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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신춘문예와 중복투고- 정일근(시인)

  • 기사입력 : 2010-01-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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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자의 당선이 취소됐다. 이유는 ‘중복투고’다. 당선자가 같은 작품을 부산과 전북지역 일간지에도 투고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예비문학도에게 당선의 영광은 잠시고 중복투고로 당선취소되었다는 상처는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신춘문예에서 한때는 표절 시비가 끊이지 않다가 이제는 중복투고가 말썽이다. 분명히 신춘문예 공고에 ‘다른 곳에 이중투고를 했을 경우 당선을 취소한다’라고 안내되어 있지만 중복투고는 끊이지 않고 문제를 만들고 있다.

    신춘문예는 많은 애독자들과 함께하는 새해의 ‘문학축제’인데 중복투고는 그 축제에 찬물을 끼얹는 일과 다를 바가 없다. 문학을 하려는 사람이 너도나도 죄의식을 상실한 채 ‘당선만 되고 보자’는 자기 최면에 걸린 것 같아 안타깝다. 러시아룰렛처럼 앞으로의 문학생명을 담보로 방아쇠를 당기는 무모한 응모자들이 무섭게까지 느껴진다.

    광주지역 한 일간지 신춘문예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을 뽑아 놓고 당선작품을 발표하기도 전에 ‘신춘문예 사상 최연소 당선자’ 운운하며 독자들의 호기심을 부추기는 기사부터 내놓았다. 그러나 그 작품이 발표되자마자 경남신문과 대구지역 모 일간지에 중복투고한 것이 밝혀져, 결국은 어린 당선자만 울리는 일이 되고 말았다.

    중복투고에 대해서 문단의 생각도 각각인 것 같다. 중복투고를 관행으로 인정하자는 분들도 있고, 엄중한 잣대를 가져야 한다는 분들도 있다. 내 생각은 후자와 같다. 신춘문예는 등단과정이다. 신인의 등용문인데 규정과 절차를 무시하는 일에 문단이 묵과하거나 동의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특히 중복투고로 당선이 취소되어 버리면 다른 응모자에게 돌아갈 자리마저 사라지는 일이 된다. 지난 1년 동안 오직 한 번의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한 정직한 응모자들이 당선 취소로 도둑맞은 자리를 두고 느낄 분노와 상실감에 ‘심사자’라는 중책을 맡은 문단이 어떤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신춘문예는 문학의 출발이다. 그것도 새해 벽두의 화려한 출발이다. 그런 영예를 차지하고 문학의 길을 걸어가려는 신인의 자리에 요행수를 바라고 중복투고를 서슴지 않는다면 그건 분명히 바로잡아야 할 잘못이다.

    10여 년간 서울과 지역의 신춘문예 심사에 참석하며 필자가 경험한 것이 있다. 중복투고로 문제를 일으키는 응모자는 타 지역 사람인 경우가 많다. 자신이 응모하는 지역의 신문을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사람이 인터넷에서 신춘문예 모집공고를 보고 이중, 삼중, 사중 응모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중복투고가 밝혀져 당선이 취소돼도 자신의 얼굴이 알려질 리 없다는 배짱으로 더욱 대담해진다.

    그와 반대로 지역의 응모자들은 그렇지 않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신문의 신춘문예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중복투고는 스스로 파는 무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필자는 심사자로서 그 지역 응모자를 당선자로 뽑아 한 번도 중복투고로 말썽이 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편협하다는 비판을 받아도, 지역 신춘문예에는 지역 투고자에게는 선의의 가산점을 주자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2%쯤 부족해도 정직한 응모자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당선되자마자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약력을 자랑처럼 밝히며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떳떳한 신인을 원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올해 경남신문 신춘문예 심사자로 참여했다. 수필 부문에서 좋은 작품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심사장에서 들었다. 우수한 재능을 가진 응모자가 자기 자신의 실력을 믿지 못해서 던진 중복투고란 악수(惡手)로 받을 상처에 마음이 아프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다. 주머니 속의 송곳은 감춰지지 않는 법이다. 자신의 실력을 믿는 정직한 응모자들을 내년 신춘에는 많이, 즐겁게 만나고 싶다.

    정일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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