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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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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요, 발끝 들어 손짓하는 가을억새

★ 화왕산 억새평원

  • 기사입력 : 2009-11-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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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빛 물결이 출렁이는 창녕 화왕산 억새밭 사이를 등산객들이 거닐고 있다.


    배바위에서 바라본 창녕 화왕산 억새 군락지.


    억새풀이 춤을 춘다.

    ‘휘이잉~’ 바람이 불 때마다 민둥산 너른 평원이 은빛 물결로 출렁인다.

    지난날의 아픔을 딛고 새롭게 태어난 억새풀은 포근한 솜털을 살며시 감싸듯 포근하게 안겨온다.

    소박하면서도 은은하게 전해져 오는 억새의 매력은 가을이 더욱 깊어짐을 느끼게 한다.

    한 점 바람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며 군무를 연출하는 억새의 아름다움은 화려한 빛깔을 자랑하는 단풍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너무나 아름다운 그 모습에 발걸음을 붙잡혀 제법 오래도록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1일 은빛 향연이 펼쳐진 창녕 화왕산 억새평원을 찾았다.

    옥천 매표소에서 구룡교를 지나 화왕산 정상까지는 대략 4km가량. 능선을 따라 산성에 이르는 비교적 평탄한 길을 따라 올랐다. 한 걸음 한 걸음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오색 단풍으로 물든 산등성이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 색깔이 너무 곱고 예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신은 어떻게 이런 예쁜 색깔을 빚었을까?’ 혼자 중얼거리며 오르는 산길이 심심치만은 않다. 오가는 등산객들과 인사도 나누고 붉게 물든 단풍을 세어 보기도 한다.

    얼마나 올랐을까. 정상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너와집과 움막집, 굴피집 등으로 꾸며진 드라마 ‘허준’ 세트장이 나타난다.

    조선시대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한 세트장은 허준이 삼적사에서 대풍창(나병)을 앓는 환자를 돌보는 장면을 촬영했던 곳이다. 비록 드라마 촬영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지만 ‘참 소박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저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화왕산성의 동문이 보인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한달음에 내달려 동문에 이르니 눈앞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진다.

    광활한 분지 위에 은빛 물결이 출렁이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야! 멋지다. 언니 저기 좀 봐요. 정말 예쁘죠?” 햇살에 비친 억새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등산객들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억새풀 사이를 나란히 걷는 부부의 모습이 정겹고 행복해 보인다.

    은빛 물결에 취해 한참을 바라보다 평원을 가로질러 서문으로 향한다. 오솔길을 따라 어른 키만큼 훌쩍 자란 억새 사이를 걷다 보니 어느새 억새와 하나된 느낌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사각사각’ 들리는 억새 부딪히는 소리는 자연이 들려주는 한 편의 연주곡이다.

    솜털처럼 가벼운 은빛 억새는 손끝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

    서문을 지나 정상 맞은편의 배바위로 향하는 가파른 길로 접어든다. 오랜만에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힌다. 배바위 정상에 올라섰건만 가슴이 ‘뻥’ 뚫리는 후련함보다는 마음 한편이 저려오는 듯한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배바위, 이곳은 지난 2월 예상치 못한 화마(火魔)로 안타까운 생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의 현장이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아픔이 남겨진 곳이다.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의 모습이 순간 흐느낌으로 다가온다. 이제는 어느 정도 상처도 아물고 새살이 돋아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아픔을 뒤로 한 채 새롭게 태어나는 화왕산을 바라보며 돌아서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3년 만에 친구들과 함께 화왕산을 다시 찾았다는 황궁녀(57·김해)씨는 “화왕산 억새의 은빛 군무가 예년에 비해 올해는 유난히 예쁜 것 같다”며 “아픔을 딛고 새롭게 태어난 만큼 이제는 화왕산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으면 한다”고 말한다.

    ▲찾아가는 길

    △구마고속도로- 창녕IC- 창녕군청- 자하곡 매표소

    △구마고속도로- 창녕IC- 계성면- 옥천매표소

    ▲산행코스

    화왕산을 오르는 대표적인 코스로는 자하곡 매표소와 옥천 매표소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산을 잘 오르는 등산객들은 제1코스인 자하곡 매표소를 출발해 산림욕장~점낭대~배바위 코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으며, 일반인들은 제2코스인 옥천 매표소를 출발, 산림욕장~정상에 오르는 것이 좋다. 또한 초보 산행자와 노약자, 어린이들은 제3코스인 옥천 매표소를 출발해 도성암을 거쳐 정상을 오르는 방법이 가장 수월하다.

    ★도내 억새 군락지

    ▲밀양 사자평= 영남 알프스의 한 봉우리인 재약산(해발 1108m) 정상 동남쪽에 있는 대평원이다. 413만2250㎡에 이르는 대평원은 최근 잡목이 늘고 소나무 등을 심어 억새 명소의 이미지는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전역에 억새가 만발해 등산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신라 흥덕왕 4년(829)년에 셋째 왕자가 병을 얻어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약수를 찾아 두루 헤매다 이곳에 이르러 영정약수를 마시고 병이 낫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 이 산을 재약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재약산 수미봉~사자봉~신불산~취서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은 이름난 억새 산행코스다.

    ▲양산 천성산 화엄벌= 천성산 정상 북쪽에 원효대사가 1000여 승려에게 화엄경을 강설했다고 전해지는 82만6450㎡의 화엄벌이 펼쳐져 있다. 면적은 좁지만 광활한 느낌을 준다. 천성산은 여러 방면에서 오를 수 있지만 주로 북쪽의 내원사 계곡에서 오른다. 억새밭이 있는 북서부의 화엄벌을 거쳐 정상을 지나 서쪽의 홍룡사쪽으로 하산할 수 있고, 천성산 정상에서 제2봉을 거쳐 공룡능선으로 하산할 수도 있다.

    ★갈대와 억새 구별하기

    갈대와 억새는 겉으로 보기에는 구별이 쉽지 않지만 색깔, 줄기, 잎 모양 등을 살펴보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갈대는 고동색이나 갈색을 띠며 마디가 있다. 또한 줄기가 뻣뻣해서 강한 바람에도 꿋꿋하게 견딘다. 갈대꽃은 갈색이고 부스스한 것이 약간 지저분해 보이지만 잎은 정반대다. 억새잎은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어서 손을 베이기도 한다. 갈대잎은 억새잎과 비교하면 훨씬 부드럽다. 억새는 잎에 중륵(中肋·잎 가운데 있는 두꺼운 심)이 있지만, 갈대는 중륵이 없다.

    키에서도 차이가 난다. 억새는 일조량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사람보다 크게 자라기도 하지만 대개 1~2m로 사람보다 작다. 그러나 갈대는 보통 2~3m로 사람보다 훨씬 크게 자란다.

    억새와 갈대의 가장 큰 차이는 뿌리다. 억새는 곧고 짧은 뿌리가 포기 나누기를 하는 것처럼 증식하기 때문에 가까이서 보면 대파 다발처럼 보이지만, 갈대는 뿌리 줄기에 마디가 있고 그 마디에 수염 뿌리가 많이 나고 거기서 줄기가 다시 올라온다. 사람들이 흔히 억새나 갈대의 꽃으로 착각하는 건 꽃이 아니라 씨앗이다.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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