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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보의 논술탐험] (68) ‘느림의 미학’을 주제로 글쓰기

거북이는 토끼보다 ‘길’에 대해 할 얘기가 많다

  • 기사입력 : 2010-01-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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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짱: 안녕하세요. 방학 때 학교에서 논술수업을 하고 있는 고교 1학년 학생입니다. 논술 연습 글을 써 보면 제 글이 참신하지 않은 것 같아 불만입니다. 이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글샘: 고교생들이 글을 쓸 때 ‘참신하고 독창적인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가장 큰 부담일 거야. 그건 입시 논술에 걸맞은 글을 완성해야 하기 때문이지. 특히 제시문이 주어진 논술은 학생들에겐 또 다른 제약이지. 출제 측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내용을 찾아 서술하고, 자기 생각도 담기도록 해야 하니까 말이야.

    글짱: 예일대 등 외국 대학교에서는 논술시험이 에세이(Essay) 형식이라고 하던데요. 거기에 비하면 우리나라 논술시험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글샘: 예전에 미국 어느 대학의 에세이 시험 문제가 생각나는구나. ‘300쪽짜리 자서전을 썼다고 가정하고 그중 217쪽을 써라’고 하는 문제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나 이상을 쓰고 이에 반해 행동해야 했던 상황에 대해 기술하라’는 문제가 나왔지.

    글짱: ‘자서전의 217쪽’이라면 어떤 얘기가 들어가야 할 대목이죠? 그걸 찾아내는 게 어려울 것 같아요.

    글샘: 수험생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지. 아마 그 대학은 그런 대목에서 수험생의 독창성이나 창의성을 평가하는 거라고 봐. 자서전의 중간 뒷부분이라면 시련의 극복 과정 또는 삶의 터닝포인트가 된 어떤 사건이나 사안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정답은 없어. 심사위원이 공감할 수 있는가 하는 ‘평가 잣대’로만 말할 뿐이지.

    글짱: 우리나라 대입 논술 기출 문제를 살펴보다가 ‘느림’을 주제로 출제된 논술문제를 봤어요. 그런 논술을 참신하게 쓰려면 어떤 글감이 필요할까요?

    글샘: 대입논술시험에 맞춰 이런저런 글감을 소개하는 건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진 않아. 어쩌면 정형화된 글쓰기 방식을 주입할 수도 있으니까. 논술시험이라는 틀을 벗어나 신문의 칼럼 같은 글을 쓴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참신한 글을 쓸 수 있을 거야. 오늘 논술탐험에서는 그런 방법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먼저 ‘느림’이라는 용어에서 무엇이 떠오르니?

    글짱: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생각나는데요. 그건 책 제목인가요?

    글샘: 한때 그런 제목의 책이 많이 나오기도 했지. 다른 건 없을까. 삶의 여유, 기다림, 속도 경쟁 같은 용어도 떠올릴 수 있겠지. 생활 주변에서 이러한 말과 연관지을 수 있는 글감을 찾아 자기 생각을 넣어 글을 써 보면 칼럼 같은 글이 될 수 있을 거야. 생각나는 글감이 있으면 말해보렴.

    글짱: ‘토끼와 거북이’ 동화는 어때요? 아, 그리고 여유를 갖고 걷는 제주도 올레길도 생각나요.

    글샘: 그러면 글샘도 몇 가지 얘기해야겠구나. 난 내비게이션과 교통지도책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아. 그리고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편지와의 관계도 글감이 될 듯하고. 또 TV오락프로그램에서 본 순두부 만드는 과정이나 천연염색 과정도 느림의 미학이라는 주제에 걸맞은 글감이 될 것 같아.

    글짱: 이제 대략 어떤 얘기를 하려는 건지 감이 오네요. 구체적으로 그런 글감을 활용해 어떻게 글을 전개하면 되나요?

    글샘: 이 모든 글감을 한꺼번에 언급하라는 건 아니야. 글샘이 이런 글감을 거론하는 건, 적절한 비유가 될 만한 사례를 소개해 주는 것뿐이란다. 시인이자 화가인 칼릴 지브란이 “거북이는 토끼보다 길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지. 오늘날 내비게이션은 교통지도 책을 사라지게 한 ‘운전의 혁명’이야. 그러나 내비게이션에 의존한 운전은 길 찾는 시간을 절약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세상을 두루 볼 수 없는 단점이 있어. 삶의 속도가 빨라진 반면에 삶의 여유는 잃어버리고 있다고 해야겠지. 신문에 난 기사를 활용해도 괜찮아. 경남신문 2009년 6월 9일자에 실린 ‘여성 산악인서 지리산 산골 아낙 된 남난희씨’ 기사는 느림의 미학과 삶의 여유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어. “산에 오르는 것만이 산과 함께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이제는 산 중간에서 내려와도 좋고…. 오르겠다는 욕망만 있을 때 산은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오르기만 할 뿐이었죠. (중략) 현대인들은 너무 질주하는 데 급급해서 자연과 함께하는 법을 잊어버리죠.” 기사에 나와 있는 그의 얘기 중 일부분이야. 이러한 글감을 예로 들어 느림의 미학을 표현해 보면 글쓰기 실력이 조금씩 늘 수 있을 거야.

    글짱: 순두부 만들기나 천연염색 과정 같은 글감은 어느 쪽으로 연관지어야 할 글감인가요?

    글샘: 기다림 속에서 과정을 중시하는 느림의 미학이라고나 할까. 인스턴트 식품이 경쟁에서 앞서가는 요즘 시대에 가마솥에 콩을 삶아 짜내고 느긋하게 저어야만 완성되는 순두부는 옛사람들의 생활 속 느림의 미학이지. 그런 점에선 옷감을 물들이는 작업을 수십 차례 반복해야만 제 색깔이 나오는 천연염색 과정도 마찬가지겠지. 덧붙인다면, 한 뜸 한 뜸 손으로 작업하는 바느질도 재봉틀에 비할 때 느림의 미학이요, 자필로 쓰는 편지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 견주면 느림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글짱: 그래도 칼럼이든 논술이든 글쓴이가 전달하고자 하는 자기 생각이나 주장은 담겨야 하잖아요?

    글샘: 아주 중요한 얘기야. 결국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속도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니까. 하지만 빠름만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절차와 원칙을 무시하기 쉽다는 메시지를 글 속에 담아야겠지. 시사 문제까지 접근한다면, 4대강 사업, 세종시, 통합시 문제 등 여러 갈등 국면은 느림의 미학을 외면한 시책 추진이 불러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겠지. 물론 그런 논지로 글을 쓸 땐 갈등으로 표출된 문제점을 논리 있게 지적해야 하는 게 중요하단다. 자, 이제 논술공부도 입시부담 때문에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하나씩 생각의 깊이를 더해 갈 수 있도록 느림의 미학을 가져보는 게 좋을 듯싶다.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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