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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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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시를 시집 속에서 끄집어내자- 정일근(시인)

  • 기사입력 : 2009-10-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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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 한 권의 시집이 있다. 한 시인의 잠 못 드는 그 사유가 시를 쓰게 하고, 가슴 뛰게 하는 그 꿈이 시집을 묶는다. 시집 한 권이 묶여져 세상에 나오는 데 시인이 바치는 열정은 참으로 크고 위대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시집이 책장에 꽂혀버려 먼지 쌓인 장식이 되거나 더 이상 읽지 않는다면 시집은 ‘시의 무덤’이 된다. 나무로 만든 종이 무덤에 갇힌 시는 더 이상 시인의 노래가 되지 못한다. 시집을 펼쳐서 그대가 소리 내어 읽어야 시는 살아 있다.

    종이에 활자로 찍힌 시집 속의 시는 1차원적이고 평면적일 뿐이다. 그러한 시들이 소리 내어 읽어 주는 독자를 만나면 3차원적이며 입체적으로 되살아난다. 지금도 많은 문학제가 열리고 다양한 시낭송회가 열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문학과 시를 살리기 위해서이다.

    우리 경남은 전국적으로도 굵직굵직한 문학행사가 열린다. 가히 ‘문학수도’라고 이름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통영의 ‘통영문학제’, 진주의 ‘이형기문학제’, 사천의 ‘박재삼문학제’, 함양의 ‘지리산문학제’, 진해의 ‘김달진문학제’, 하동의 ‘평사리문학제’와 ‘이병주문학제’, 의령의 ‘청강문학상’ 등은 전국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문학제며 문학행사다. 앞으로 유배문학관을 준비 중인 남해의 ‘서포문학상’까지 더해지면 경남문학사에 사상 최고의 르네상스가 펼쳐질 것이다. 여기다 경남문인협회 김복근 회장이 목하 구상 중인 도(道) 단위 규모의 국제적인 문학행사가 더해진다면 경남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문학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그대, 기회가 되면 그 문학제의 객석에 참석해 보라. 문학 속에서, 시집 속에서 침묵하는 노래들이 생명을 얻어 터져 나온다. 그 노래들이 그대의 가슴을 뛰게 하고 잃어버린 꿈을 찾아 줄 것이다.

    혹자는 많은 문학제와 문학상, 옥석을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시집에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문학이 위기라는 시대에 시가 살아서 독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더욱더 시집 속의 시를 끄집어내는 투자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시는 독자의 박수로 자란다.

    시는 자연과 신이 인간에게 준 ‘영혼의 선물’이다. 이 시가 언제부터 시인들만의 잔치로 변질해가는 데에는 독자들의 잘못도 있다. 경남사람들이 경남시인들의 시를 읽어주지 않는다. 많은 예산을 들여 만든 좋은 행사에도 객석이 빈다는 것이다.

    최근에 경남에 좋은 시집이 많이 나왔다. 창원의 김일태 시인이 병마를 이기고 펴낸 시집 ‘바코드 속 종이달’(시학刊)은 최근 한국문단의 유수한 문학상인 ‘시와시학 젊은시인상’을 수상했다. 한국문단은 좋은 시집으로 선정해 상을 주는데 그대는 과연 그 시집의 존재의 무게를 알고 있는가?

    등단 절차를 밟지 않았지만, 마산의 정신과 전문의인 문석호씨는 20대부터 30년간 틈틈이 써온 시들을 모아 첫 시집인 ‘까르까르의 철학적 상상’(불휘刊)을 냈다. 독특한 정신세계를 연금술로 녹여 내는 그의 시는 시인인 필자에게도 큰 감명을 주었다.

    마산의 이달균 시인은 최근 고성오광대 놀이를 주제로 한 사설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동학시인선刊)를 냈다. 고성오광대를 사설시조로 풀어낸 그의 역작에 한국문학이 쏟아낼 찬사가 벌써 기대될 정도다.

    앞에서 필자는 경남문학의 르네상스를 이야기했다. 그 르네상스의 완성은 독자인 그대의 몫이 있어야 완성된다. 가을이 깊어간다. 시집을 펼쳐 시를 읽자. 경남의 시를 읽어 경남사람들 속에 살아 있게 하자. 시집 속의 시를 끄집어내어 우리와 함께 살아 숨쉬게 하자.

    정일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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