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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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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여성 결혼이민자의 명절나기- 심인선(경남발전연구원 여성가족정책센터장)

  • 기사입력 : 2009-09-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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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족의 명절 추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느 때보다 짧은 명절기간과 아직도 끝이 안 보이는 경제위기로 인해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서긴 하지만, 멀리 있는 가족을 만나는 명절은 여전히 설레는 일이다. 자주 만나던 가족이라도 명절이라는 기분으로 더 흥겹기를 기대하는 마음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방송에서는 벌써부터 서울에서 부산까지 일곱 시간 걸리네, 여덟 시간 걸리네 하는 분석자료를 내놓았고, 지역에 계신 어르신들은 고달프게 내려올 수도권 사는 자식들의 불편을 생각하여 올라가 명절을 지내기로 했다는 말씀을 하신다.

    이런 명절이 다가오면 필자는 몇 년간의 유학생활이 생각난다.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가족과 친지가 함께 모여 칠면조 고기를 먹는다. 유학을 간 첫해에는 공부 중 맞이하는 보너스 같은 휴식이 그저 좋았었는데, 모든 가게와 상점이 문을 닫아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집에 있던 음식 부스러기들을 긁어 먹으면서 고국의 가족을 그리워했었다. 다행히 다음 해부터는 지도교수 댁에 가 지내기도 하고, 유학생끼리 한국식으로 닭을 구워 먹기도 했으며, 대형마켓에서 조리된 칠면조를 주문해 먹기도 했지만, 여전히 쓸쓸했고 이방인이었던 기억은 지워지질 않는다.

    이맘때가 되면 여성 결혼이민자, 특히 아시아권에서 온 이주여성에 초점을 맞춘 기사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가족이 더 생각나는 우리의 명절에 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한국의 명절과 차례를 어떻게 지내는지, 음식이 주가 되는 명절 치르기를 얼마나 잘 해가고 있는지 기사화한다. 그래서 고운 한복을 입은 이들이 한국의 고유음식인 김치를 담그고, 차례상을 차리기 위해 시어머니와 함께 음식 장만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럴 때마다 필자는 생각한다. 이들이 남편, 가족들과 함께 하고 있으므로 필자의 쓸쓸했던 외국에서의 명절 기억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명절이 되면 새삼스레 드는 생각은 가사분담의 여성 부담에 관한 것이다. 2008년 가사분담 실태조사를 보면 경남의 경우, 부인이 주도한다는 비율이 전국보다 2.6%p 높고, 부인이 전적으로 부담한다는 비율이 44.7%로 전국의 33.4%에 비해 11.3%p나 높다. 이는 경남이 여전히 가부장적이라는 반증이다. 예상하건대 결혼이민자의 가사분담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사실 언론에서도 명절 치르기의 가사일은 당연하다는 듯이 여성결혼자의 몫인 것처럼 다룬다. 더욱이 여성 결혼이민자는 한국문화 체험이라는 이름 하에 우리나라 여성들도 잘 하지 못하는 김치 담그기, 장 담그기, 제사상 차림, 큰절하는 법, 한복 입는 법 등을 배우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한국어 습득과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십여년을 살아온 필자는 결혼식 폐백 때 이외에는 큰절을 한 적도 없고, 집안 내 혼사 때 말고는 한복을 입어본 적도 없으며, 홍동백서·좌포우혜를 알지 못하여 낭패본 적도 없다.

    왜 우리와 언론은 결혼이주여성, 그것도 동남아 지역에서 온 이주여성이 한국 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우리나라 남성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한국사람도 잘 지키지 않고 알지 못하는 한국의 전례풍습을 결혼이민여성이 꼭 알아야할 덕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의 문화를 동등한 것으로 본다고 할 수 없다.

    미국은 최대의 명절인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이 보는 유명 TV프로그램에서 다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룬다. 기독교 기반으로 세워진 미국에서 유대인의 명절인 하누카(Hanukkah)와 흑인들의 명절인 카완자(Kwanzaa)를 소개하면서 각 명절의 의미와 의식 등을 공유하고, 주류사회의 신앙과는 다른 신앙을 가지고 기념하는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이제 우리의 명절에도 또 우리의 삶에도 결혼이주여성이 우리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어떤 문화와 음식, 생활로 우리와 함께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여야 할 때이다.

    심인선(경남발전연구원 여성가족정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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