 않고 고인다는 것, 그건 지역문학의 위기다. 지역문예지와 지역문인들의 작품집이 읽히지 않는 것도 알고 보면 그 위기의 후유증이다. 그래서 부산에서 그런 설문의 답이 나온 것이다.

    이런 지역문학의 위기는 지역자치단체의 근시안적인 문화예술정책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광역자치단체나 시·군 자치단체의 정책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 문제의 공통점은 문화예술의 정점에 ‘쇼’를 둔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모든 지역행사의 하이라이트에 인기연예인의 무대인 ‘쇼’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화려한 무대를 만들고 화려한 조명을 쏟아붓는 행사에 비싼 출연료를 지급하는 연예인이 주인공인 것이다.

    ‘쇼’를 해야 관객이 모이고, 관객이 모이는 곳에 투자를 한다는 단순논리에 문화예술행정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몇 곡의 노래를 부르고 가는 인기연예인에게 지급되는 출연료가 지역문화예술단체의 1년 운영비보다 많다는 후문도 있다. 인기 트로트 가수인 T씨, S씨, J양이 대한민국 지역문화예술의 예산을 다 가져간다는 우스개 같은 이야기도 있다.

    문학의 자리를 찾아주는 일은 지역문화예술의 잃어버린 아우라를 찾는 일이다. 이제 가장 대중적인 행사에도 지역문학도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어디 문학뿐이겠는가. ‘쇼’에 밀려 고사되어 버린 지역문화예술의 전 분야를 되살리는 일에 행정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눈을 떴으면 한다. 우리 지역 문화예술인이 우리 지역에서 존경받고 사랑받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으면 한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영동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