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6일 (금)
전체메뉴

계곡물 노래하고 바람 춤추니, 이것이 풍류로구나

▲함양 화림동 계곡 정자 나들이

  • 기사입력 : 2009-08-13 00:00:00
  •   

  • 함양 화림동 계곡의 동호정을 찾은 휴양객들이 경치를 즐기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넓은 바위가 해를 가릴 만큼 넓은 바위라는 뜻의 차일암이다.


    동호정


    농월정 터


    군자정


    거연정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立秋)가 지났지만 여전히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이럴 땐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근 후 정자에 올라 매미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시원한 수박 한 조각 베어 물면 그만인데….

    숲 그늘 좋고 계류가 쏟아지며 선들선들한 바람이 더위를 식혀 주는 ‘정자’는 8월 한낮의 더위를 식히기에 제격이다.

    물 맑고 경치 좋은 곳이면 으레 하나씩 들어서 있는 정자는 옛 양반들이 음풍농월을 즐기던 놀이터이자 세상을 논하던 곳이었다.

    정자의 고장 ‘함양’은 예부터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리는 선비의 고장이다.

    무려 80~100여 개에 달하는 정자와 누각이 함양군 내 경승지마다 빼곡히 들어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특히 남덕유산(해발 1507m)에서 발원한 금천(남강의 상류)이 서상, 서하를 흘러내리면서 기이한 바위와 담, 소를 이룬 화림동 계곡은 ‘팔담팔정’(八潭八亭)이라 하여 8개의 못마다 하나씩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화림동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강변 바위에 남천정, 경모정, 동호정, 군자정, 거연정 등 유서 깊은 정자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동호정, 군자정, 거연정은 조선후기에 세워진 유서 깊은 정자들이다.

    한때 화림동 계곡을 대표했던 농월정(弄月亭)은 안타깝게도 지난 2003년 방화로 모두 소실돼 받침돌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고요한 밤에 냇물에 비친 달빛을 한 잔의 술로 희롱한다’는 농월정 계곡의 하얀 너럭바위와 맑고 투명한 계곡물은 여전히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농월정은 관찰사와 예조참판을 지내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지족당 박명부가 노닐던 곳에 후손들이 세웠다.

    이곳에서 2km가량 올라가면 경모정(景慕亭)이다. 계은 배상매 선생이 조선 영조 때 후학을 가르치며 쉬던 곳으로 후손들이 이를 추모하기 위해 1978년 건립했다.

    여기서 다시 1km 정도 가다 보면 화림동 계곡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동호정이 나온다. 냇물 가운데 넓게 펼쳐진 암반과 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동호정은 임진왜란 때 선조를 등에 업고 신의주까지 피란을 갔던 동호 장만리 선생을 추모하여 후손들이 1890년께 세웠다고 한다. 정자 앞 계곡에는 큰 너럭바위가 섬처럼 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차일암(遮日岩)이다. ‘해를 가릴 만큼 넓은 바위’라는 뜻의 차일암은 한꺼번에 500여명이 들어설 수 있을 정도로 넓고 평평하며 모래톱도 있어 많은 휴양객들이 이곳에서 물놀이와 탁족을 즐긴다.

    동호정은 다른 정자와 달리 투박함을 자랑한다. 2층 누각을 오르는 계단은 통나무를 잘라 층계를 만들었고, 울퉁불퉁한 기둥은 자연목 그대로를 가져다 써 멋스럽다.

    다시 길을 재촉해 도착한 군자정(君子亭)은 소박하지만 기품이 느껴진다. 단청 하나 없는 무채색으로 원목 그대로의 자연미를 살린 모습이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 조선 5현이며 동국 18현 중의 한 사람인 일두 정여창을 추모하기 위해 후세 사람들이 1802년 세웠다는 이곳은 군자가 올라 쉬던 곳이라 하여 군자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군자정은 전면 3칸, 측면 2칸으로 규모는 작고 아담하지만 강렬한 남성미가 느껴진다.

    더위를 피해 서늘한 정자 그늘 아래에서 담소를 나누는 휴양객들의 모습이 정겹다. 아쉬움이 있다면 주변에 음식점, 숙박업소 등이 생겨나면서 고풍스런 옛 멋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주변 경치가 수려하기로는 거연정(居然亭)이 단연 최고다.

    군자정과 100여m 사이를 두고 있는 거연정은 고려말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인 진시서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872년 세웠다. 두문동 72현이란 고려가 망하자 벼슬과 명예를 버리고 숨어든 72명의 선비를 뜻한다.

    정자로 가기 위해 ‘화림교’ 구름다리를 건너니 삐걱거리는 철교 소리가 주변의 고즈넉한 풍경을 깨운다. 거연정에 올라 주변을 바라보니, 하얀 암반과 노송이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강 한가운데 바위에서 130여년 동안 비바람과 홍수를 견디어낸 거연정의 자태가 신비로울 따름이다.

    정자 앞을 흐르는 계곡물을 옛 선비들은 ‘방화수류천’(訪花隋柳川)이라 불렀는데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간다’는 뜻이 담겨져 있단다.

    이처럼 함양에 정자가 많은 이유는 사화 이후 중앙 진출이 막힌 영남의 선비들이 계곡과 강변의 경승지를 찾아 정자를 짓고 시서(詩書)를 논하며 풍류를 즐겼기 때문이란다.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찾아가는 길= 창원-남해고속도로-통영대전 고속도로-지곡IC-안의면(24번 국도)-화림동 계곡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준희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