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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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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도둑의 족보- 박성덕(창원시 재향군인회 부회장)

  • 기사입력 : 2009-10-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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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둑은 도둑질하는 기술로 족보를 세운다고 한다. 교도소의 한 감방장이 수용된 도둑들을 모아 놓고 ‘남의 목에다 칼을 대고 도둑질하는 놈은 못난 도둑놈이고, 권력의 힘을 팔아서 남의 것을 터는 놈은 더러운 도둑이다. 가짜 서류나 세 치 혀를 앞세워 남을 속이고 등치는 사기꾼은 날도둑놈이고, 남의 주머니를 칼로 찢어 슬쩍하는 놈은 얄미운 도둑이며, 가난한 집을 터는 놈은 천벌 받을 도둑이고, 인심 잃은 부잣집을 터는 자는 훔친 것을 다시 훔치는 것이므로 떳떳한 도둑이다’라고 훈시를 하며 도둑질하는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이 중에서 어떤 도둑이 가장 훌륭한 도둑인가라는 질문에 사기죄로 들어온 도둑이 ‘다른 도둑은 모두 남의 집 담장을 넘거나 몸에 지닌 것을 빼앗는 것으로 죄질이 나쁠 뿐 아니라 쉽게 노출되어 붙잡힐 염려가 많고 노동력이 크게 투자되지만 종이 몇 장에다 가짜 도장을 찍고 나면 수십억씩 생기는 도둑질보다 나은 돈벌이가 없다’고 했다. 이에 감방장은 ‘쌓아둔 돈을 그냥 가지고 나오는 도둑질에 비해 남을 속여서 돈을 챙기는 사기꾼이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도둑놈이다. 너 같은 놈은 사람을 훔치는 놈이라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훈계하며 따귀를 때렸다. 이처럼 도둑의 세계에서도 공문서를 위조하여 횡령하거나 사기를 치는 도둑을 제일 나쁜 족보에 올려 놓는다.

    대검찰청 중수부는 지난 3월부터 국가예산, 보조금, 공공기금 횡령 비리를 단속해 150명을 구속 기소하고 546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등 총 696명을 적발했다고 지난달 27일 밝힌 바 있다. 적발된 자들은 공무원, 기업체 대표, 교수, 군인, 시민단체 간부, 복지시설 운영자, 농어촌 주민, 승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나랏돈을 제 돈 쓰듯 빼돌렸으며 그 규모는 무려 1000억원에 이른다고 했다.

    옛날 관청에서 남에게 내주어야 할 돈과 물건의 출납을 미적미적하며 술수를 부려 남의 몫을 자기의 것으로 빼돌리는 사람을 일러 창고지기라고 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창고지기 같은 관리와 사회 곳곳에서 힘없는 자들을 이용하여 자기 배만 불리는 자가 많은 듯하다. 그래서 옛날 관청을 두고 복마전이라고 했던 것이다. 창고지기가 도둑이면 곳간에 있는 모든 것은 장물이나 다름없다. 나라의 재산을 장물처럼 여기는 관리는 분명 날강도이며 나라를 훔치는 도둑인 것이다. 공자는 ‘나라 살림을 해야 할 관리들이 제 살림하기에 급급하면 그 나라는 도둑을 가슴에 안고 있는 꼴이 되고 관리들이 부자로 살려고 하면 강도를 모시고 사는 꼴이 되고 만다’고 했다.

    공직자가 자기 본분을 다하지 않고 녹을 받으면 지탄의 대상이 된다. 나를 앞세우고 남을 뒤로 밀쳐내는 사람과 내 욕심을 사납게 부리며 남의 입장을 몰라주는 사람은 도둑이나 다름없다.

    조선의 관리는 임금의 신하였지만 지금의 공직자들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신하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국민을 무섭게 여기고 국민에게 이로운 행정을 펼쳐야 하며 국민에게 돌아갈 몫을 내 앞으로 돌려 나쁜 도둑의 족보에 오르는 불명예스런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성덕(창원시 재향군인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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