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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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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47) 남강 20- 진주시 이반성면

시골 간이역부터 신라시대 암자까지 역사 나들이

  • 기사입력 : 2009-07-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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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헌고택 사랑채


    성전암에서 바라본 풍경


    성전암 목조여래좌상


    성전암 범종


    이번 여름방학에는 아이들이 학교와 가정을 떠나 짧은 여행이라도 가보라고 부탁하고 싶다.

    여행은 낯선 풍물 속에서 자신과 만나는 일이다. 자신과 만나는 일상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여행이다. 공부를 하든 여행을 하든 삶에 있어 목표가 우선 정해져야 한다.

    우리는 외국에 나가 보면 모두 애국자가 되듯이 여행을 떠나 보면 자신에게 소중하지 않게 느껴지지 않았던 아주 작은 것까지 귀중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여행은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만나고 서로 다른 가치를 공유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목표를 결정하는 좋은 공부가 된다.


    경전선 평촌역

    ◇ 평촌역과 은헌고택

    이반성면 소재지에서 평촌역으로 가는 길에는 봄이면 보리밭이 물결처럼 바람에 일렁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모를 심은 논으로 변해 있었다. 세월은 속절없이 참 빠르게 흐른다. 이제는 농촌 들판에서도 사람들 만나기가 쉽지 않다. 옛날에는 느림의 미학으로 소의 목에 걸려 있는 워낭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농기계 소리가 요란하다. 경전선 평촌 철도 건널목을 건너면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있고 빛바랜 역 간판을 달고 있는 평촌역이다.

    지난 5월 코레일은 역무원 무배치 180개역 중에서 36명의 무인역 무보수 명예역장을 선발했다고 한다. 경전선의 평촌역도 2004년 12월부터 역무원 무배치 간이역으로 변경되어 세월의 흐름을 비껴가지 못했다. 역무원이 없는 역사에는 군데군데 낙서가 있고 버려진 열차표만 뒹굴고 있었다. 무인역 명예역장에는 161명이 지원하였고 선발된 무인역 명예역장에는 전직 대학 총장을 비롯하여 대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무인역 명예역장에 의해 썰렁함이 가득한 경전선 평촌역이 새로운 문화의 공간으로 자리 잡아 가기를 바라며 은헌고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은헌고택은 평촌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반성면 평촌리 210에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주차장이 있고 느티나무 주변은 사람들에게 시원한 쉼터를 제공하고 있었다. 마을 사이로 난 좁은 담장 길을 따라가면 군데군데 빈집이 보였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니 낯선 사람을 보고 개가 짖어대고 있었다. 은헌고택은 청주한씨 은헌공파 한사원(1860~1908)이 건립하였다.

    고택을 돌보는 후손 한기락(70·☏ 010-9520-7090)씨가 인기척에 나와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후손이 거처하는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전·후에 툇마루를 두었고, 5량 구조로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안채 정면을 6칸으로 구성한 것은 민가에서 보기 드문 경우이다. 전면 반 칸을 모두 툇간으로 구성하고 방 부분은 반 칸의 후퇴까지 공간을 확장하였다. 사랑채에 대청마루 외에 청마루를 두어 구조가 실제 쓰임새에 따라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채의 삼합문은 중간을 육각으로 하여 빗살을 지르고 상하를 띠살로 구성하여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1년 한기락씨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문짝을 도난당한 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사랑채는 온돌이 내려앉아 불을 때면 방바닥에서 연기가 나오고 집 한쪽 구석에서는 비가 새며 허물어지고 있었다. 한옥은 현대인의 생활에서 보면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이 있다. 관리를 하는 사람이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것이 우리 문화재를 사랑하는 것이다.


    성전암 대웅전

    ◇ 오봉산과 성전암

    한기락씨와 평촌마을 어귀에서 아쉬운 작별을 하고 성전암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예전에는 오봉산을 갈 때 경전선 평촌역에서 내려 낙남정맥 산길을 찾아서 갔었다. 이제 도로를 따라 들판 사이를 따라가면 올망졸망한 마을 사이를 지나 산길로 이어진다. 그 아름다운 산길을 감싸고 있던 소나무들이 군데군데 노랗게 죽어가고 있었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이라고 하지만 멀게만 느껴지던 재난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성전암은 이반성면 장안리 오봉산(524.7m) 중턱 바위를 깎은 듯한 벼랑에 자리 잡고 있다. 가파른 산을 깎아 절까지 도로를 만들어 놓아 걸어가면서 땀 흘리며 느꼈던 느림의 즐거움은 없어져 버렸다. 성전암은 신라 헌강왕 5년(879)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절이다. 이곳에 암자를 짓고 ‘성인이 살던 곳’이라는 뜻으로 ‘성전암’이라고 했다. 조선 인조 임금이 능양군으로 있을 때 이곳으로 피신하여 백일기도를 올린 뒤 왕위에 올랐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인조각에는 인조 임금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에 있는 목조여래좌상은 유형문화재 제350호로 높이 60㎝, 폭 43㎝이다. 불상의 상태는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머리에 상투 모양과 구슬이 표현되어 있다. 입은 야무지게 다문 모습이다. 옷자락은 양쪽 어깨에 걸쳐서 U자 모양으로 흘러내리고 있고 불상의 수인은 아미타여래의 9품 중에서 중품중생인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안내판이나 자료에도 엉뚱하게 하품하생인을 연출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진주시청 담당 공무원에게 안내판이 잘못되어 있다고 하였지만 마음대로 고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 행정관청이 답답했던지 글자를 긁어서 고치려 했던 흔적이 있었다.

    언젠가 절집을 방문했을 때 스님이 수박을 보통 사람들은 버리는 것을 얇은 껍질을 벗겨내고 먹고 있었다. 수박이 부족한 줄 알고 물었더니 먹고 나면 똑같은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제 스님은 인연 따라 다른 절집으로 갔지만 성전암에 가면 늘 그 스님의 검소한 모습이 떠오른다. 성전암에서 부모님이 기도하여 부처님 공덕으로 태어났다는 터줏대감 명동보살 강범조(80)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성전암의 역사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분이다. 대웅전 불사를 할 때는 도로가 없어 산길을 따라 간장독을 이고 날랐으며 부처님 오신 날에는 인근 여러 마을을 돌며 700여명의 신도들에게 등을 달도록 하였다고 했다. 고즈넉함이 가득한 요사채 마루에서 녹차를 여러 잔 나누었지만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성전암 가는 길은 새벽이 아름답다. 이른 아침에 성전암으로 가는 길에는 남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저수지가 여러 개 있다. 고요함이 묻어나는 새벽길 저수지는 피어오르는 물안개로 자연이 주는 그윽한 아름다움이 있다. 대웅전을 등지고 서서 끝없이 이어지는 시선을 따라가면 넓은 바다처럼 펼쳐지는 안개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천상의 세계에 있는 착각에 빠져든다. 그 풍경을 감히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다가오는 아름다움이라 하고 싶다.

    절집은 항상 후덕함이 묻어나야 한다. 그것은 순전히 절집에서 공양간을 지키는 공양주 보살의 몫이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절집 살림에 가설 건물로 만들어진 공양간에는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은 마음씨 후덕한 공양주가 있다. 언제나 찾아가도 고운 마음으로 식사를 내주는 공양주 보살이 있어 성전암 발길이 잦은지도 모르겠다. 공양을 하고 나면 커피까지 챙겨주신다. 절집을 나서는데 공양간 벽면에 일회용 커피, 종이컵, 하이타이, 피존, 퐁퐁, 라면, 휴지, 식용유, 고무장갑을 보시해 달라고 붙어 있었다.

    (마산제일고등학교 학생부장, 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여행 TIP <맛집 >

    ◇중도식당(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임상화 ☏ 055)754-7222)= 가정집 분위기가 풍기는 조촐한 식당이다. 주인의 깔끔한 손맛으로 지역에서 나오는 재료를 이용하여 음식을 조리한다. 정식(5000원)으로 점심만 하는데 반찬이 6~7가지 나온다.

    ◇초원식당(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김순옥·☏ 055)754-7651)= 삼겹살 1인분 6000원. 오리 1마리 3만원. 정식 5000원. 오리고기를 제외한 모든 음식은 이곳에서 생산하는 것을 재료로 사용한다. 시골 여행길에 가볍게 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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