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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태 四柱이야기] 인간의 행불행(幸不幸)

  • 기사입력 : 2009-10-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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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석연휴 텔레비전에서 곰배령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춰 주었다. 강원도 인제에 해발고도 1000m 정도에 위치해 있는 이 고갯마루는 수천 평에 걸친 광활한 초원지대로, 봄에는 산나물이 풍성하게 돋아나고 철따라 작은 꽃들이 아름다운 화원을 이루고 있다.

    기암괴석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계곡과 함께, 정상에 오르면 초원 위로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야생화가 피어 있다. 이 야생화 사이로는 곰취, 참나물, 산당귀 등 산나물이 지천에 널려 있다.

    천연의 산머루와 토종꿀, 송이버섯 등을 먹으며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니 ‘저렇게 사는 것도 좋겠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론 살아 보면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리라. 그러나 인간이 자연의 넉넉함을 빌리는 데에 그만한 기회비용은 지불할 만하지 않을까.

    중국 송나라 유학자인 정이천(程伊川) 선생은 누구나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불행일 수 있다며, 인간의 세 가지 불행(三不幸)을 역설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정전서(二程全書)에 실린 그 불행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불행은 소년등고과(少年登高科)라. 어린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이요, 두 번째 인생의 불행은 석부형제지세위미관(席父兄弟之勢爲美官)이라. 부모형제의 권세에 힘입어 좋은 벼슬을 하는 것을 이른다. 세 번째는 유고재능문장(有高才能文章)이라. 뛰어난 재주로 문장에만 능숙한 것이다.

    젊어서 출세하고, 부모형제 잘 만나서 고생 안 하고, 재주 많고 똑똑한 것, 이는 우리 모두의 바람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인생의 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천재 소리 듣고 자란 사람 치고 말년까지 명성을 떨친 이 없으며, 잘난 부모 믿고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그것 또한 불행으로 가는 단초가 될 것이고, 재주와 능력을 믿고 안일함에 빠지는 것도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을 정이천 선생은 경고하고 있다.

    곰배령에서 산나물과 고사리를 뜯어 먹고 살아도 행복할 수 있고, 대도시에서 온갖 권력과 부(富)를 누리고 살아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행복지수는 생활의 편의와는 관계없다.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살면서 마음만 편하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취업시험이 한창이다. 낙방한 아들을 둔 어느 부모의 실의에 찬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행불행이 과연 일찍 출세하는 것에 있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일찍 출세도 못하고, 잘난 부모를 만나지도 못하고, 뛰어난 재주와 능력은 없지만 인생을 마지막까지 가 봐야 함은 분명하다.

    역학 연구가

    정연태이름연구소  www.jna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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