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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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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을 말한다 (10) 연극 ‘해평 들녘에 핀 꽃’ 연출 장창석씨

한평생 연극인생 걷게 만든 ‘형의 선물’이죠

  • 기사입력 : 2009-08-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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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출가 장창석씨가 극단 벅수골에서 차기작품을 구상하며 연극과 관련된 서적을 읽고 있다.

    ‘양반 상놈 없는 세상을 꿈꾸며 찾아온 해평 마을, 양반이 지배하지 않는다 해도 사람 세상에는 시기와 질투, 음모, 계락이 난무하고 여자는 남자의 정욕에 희생제물이 되어야 하는 세상,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아닌가 보옵니다. 이 한 몸 바다에 던져 당신의 영혼과 함께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고자 하나이다.’ - ‘해평 들녘에 핀 꽃’ 대사 중-

    우리나라 연극계의 거목인 동랑 유치진 선생의 고향인 통영. 그곳에 가면 한평생 연극만을 사랑하며 홀로 외길을 걸어온 예인(藝人) 장창석(극단 벅수골 대표)을 만날 수 있다.

    통영연극의 지킴이이자 산 증인 연출가 장창석(56).

    그 누구보다 연극을 사랑하며 연극에 미쳐 한평생을 연극과 함께한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 그에게 가장 소중한 작품을 꼽으라면 형(장현·1986년 작고)이 남긴 유작 ‘해평 들녘에 핀 꽃’일 것이다.

    그의 연극 인생은 형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형의 죽음이 자신이 연극과 인생을 같이하게 된 계기가 됐으며 만약 이 아픔이 없었다면 자신이 지금까지 연극을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 말한다. 장 대표는 매년 기일, 명절은 물론 중요한 연극행사와 공연을 앞둔 시점이면 언제나 형의 산소를 찾아 머리를 조아린 후 형과 대화를 나눈다.

    통영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 ‘해평 열녀’를 모티프로 만들어진 연극 ‘해평 들녘에 핀 꽃’은 1985년 4월, 경남대학교 완월강당에서 열린 제3회 경남연극제에서 극단 벅수골에 의해 초연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86년 10월 형(장현)이 소극장 연극축제 중 갑자기 심장마비로 숨지면서 시련을 겪게 된다.

    형을 잃은 아픔과 슬픔을 작품연습에 매달리며 그리움을 삭인 그는 마침내 1988년 1월, 충무실내체육관 개관기념 공연에서 연극과 소리(국악), 무용이 결합된 마당극 형식의 ‘해평 들녘에 핀 꽃’을 선보이며 3000여명의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게 된다.

    장씨가 자신이 연출한 100여편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해평 열녀’ 설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마음속에 내재된 우리 민족의 한(恨)과 혼을 노래와 춤으로 보여줌으로써 함께 웃고 울며 배우와 관객들이 하나 되는 무대를 만들어 열악한 지방연극의 활로를 모색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시민문화회관 개관 및 10주년 시민의 날, 서울 통영향인의 밤, 제9회 경남연극제(우수상) 등에서 공연되며 그는 연출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에게 ‘해평 들녘에 핀 꽃’은 양반과 상놈이 없는 세상에서 사랑을 꿈꾸며 천상을 지향하는 주인공들처럼,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는 계급적 현실사회의 모순을 고발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 작품이라고 한다.

    처음 리얼리즘 형식으로 시작된 ‘해평 들녘에 핀 꽃’은 장 대표에 의해 전통춤과 가락을 바탕으로 현대연극이 가미된 뮤지컬 형식으로 재구성됐다.

    그는 전통춤과 우리노래 가락으로 삶과 죽음의 근원적인 어려운 주제를 살아있는 놀이문화로 쉽게 풀어냈다.

    연극 ‘해평 들녘에 핀 꽃’은 죽음을 뛰어 넘은 애틋한 부부의 사랑 이야기다. 극은 수절한 여인이 열녀가 된다는 통상적인 개념을 뒤집는다.

    옛 바닷가 여인들에게 간음은 옥문이 더럽혀져 고기잡이도 안 되고 마을에 재앙이 든다고 하나 남편을 살리기 위해 옥문을 더럽힌 아내에게 하늘이 점지해 마을 잎사귀에 벌레들이 ‘해평 열녀’라는 글귀를 새기면서 뒤늦게 깨달은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열녀로 추앙한다는 내용으로, 인간적 사고기준을 초월한 작품이다.

    작품의 무대는 1780년. 통영(통제영) 영문 밖 해평 마을이다. 이곳에는 임진왜란 당시에 충무공 이순신 수하들 중 전함에서 노를 저은 사공 출신의 어부들이 모여 살았다.

    당시 이 마을은 양반출입이 금지된 상놈 촌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양반의 자제로 보이는 바우와 그의 아내가 이 마을에 흘러들어와 살아가게 되고, 바우는 배를 타게 된다. 첫 출어로 만선의 기쁨을 안은 바우는 진상품을 영문에 바치러 갔다가 진상어종이 하품이라 하여 문초를 받게 되면서 역모를 한 무리들이라 의심받아 하옥된다. 이 마을에 대대로 내려오는 특전을 박탈당하게 된 마을 사람들은 봉기를 하게 되고 이에 관아는 진압을 한다. 바우의 아내는 남편이 하옥되자 그를 구하기 위해 사또를 찾아가게 되고 미색에 반한 사또는 그에게 수청을 들게 한다. 이로 인해 바우는 풀려나지만 마을에 이상한 소문이 떠돈다. 바우는 배를 타고 바다로 떠나지만 풍랑을 만나 죽게 된다. 남편을 그리워하던 바우의 아내는 바다에 뛰어들고 사흘 후 남편과 함께 바다에 떠오르는데….

    그는 형이 남긴 ‘해풍 들녘에 핀 꽃’은 희곡이라기보다는 연출노트 형식에 가까워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새롭게 재구성·각색할 수 있는 여지가 무궁무진하다며 매년 새롭게 달라진 작품 구성으로 관객들을 찾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다.

    극단 벅수골은 1981년 통영시 중앙동 옛 수천당병원(현 통영우체국) 자리에 처음 둥지를 틀었다. 이곳에서 3년간 작품 활동을 하다 지금의 통영 중앙시장 중앙상가 지하로 옮겨왔다.

    당시 배우이자 연출가인 형을 도와 극단 벅수골에서 무대미술, 장치, 조명 등을 맡아 함께 작품 활동을 하던 장 대표는 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연출가로 탈바꿈해 작품 연출을 한 지 벌써 24년째다. 그의 타고난 끼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며 소극장 무대를 활성화하는 등 통영 연극을 전국의 무대에 알렸다.

    장 대표는 자신을 연극처럼 살아온 ‘통영의 들꽃’이라 소개한다.

    100여편에 이르는 작품연출과 10여편에 배우로 출연하며 통영의 대표적인 축제인 한산대첩축제 군점분과 위원장을 맡아 옛 삼도수군의 통제영 군점 재현을 10여년간 연출해 오고 있다.

    극단 벅수골은 초창기 3형제(장현·장영석·장창석)가 연극을 함께 시작했으나 96년 이후 장 대표가 극단 벅수골을 이끌며 연극 혼을 불사르고 있다.

    글·사진= 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 연출가 장창석은...

    1953년 통영 출생, 통영중학교를 거쳐 서울남산전문고등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건축회사, 여행사, 자영업 등을 하다가 1981년 형이 창단한 극단 벅수골에서 무대장치 등을 돕다 갑작스레 찾아온 형의 죽음으로 인생 항로가 바뀌며 연극과 결혼, 50대 총각으로 연극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앞으로 통영연극예술축제 집행위원장으로 통영이 배출한 걸출한 예술가들의 시 소설 음악 미술 등 통영테마를 소재로 한 연극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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