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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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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25) 진주소비자생활협동조합 박인자씨

“내 아이 먹을거리 찾다가 착한 소비에 눈 떴죠”

  • 기사입력 : 2009-12-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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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소비자생활협동조합 박인자씨가 진주시 평거동에 개장한 자연드림 매장 내 윤리적 소비를 알리는 홍보간판 앞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처음에는 내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내 아이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찾아주자는 것인데 이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비용도 비쌌고 안심도 되지 않았다. 안전한 먹거리를 찾아 들어갈수록 혼자서는 한계를 느꼈다. 먹거리 하나에 복잡한 사회문제가

    연계돼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둔 주부들의 힘이 필요했다. 안전한 먹거리를 원하는 뜻 맞는 주부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주부들은 먹거리 하나로 농민에 대한 애정, 우리 농산물에 대한 감사, 사회적 환원이라는 소비구조의 또 다른 세계를 배우고 있다.

    진주지역에 이 같은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불을 지핀 주부 박인자(42)씨.

    진주소비자생활협동조합 이사로 있는 박인자씨는 지금도 소비자와 생산자, 그리고 환경까지 건강해지는 먹거리를 찾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잘 먹는다는 것은…

    “아이들도, 어른들도 잘 먹는다는 게 무엇일까요?” 인터뷰를 위한 만남에서 박인자씨가 대뜸 기자에게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에 “맛있게 배불리 먹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순간 그게 아니다 싶었다. 요즘 추세는 웰빙, 즉 영양적으로 먹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박인자씨는 심오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잘 먹는다는 것은 복잡한 사회적 문제입니다. 단순히 먹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먹거리 소비는 환경과 농민, 대안경제 문제에서 건강한 시민활동과 아이들 교육까지 줄줄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영양학적으로 먹는 게 잘 먹는 게 아니라 소비자와 농민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윤리적 소비가 생활화될 때 우리는 잘 먹는다고 말할 수 있죠.”

    ▲내 아이를 위해 시작했다

    박씨는 평범한 주부였다. 가톨릭 신자인 박씨는 지난 1995년 결혼을 하고 전업주부로 생활하면서 봉곡성당의 사회봉사활동에 참여하며 나름대로 평범하지만 보람 있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박씨의 생각을 180도로 바꾸게 한 것은 아이였다. 지난 1997년 첫딸을 출산하고 걱정이 생겼다. 아이를 어떻게 안전하게 키울 수 있을지 고민에 빠진 것이다. 무엇보다 안전한 먹거리가 문제였다.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노인, 아동 복지와 관련해 조금씩 배웠어요.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개개인에게 실질적인 삶의 향상을 가져다주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죠. 당장 우리가 먹는 음식조차도 상당히 왜곡돼 있다는 겁니다. 안전한 먹거리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들은 많은데 실제 우리가 선택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지 않습니까.”

    소비자들이 1차 농산물 하나를 구입하려 해도 기업들의 거대 유통구조에 휘말려 그 농산물이 어떻게 생산되는지도 모른 채 비싼 값을 주고 사 먹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농민들에게 가서 믿을 만한 농산물을 선택하고 구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일이 좋은 먹거리를 찾아 구매하기에는 비용도 만만치가 않은 데다, 농민들과 직거래를 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먹거리에 대해 인식이 높은 주부들을 모으기로 결심했다.

    ▲안전한 먹거리 찾아 주부들이 뭉쳤다

    안전한 먹거리에 대해 주부들을 이해시키고 교육시키는 데 발 벗고 나선 지 4~5년. 시민사회단체에 있는 주부 활동가들과 일반 주부 등 40명이 뜻을 모았고, 2002년 진주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진주생협)을 설립해 안전한 먹거리 찾기에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진주생협은 쉽게 말해 매월 회비를 내고 좋은 먹거리를 스스로 찾아 분배하는 순수한 진주지역 주부들의 모임이다.

    그러나 주부들이 모여 조합을 만들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농산물을 직접 찾아 생산자와 직거래를 할 수는 있었지만 이를 가로막는 것이 유통비용이었다.

    “처음에 생산자들과 직거래를 해봤지만 생산자는 물류비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주부들은 구입 가격이 너무 비싸서 못 사먹겠다는 말이 많았어요. 물류비를 어떻게 줄여야 할지 갑갑했죠. 주부들이 유통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 지역의 직거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거죠.”

    박씨는 지금껏 추진해 온 꿈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최대 걸림돌인 유통비용을 어떻게 하면 낮출 수 있을지 해답을 찾기 위해 전국으로 눈을 돌렸다. 전국 곳곳에 물류센터를 만드는 데 역점을 두고 새로운 유통 구조를 만들기로 했다.

    이 같은 박씨의 생각은 전국 70여 개의 조합과 연계하면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대전에만 있던 물류센터는 순천과 사천 등에 속속 생겨나 현재 7곳으로 늘어났다. 물류비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농업인들과의 직거래가 더욱 활성화돼 회원 주부들에게 안정된 먹거리 제공이 가능해졌고, 특히 비싸게만 느껴졌던 유기농산물 가격도 싸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생산·유통 구조에 대한 새로운 변화는 진주생협이 8년여를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든 중요한 기반이 됐다.

    박씨는 “우리 진주생협은 모든 비용과 이익을 회원들에게 동일하게 분배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불필요한 비용과 이익이 다른 데로 빠지지 않기 때문에 유기농산물도 시중보다 20%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고 말했다.

    ▲우리 농산물과 농업인에 대한 애정이 밑바탕

    현재 진주생협에는 1000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 물론 95%가 주부들이다. 안전한 먹거리를 찾고자 하는 진주지역 주부들이 스스로 모인 것이다. 이 같은 탄탄한 기반을 다지는 데는 무엇보다 박씨의 우리 농업에 대한 신념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생협은 우리 농민에 대한 애정이 기본으로 돼 있어요. 책임 있고 의식 있는 소비자가 구성되지 않으면 우리 농민, 농산물을 지키기는 어렵습니다. 라면 하나를 사더라도 마트에서 소비를 한다면 이익이 거대 자본에 귀속되지만, 생협에서 소비하는 이익은 소비자, 농민 등 시민사회에 환원되고 있습니다. 윤리적으로 소비하려는 의지가 윤리적 생산까지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죠. 구매 활동은 처음부터 절차와 체계를 잘 잡아나가야 농민과 소비자 사이에 새로운 신뢰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생협 회원들이 내는 회비는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의 잔류농약 검사 등에 소요된다. 안전한 먹거리를 소비자들이 직접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처음에는 농민들의 불만도 많았지만 지금은 생산자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등 인식 변화를 가져왔다.

    박씨는 “농산물이 생산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우리 농산물을 유지하는 데 내가 먹는 게 얼마나 큰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8년의 성과물 ‘자연드림’

    올해 9월 진주시 평거동에 개장한 ‘자연드림’ 가게는 우리밀로 만든 베이커리가 전체 판매 상품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진주에 처음으로 문을 연 ‘자연드림’은 택배를 통해서만 식품을 구입해왔던 회원들이 직접 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회비를 모아 만든 것이다. ‘자연드림’ 가게는 8년여간 그토록 노력했던 성과물이라고 박씨는 설명했다.

    “내 아이를 위해 시작했지만 일이 많아지면서 정작 내 아이들이 많은 불편을 겪었어요. 중학생이 된 큰 딸이 자연드림 매장을 보고서야 엄마가 8년 동안 고생한 것을 이해하고 자랑스럽다고 했을 때 미안했던 마음이 해소가 됐습니다.”

    자연드림에서는 하루 평균 60만원 정도의 식품을 팔고 있다. 아침에 빵을 구워 그날그날 파는데 남는 빵은 자활공동체, 나눔센터를 통해 무료로 공급한다. 기업 경영의 운영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이익을 다시 환원하는 원칙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금 주부들은 정말 잘 먹는다는 게 뭔지를 의미 있게 되새겨봐야 합니다. 책임 있고 의식 있는 소비자가 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도 우리 농산물도 지켜내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에게 먹거리에 대한 교육도 제대로 해야 할 때입니다.”

    5년 동안 진주생협 이사장으로 활동해 오다 올해 2월부터 이사직을 맡고 있는 박씨는 인터뷰 마지막까지 우리 농민에 대한 애정과 윤리적 소비 생활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글=김호철기자 keeper@knnews.co.kr

    사진=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진주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란= 안전한 먹을거리를 저렴하게 공급하고 농민들과의 직거래 확대를 통해 생산자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2002년 진주지역 40명의 주부를 중심으로 설립된 소비자단체. 현재 1000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 출자금 3만원을 내면 조합에 의결권을 가진다. 회원들은 매월 1만5000원의 회비를 내고 유기농산물 등 안전한 식품을 공급받고 있으며, 이에 따른 비용과 이익은 모두 1/n 형태로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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