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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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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키우는 역사논술] (14) 역사는 공식이 아니다

수학공식처럼 외우는 역사공부는 버려라

  • 기사입력 : 2009-08-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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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는 원래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놀랄 수 있겠지만 사실이다. 우리는 여전히 근대 속에 살고 있다. 근대라 함은 기본적으로 시민사회,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따라서 우리는 여전히 근대에 살고 있다.

    그러면 현대라는 시대 구분은 어찌 나왔는가? 근대 가운데서도 우리 현실과 직접 맞닿아 있는 부분을 따로 떼어 현대라고 지칭한 것이다.

    바로 역사학자들이 임의로 붙인 이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는 임의적이고 유동적이다.

    지금은 1945년부터 현대라고 분류하지만, 아마 2050년에는 1987년부터 현대라고 분류할 수도 있다. 2200년에는 2100년부터 현대라고 분류할 수도 있다.

    이렇듯 우리가 배우는 역사 속에서는 역사학자들이 임의로 붙인 이름이나 구분이 많다. 예를 들어 보자. 조선 말기 개화파와 쇄국파(위정척사파)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또 개화파 가운데에서는 온건적 개화파, 급진적 개화파로 나눠질 수 있다. 개화파들은 새로운 세상을 주장했다고, 쇄국파들은 서구문물을 반대했다고 들었을 것이다.

    그러면 정말 개화파들은 조선의 모든 것을 다 갈아엎고, 완전히 새롭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을까? 정말 쇄국파들은 서구문물은 하나도 필요 없다고 주장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아무리 급진적 개화파라고 하더라도 일부 조선의 문물 중 지킬 것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극단적 쇄국파라고 해도 서양의 무기나 몇몇 생각들은 분명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조선의 것을 얼마나 지킬 것이냐, 서양의 문물을 어디까지 수용할 것이냐에 따른 ‘차이’만 존재한 것이다. 그것은 칼로 무 자르듯이 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역사학자들은 분류의 필요성을 느꼈고, 일단 누구는 개화파, 누구는 쇄국파 이런 식으로 분류해 놓는다. 임시로 분류한 것이기 때문에 분류의 기준이나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유동성이 크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외워 버린다. 원래 역사는 외우는 것이라고 교육 받았기에, 이분법적으로 외워 버린다. 개화파와 쇄국파들이 청팀, 홍팀으로 나눠져 싸운 것으로 판단해 버린다. 그 결과 개화파들은 무조건 서구문물에 찬성했고, 쇄국파들은 무조건 반대했다는 식의 공식이 등장해 버린다.

    그렇다. 역사가 수학공식처럼 도식화되어 버리는 것이다.

    도식화된 역사 이해의 문제점은 그것이 평생 하나의 불변의 진리로 굳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디어나 교양·역사 서적들은 이를 편 가르기나 선악의 대립을 바탕으로 손쉽게 역사를 풀어버린다. 그렇게 한 번 굳어진 역사적 이해는 누군가 새로운 사실을 얘기해 주기 전에는 평생 풀 방법이 없다.

    이렇게 역사는 흐릿한 흐름과도 같은 것이다. 이쪽에 있으면 이런 모습이 조금 더 강하게 나타나고, 저쪽에 있으면 저런 모습이 조금 더 강하게 나타나는데, 이것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어떤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할 때, 주변 정황이나 인과관계를 다양하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그것은 도식이 아닌 상황과 흐름에 따른 역동적이고 불확실한 것이라고 이해시켜야 한다.

    우리는 역사적인 것을 도식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도 매우 도식적이다.

    이 사람은 보수고, 저 사람은 진보고, 좌파가 있고, 우파가 있고,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딱딱 잘라 버리는 것은 역사를 도식적으로 이해하는 습관이 그대로 사회에 투영된 것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아무리 보수적인 사람이라도 하나 정도는 진보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진보적인 사람이라도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보수적 사고를 가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는 진보야, 나랑 한마디도 안 통할 거야’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승자와 패자의 구분도 심각한 것이다. 승자독식, 약육강식이라는 단어를 어렸을 때부터 교육 받아온 우리 국민에게 승자와 패자의 구분은 너무 쉽게 내려진다. 하지만 승자는 승리를 거두기 위해 많은 희생을 했고, 오히려 승리했음에도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놓이기 쉽다.

    당나라는 수많은 이민족에게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로 인해 많은 장군과 많은 병력이 필요했고, 결국 이는 당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지게 된다. 고구려는 당나라에게 겉으로는 패배했지만, 이후 꾸준히 살아남아 결국 발해로 이어져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다.

    이렇듯 역사는 원래부터 쉽게 흑백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도식화된 역사관은 도식화된 사회관으로 이어져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역사를 외우기 위해 임의로 행해졌던 도식화 교육은 중단되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의 관점, 하나의 사실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와 흐름 속에서 역사적 감각을 잡아가는 방법으로 교육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임종금(‘뿌리깊은 역사논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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