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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문상희 제다 차인·장용호 다구 공예가

새순 덖고, 다구 깎고…茶 향기 머금은 24년 인연

  • 기사입력 : 2010-02-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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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해시 삼방동 신어산 자락에 위치한 서각·공예공방인 ‘학고방(學古房)’ 주인 장용호(오른쪽)씨가 함양군 마천면 지리산 칠선계곡에 위치한 ‘자연가(自然家)’라는 제다장 주인 문상희씨의 다실에서 문씨가 만든 백초차인 ‘초향(草香)’을 들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차탁 위의 차도구는 장씨가 만든 작품.

    심산에 자생하는 야생풀의 새순으로 만든 백초차(百草茶) 초향(草香).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두지동 596, 우리나라 3대 계곡의 하나인 지리산 칠선계곡에 17년 전 ‘자연가(自然家)’라는 제다장을 차린 문상희(54) 선생은 한국 백초차의 제1세대 선구자로 전국에 널리 알려져 있다.

    백초차는 그야말로 80~100가지에 이르는 산약초와 봄나물의 새순을 덖어서 만든 순녹차를 통칭해서 이르는 말이다. 백초차는 초봄부터 5월 사이 봄에 솟아나는 당귀 오갈피 두충 조각자 찔레 오미자 어름덩굴 취나물 곰취 뽕잎 산작약 둥글레 구지뽕 산다래 의성초 감잎 칡 등의 새순만을 재료로 한다.

    겨울철 요즘 농한기에 돌입해 봄철 농사 준비를 하면서 소일하고 있는 문상희 선생을,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기능보존협회 회원 중 서각부문의 경남 유일한 회원이자 경남미술대전 초대작가인 원경 장용호(48) 선생이 지난달 22일 지리산 중턱에 있는 ‘자연가’로 모처럼 찾아갔다.

    장 선생은 2008년 4월 한메 조현판(마산) 선생이 글을 쓴 국립 이천호국원 현충문과 현충관 현판을 서각하기도 했는데, 당시에 만든 현충문 현판은 우리나라 역대 현충문 현판중 크기가 제일 커 폭 1m40㎝, 길이 3m40㎝에 이르고, 글과 서각이 출중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장 선생은 김해시 삼방동 1138 신어산 자락에서 ‘학고방(學古房)’이라는 서각·차도구 공예방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리산에 터를 잡은 문 선생과는 벌써 24년 동안 인연을 맺고 있으며, 차에 대한 모든 정보와 지식을 교류하면서 배우고 있다.

    차(茶)라는 목적과 그 차생(茶生)에 대해 서로 맹신하고 있는 두 사람은 평소 전화로 차에 대한 상담을 많이 했지만 이렇게 만난 것은 어림잡아 5~6개월쯤 됐다.

    ★차향 가득한 방 이야기 보따리 풀리고

    문 선생은 장 선생을 만나자마자 차실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백초차인 ‘초향(草香)’을 우려냈고, 차향 가득한 방에서 두 사람은 이야기 보따리를 한 짐 한 짐 풀어 놓는다.

    “24년 전 하동에서 문 선생님이 만들어준 그 차를 처음 마실 때 향이 정말 진했습니다. 차를 몇 잔 마신 뒤 하동의 밤하늘을 쳐다봤는데, 어찌나 별빛이 밝고 정신이 맑아 오는지 아직도 그때의 차향을 잊을 수 없어요. 배꼽 밑에서 차향이 끓어올라 입과 머리를 제압하는 게 정말 차가 이런 거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니까요”라면서 장 선생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24년 전 당시 장 선생은 우리나라 굴지의 제과회사 영업담당을 하면서 하동에서 차도구점을 운영하던 문 선생을 처음 만났고, 문 선생이 타 준 그 한 잔의 차향에 매료돼 회사를 사직하고 차인과 차다구를 제조하는 공예가의 길로 입문했다. 장 선생에게 문 선생은 자신을 차의 세계로 인도해 주고 새로운 ‘차인(茶人)’의 삶을 살게 한 스승과도 같은 존재이다.

    장 선생의 칭찬에 고무된 문 선생은 “술을 마시고 차를 마시면 숙취가 모두 날아간다. 정신적으로 상당히 좋다. 김해에도 장군차라는 훌륭한 차가 있다. 장군차는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후가 가져온 인도종으로 본다”며 자신의 칭찬에 대해 김해에 살고 있는 장 선생을 김해 장군차로 은근히 치켜세웠다.

    장 선생은 “장군차는 김해의 대표 브랜드 중의 하나입니다. 김해시에서 장군차를 상당히 부각시키며 보급하고 있어요”라고 소개했다.

    ★차를 향한 그 영원한 동질성이여

    문 선생으로 인해 차를 위한 인생을 살고 있는 장 선생은 차의 종류와 우리나라, 중국, 일본, 인도의 차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서 차에 한해서는 스승처럼 여기는 문 선생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았다.

    문 선생은 산토끼가 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는 모양으로 자신의 얘기에 몰두해 있는 장 선생을 보면서 “다구를 만들 수 있는 감태나무 재료가 있는데 한번 만들어 봐라. 감태나무는 신령스러워 스님들이 지팡이로 많이 사용하는 나무다. 조갯살 문양이 있는 감태나무로 한번 만들어 봐라. 차맛이 더욱 새로워지는 다구가 만들어질 것이다”며 제자 같은 아우에게 다구 재료를 추천하기도 했다.

    “문 선생님이 만든 차를 오랫동안 마셨는데, 언제 마셔도 그 향과 맛이 새롭고, 싱그럽고, 그윽하네요. 이제 겨울이라서 보관해 둔 차가 얼마 없을 건데 어쩔 겁니까.”

    “걱정 말게, 자네가 올 것 같아서 몇 통 챙겨 놓았네. 포장만 해놓으면 사라지곤 해서 숨겨 놓은 게 조금 있다네, 하하. 올 봄에는 차를 더 많이 만들어야겠어.”

    ★애정 어린 고언에 차향도 깊어져

    찻잔이 바쁘고, 지리산 석간수를 끓이는 순간온수기가 계속 김을 뿜는다. 이야기를 나누는 눈빛에서조차 차향이 풀풀 날린다. 입에서 튀기는 침 포말은 초향(백초차) 포말 그 자체다. 차향이 다탁에 녹아들고, 차기(茶氣)가 온몸을 휘감싸고, 난로에서 타는 장작이 숯불로 변할쯤 서로에 대한 애정은 고언(苦言)으로 승화했다.

    “원경, 다구를 만드는 소재가 아무리 좋아도 자연에 가까운 곡선을 살려야 해. 여기 이 작품은 선을 잘 살렸지만 조금 더 선을 살렸으면 좋겠어. 작가의 손이 최대한 적게 가면서 자연의 선을 살리는 구상을 해보면 더욱 좋겠어.”

    “선생님 말씀 맞습니다. 다구 공예품 전시회를 해보면 획일화된 모양의 재료보다 썩고 자연적 흠집이 있는 다구작품을 애호가들이 더 선호하더라구요.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백초차인 초향을 발효차로 만들면 좋겠는데, 봄철 수확하는 새순의 양이 적다고 하니 할 수 없지만, 다른 차를 좀 더 개발해 보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그렇지 않아도 기능성 차를 개발하고 있어. 간이 안 좋은 사람을 위해 치료처방보다는 예방처방 차원에서 차를 마시면서 치료하는 기능성 차를 연구하고 있어. 벌나무(봉목)를 많이 심어 놓기도 했어. 차후 봉목 잎을 따서 간이 안 좋으면 재료의 70~80%를 넣고 차로 마실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지. 또 기(氣)가 허하면 가시오가피를 주처방으로 해서 혼자서 40분 정도 7~8배 하면서 명상까지 가능한 차를 연구하고 있다네. 곧 구경시켜 주지.”

    차향 가득 담긴 고언이 잦아들쯤 어스름이 깔려 온다. 석간수를 끓이던 순간온수기도, 찻잔을 바쁘게 기울이던 손길도, 차 포말을 날리던 그 입술도 어느덧 어스름이 전해주는 이별의 정리를 아는 듯 잠잠해진다. 만남은 이별의 전제.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의 전제. 문 선생은 멀리서 온 손님을 하룻밤 재우고 싶고, 스승 같은 형님을 찾아온 장 선생은 밤새 찻잔을 기울이고 싶지만 당장 그러고픈 마음을 다음으로 기약한다.

    차실을 나온 장 선생이 칠선계곡을 눈대중으로 둘러본 뒤 “산수유꽃 필 때 올라오면 참 좋겠네”라고 하자, 문 선생은 “그러지 말고 고로쇠 나올 때 올라오지”라며 또 다른 만남을 재촉했다.

    글=조윤제기자 cho@knnews.co.kr

    사진=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문상희씨

    ▲공예가 장용호는 다구 만지는 즐거움을 크게 키워주는 장인

    원경 장용호 선생은 느티나무 회나무 대추나무 돌배나무 등 국산 재료를 사용해 차도구를 만드는 문화재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서각가이자 공예가이다. 국내에서는 최고의 다구를 만드는 장인으로 확신한다. 예술성이 뛰어나면서 실용성이 좋은 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는 차도구를 만들 때 공산품보다는 공예품으로 만든다. 그의 작품은 작은 찻숟가락도 며칠씩 걸리는 게 태반이다. 힘든 작업을 하다 보니 창작 열기가 많이 꺾일 수도 있을 것이다.

    차와 관련된 문화에는 오락(五樂)이라는 게 있다. 혀로서는 맛을 보고, 눈으로는 빛깔을 보고, 코로는 향기를 맡고, 귀로서는 물소리를 듣고, 손으로는 다구를 만지는 즐거움이 있다. 차를 마시면서 만지는 다구의 느낌이 20점이라는 것이다. 소재의 선택, 작품의 조형미가 출중해 국내에 많은 다구가 만들어지지만 장용호 선생의 다구는 창조적으로 잘 탄생하는 다구이다.

    장용호 선생은 다른 업을 하다 나를 만나 생소한 곳에 뛰어들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아니지만 차 분야에서는 내가 스승과 마찬가지다. 과거의 것을 받아서 창조로 전승하고, 깊이와 인내를 갖고 발전을 많이 했다. ‘인간 장용호’는 차인들로 봐서는 복덩이 같은 사람이다. 장용호라는 사람 때문에 차인들은 손에서 다구를 만지는 큰 즐거움으로 차향을 배가시킬 수 있다.

    장용호씨

    ▲문상희 선생은 차에 대한 열정 가득한 대용차의 선구자

    문상희 선생님은 전통녹차를 대신할 수 있는 대용차의 선구자다. 100여 가지의 야생초로 만든 초향(백초차)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들었다. 초향은 병에 걸린 사람들이 치료를 위해 많이 찾는 차이다. 그분은 꼭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애용하도록 하기 위해 찻값을 많이 받지는 않는다. 하동 화개에 살다가 대용차 개발에 매진하기 위해 지리산 칠선계곡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올라온 분이다. 차에 대한 열정은 어느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대단하다. 최근에는 다른 기능성 차를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 선생님으로부터 전통문화와 예술에 대한 영향을 많이 받았다. 차도구 제작은 물론이고 차에 대한 영향도 말할 것 없다. 부지런하고, 후배들이 많이 따르는데, 그 이유는 계산을 싫어하고 자신보다 더 후배들을 챙기는 인간적인 매력 때문이다.

    문 선생님은 실제 자신이 그림, 서예작품, 서각, 수석작품을 만들고, 야생화를 키우면서 문화예술을 생활 속에 접목시키고 있다. 또 이를 주변 지인들에게 확산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고 그 집념도 대단하다.

    선생님이 만든 차는 순하고 부드럽고 싱그럽다. 공복에 마셔도 좋고 장복하면 더 좋다. 청정지역인 칠선계곡에서 자란 순수 야생약초 등의 새순만을 고집하기 때문에 몸에 좋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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