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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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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미각 교육이 중요하다- 정한진(창원전문대 식품조리학부 교수)

  • 기사입력 : 2009-06-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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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아주 뜻깊은 경험을 했다. 대한적십자사 경남지사 RCY본부에서 주최한 ‘위대한 밥상을 차려라!’라는 1박 2일간의 청소년 캠프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캠프 이름에서 보듯이, 첫째 날 오전에는 건강한 음식과 올바른 식습관에 관한 교육이 있었다. 오후에는 다음 날 있을 요리경연대회 메뉴를 팀별로 짜고 정해진 예산 안에서 직접 장을 보았다. 이튿날에는 팀별로 경연대회에서 만든 음식을 독거노인들께 대접하고 자신들도 즐겁게 맛보았다.

    요리경연대회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자리였지만 심사보다는 초중등학생들이 얼마나 요리에 관심을 갖고 있는가가 더 궁금했다. 내심 요즘 아이들이 무슨 음식을 제대로 만들겠어 하는 우려는 금세 사라져버렸다. 이미 조리된 가공식품으로 요리하는 경우는 물론 없었다. 그렇다면 떡볶이나 샌드위치 정도겠지. 아니었다. 절인 무로 감싼 수육무쌈, 영양밥, 두부김밥, 오색경단화채 등등. 모두 멋있고 맛깔스러웠다. 어찌 아이들 손에서 이런 음식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팀원끼리 서로 도와 가면서 요리하는 내내 아이들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좀 더 맛있고 먹음직스럽게 보이고자 하는 열의와 진지함도 얼굴에 묻어 있었다. 그 순간 누구도 그들을 패스트푸드의 아이들이라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패스트푸드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 게 현실이다. 그들은 구수한 된장찌개보다는 피자나 햄버거, 닭튀김을 좋아하는 게 사실이다. 군것질거리도 마찬가지다. 아동 비만은 오래전부터 문제였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패스트푸드와 가공조리식품의 범람이 가정마다 갖고 있는 독특한 맛의 색깔들을 엷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전통적이고 풍부한 미각은 쇠퇴하고 ‘맛의 균질화’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슬로푸드인 전통적 음식의 외면으로 이어지고 각 지역의 고유한 식문화까지도 잊게 한다.

    따라서 건강하고 올바른 식습관을 어렸을 때부터 갖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유아기 때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의 성장 단계에서의 미각 경험이 평생 동안의 미각경험과 식생활 습관을 지배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시기에 식생활 교육 즉 미각 교육은 정말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기본적 맛을 익히고 음식재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체험이 가장 효과적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아직 이러한 방식의 미각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식문화 환경의 변화가 낳은 문제들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는 어린 아이들의 미각 교육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맛에 대한 체험뿐만 아니라 조리 체험의 기회를 폭 넓게 제공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10월에 ‘미식주간’ 행사를 한다. 프랑스 전역 몇 백 개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미식주간 메뉴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기도 하고 유명 요리사가 도심의 장터에 나가 일반인들과 요리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또한 수천 명의 요리사들이 초등학교를 방문해서 고학년들을 대상으로 요리실습이나 시식회와 같은 ‘맛 교실’을 연다. 해마다 이 주간에 유명한 요리사가 초등학교에서 수업하는 장면은 텔레비전 뉴스의 단골메뉴이다. 이웃 일본에서도 2005년 식육(食育)기본법을 제정해 어린이의 미각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미각 교육은 어린이들의 편식을 막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미각을 풍부하게 하는 것은 바로 감성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미각 교육은 맛의 기억을 지키는 것이다. 맛의 기억이 사라진다면 전통 음식이나 지역 고유의 음식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또한 각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가 되는 생물이 자취를 감춘다면 생물학적 다양성마저 파괴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직접적인 미각 체험을 통한 미각교육 프로그램이 절실히 요구된다. 음식을 만들고 제대로 잘 음미하는 것도, 전통적인 맛을 기억하고 전통 음식을 지켜나가는 것도 분명 훌륭한 문화활동이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문화활동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할 것이다.

    정한진(창원전문대 식품조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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