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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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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을 말한다 (9) 서양화가 김태홍씨

자연 같은 그림, 그림 같은 자연

  • 기사입력 : 2009-07-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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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실에서 유화를 그리고 있는 김태홍 화가. /전강용기자/

    잉어가 유영하는 그림 앞에 선 김태홍 화가.

    이상하다. 잉어가 노니는 물속으로 빠져들 것 같다. 유영 속으로 뛰어들고 싶어진다. 화폭 바깥에 있는 이들에게 같이 놀자며 꼬리 친다. 한마디로 빨려든다.

    서양화가 김태홍(63)의 ‘잉漁’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기자의 입에선 지어본 적도 없는 시가 절로 나온다.

    역영하는 잉漁, 물살을 헤친다/교태 부리는 잉漁, 지느러미가 바쁘다// 수포가 인다/ 먹이를 찾는다/ 짝 짓는다/유유자적 노는 모습이 평화롭다// 힘차게 꼬리 치는 금빛 몸짓 하나에/ 눈이 뜨이고/ 살짝 휘감는 은빛 몸짓 하나에/ 마음이 열리고/ 뜨겁게 달아오른 적빛 몸짓 하나에/ 가슴이 살짝 동한다

    김태홍 작가는 40여년 동안 유화와 수채화를 그려 왔다. 유화를 하면 수채화를 놓기 쉽고, 수채화에 빠지면 유화를 놓기 쉽지만 김 작가는 고집스럽게 둘 다 쥐고 있다. 그의 스승인 서라벌예대 장리석 교수가 어느 것 하나 버리지 말라는 특별 당부도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 수채화를 담아 오고, 수채화와 다른 영감이 생기면 캔버스에 터치를 입힌다.

    수채화는 수채화고, 유화는 유화고. 달라 보이지만 근본은 같고, 같아 보이지만 입맛은 다르고. 김 작가가 하나를 포기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는 것이, 사람 입맛이 여러 가진데 어찌 탓할 수 있으랴. 작가의 욕심이, 왕성한 정열이, 영감을 그려내는 능력이, 소재를 찾는 혜안이 부러울 뿐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장을 들어서면 나오기 싫어진다. 구상, 자연주의, 사실주의가 잔뜩 밴 유화·수채화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잉어와 놀고 싶고, 고양이를 만지고 싶고, 석류를 깨물고 싶고, 다리가 있는 풍경에서 쉬고 싶다. 벽에 걸린 아이에게서 동심을 읽고, 액자에 들어있는 사과를 깎아 먹고 싶다. 자분자분 얘기하는 작가의 말속에 참만 보이고, 온통 벽에 걸려 있는 작품에서 평화를 느낀다.

    ▲에토스를 느끼는 유화(油畵)

    그의 유화작품을 보면 우직하게 지켜오고 있는 구상 분야의 냄새를 한껏 맡을 수 있다. 사물을 이해하는 시각에서나 묘사기법에서 김 작가는 모방을 버리고 철저하게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다.

    김 작가의 그림은 순수를 지향하는 자신의 인생기이고, 일상을 묘사하는 비망록과도 같다. ‘생’ ‘과일가게’ 등의 작업과정에서 표출된 의지는 즉흥적, 감각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단계적이고 이지적이다. 정물이나 풍경 등 대상물에 대한 끈질긴 분석, 본질을 이해하려는 부단한 정열이 에스프리(esprit)와 맞물려 작품 곳곳에서 에토스(ethos)를 느끼게 한다.

    흥취에 이끌려 느낌의 강도를 달리하는 그런 표현행위가 아닌, 오직 감정의 절제에서 오는 적합한 조형언어를 빚기 위해 주제와 소재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눈여겨보았던 많은 것들에 그의 관심은 머문다.

    ‘진해 초가을’ 작품은 스케일이 크고 색채의 구사가 다양하며 빼어난 경관을 조명하기 위해 원근법에 훨씬 충실함을 보여준다. 또 ‘정병산 계곡설경’ 작품은 탄탄한 데생력을 기초로 해 효율적인 명암 대비와 색채 이미지로 물상의 형태를 실감나게 이끌어낸다.

    김태홍 작가는 눈에 보이는 사실을 근거로 해 실제적인 형태를 즐겨 묘사하는 자연주의 계열이다. 믿음직스런 구성과 명료한 이미지도 그렇지만 선과 면을 처리하는 솜씨는 보는 이로 하여금 단번에 작가의 연륜을 느끼게 한다.

    ▲‘생명의 환희’ 수채화(水彩畵)

    김 작가의 수채화는 자연과 사물에 본원적으로 내재돼 있는 생명의 환희를 역동적으로 표출한 점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그의 그림에는 신의 넉넉한 품과 같이 들판을 감싸 안은 산과 따스한 인정이 샘솟는 마을, 청록빛 바다와 어선이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 이러한 소재들은 각기 개성적 형상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있지만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 생명과 기쁨의 주체로서 또는 존재와 형체의 객체로서 서로 연결돼 있다.

    진해 장복산과 창원 정병산을 원경으로 한 일련의 ‘풍경’ 작품들은 생명의 향연을 보는 듯하다. 갯내음 싣고 불어오는 바람결에 초록의 파도를 일으키는 들판과 묵언의 성자처럼 엄숙한 숲은 소리 없는 밀어를 교환하며, 하늘의 구름 한자락 떨어져 내린 듯이 교교함을 더해주는 녹음이 자뭇 신비감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호수에 유영하는 잉어들의 자유분방한 몸놀림이 사실적으로 표현된 작품에서 물고기의 약동성이 잘 표현돼 있다. 그 약동성에서 생명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존재는 없다는 메시지를 우리 사회에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고통 딛고 피어난 행운

    김 작가는 서울 사람이다. 서라벌예술대학교 미술학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1970년) 결혼하고 마산으로 이사왔다. 카메라 기술을 배워 시각적으로 잘 보지 못하는 영상을 그림에 적용하기 위해 마산수출자유지역의 한 회사에 취직했다. 3년만 있으려고 했는데, 회사에서 놓아주질 않아 8년을 근무했다. 직장생활만으론 가정을 꾸리고 붓을 잡기에 역부족이어서 퇴근후에는 대학에 강의도 나갔다. 삶에 쫓겨 잠도 못 자고 제대로 먹을 시간도 없었다.

    객지에서 사는 게 힘들어진 김 작가는 서서히 마르고 얼굴도 검게 타들어 갔다. 결핵. 결핵이 찾아온 것이다. 통원치료를 원하는 김 작가에게 의사들은 마산결핵요양원에 입원할 것을 권했다. 김 작가는 입원요청을 거절하고 1년6개월 동안 집에서 투병했다.

    김 작가는 “죽어도 요양원에 입원하기는 싫었어요. 그래서 집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아이들에게 결핵이 옮길까봐 가장 걱정했어요. 서울에서 한의사를 하신 아버님이 여기저기 좋은 약을 구해주시면서 저를 살려내셨어요. 부모님의 자식사랑 정말 끝이 없는 것 같아요”라며 당시의 어려운 상황을 회고했다.

    시련의 언덕 다음에는 행복의 평지라고 했던가.

    마산에서의 생활을 청산한 작가는 1984년 창원시 용호동 현재 거주지로 이사했다. 당시 창원이 조성되는 초창기라 땅과 집값이 싸 집을 장만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동안 그려온 그림을 지하실에 보관했지만 그림작업을 충족시켜줄 만한 마땅한 아틀리에가 없었다. 지하실에 보관한 자식 같은 그림들은 습기에 썩고 생쥐들이 파먹고 집을 지어버려 작품을 모두 버려야 했다.

    그래서 자신만의 아틀리에를 만들기 위해 살림집 옆에 남아 있던 주택지를 매입해 현재의 작업장을 만든 것이다.

    김 작가는 “땅을 매입해 대충 아틀리에를 지으려고 했지만 평소 알고 지내던 건설사 사장이 처음 지을 때 제대로 지어야 한다며 돈은 천천히 줘도 되니 나에게 맡겨라고 해 현재의 작업실이 탄생했다”며 행운 같은 아틀리에 건축기를 소개했다.

    집도 있고, 아틀리에도 있고. 그래서 김 작가는 굳이 고향 서울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여기가 고향이고, 여기 사람들의 냄새가 좋고, 여기 지리에 밝아 그냥 눌러 살기로 했다. 추상, 반구상보다는 구상을 고집하면서….

    김 작가는 “스승님이 걸어온 길도 그렇고, 나의 길도 그렇고 오직 ‘구상’이라는 한길을 걸어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나의 그림 속에서 자기가 노력하다 보면 변화를 주기 싫어도 나이 들어가면서 일어나는 자연적인 현상에 따라 그림도 변해간다”면서 “요즘 젊은 작가들은 너무 빠른 시간 안에 변화를 주려고 한다. 명곡은 세월이 지나도 대접을 받는 만큼 힘과 정신으로 한 분야를 꾸준히 하다 보면 명품이 탄생한다”고 화단의 후배들에게 한마디 남겼다.

    조윤제기자 cho@knnews.co.kr

    ▲김태홍 작가는

    1946년 서울에서 출생한 김 작가는 서라벌예술대학교 미술학부 서양화과를 졸업했으며, 경남대, 창원대에 오랫동안 출강해 지역예술계에 제자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개인전을 6회 가졌으며, 한일프랑스교류전(2008년·일본 오카키시), 한불 수교 120주년 기념전(2006년·예술의 전당), 말레이시아 미술협회 합동전(서울시립미술관·2008년), (사단법인)목우회 회원전, 한국수채화협회전 등 초대전·그룹전에 295회 출품했다. 경남추천작가상, 일본 오카키시 시장상, 경남미술인상, 대한민국미술대전 2회 입상, 경남미술대전 13회 입상 등 수많은 입상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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