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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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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천하장사 이만기, 대표이사 이만기- 정일근(시인)

  • 기사입력 : 2010-02-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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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속씨름 전성기에 여러 명의 천하장사가 배출됐다. 그중에서도 지역 출신 이만기, 강호동 선수가 최고의 씨름꾼이었다. 천하장사를 무려 10번이나 차지한 이만기, 그런 이만기를 이기고 천하장사가 된 강호동이기에 그때의 뜨거웠던 열기들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다른 천하장사들의 이름과 얼굴은 세월과 함께 잊혀져버렸지만 이만기 선수는 대학교수로, 강호동 선수는 방송인으로도 성공했기에 씨름판뿐만이 아니라 삶이란 씨름판에서도 여전히, 우리시대의 천하장사로 남아 있어 좋다.

    최근 이만기 인제대 교수가 (재)경남문화재단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그의 취임을 두고 문화예술계 안팎에서 말들이 요란하다. 여기저기 귀를 대고 들어 보니 요지는 씨름꾼이 문화예술재단의 대표 자리에 앉을 수 없다고 한다. 과연 체육인이 다양한 장르를 가진 문화예술에 대한 업무능력을 가지고 있을까라고도 한다.

    그런 비판처럼 이만기 교수의 대표이사 선임에 문제가 있었다면 대표이사 임용권자인 경남문화재단 이사장, 즉 도지사의 책임이다. 하지만 이사장도 공개경쟁을 통해 정당한 임용권을 행사했고 이만기 교수도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그렇다면 ‘대표이사’라는 자리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사람이 싫다고 자리까지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화예술인이 적격할 것 같은 자리라고 해서 문화예술인만이 그 자리에 앉으라는 법도 없다.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면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거나 볼멘소리일 것이다.

    진짜 비판은 앞으로 이만기 대표이사가 재단 운영을 어떻게 하는가를 두고 있어야 한다. 다른 시·도의 문화재단 운영을 보면 대표이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시한 조직이 아니다. 이사장과 이사들이 있고, 그보다 더 무서운 문화예술계의 눈이 있지 않은가. 언론인들도 출범부터 요란했던 경남문화재단에 대해 눈 감고 있겠는가.

    혹자는 이만기 대표이사가 한때 정치를 꿈꾸었던 지나간 이력을 두고 시빗거리로 삼는다. 그것 또한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다. 자신의 꿈에 도전해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개인의 문제다. 만약 이만기 대표이사가 그때 국회로 진출했다면, 2·3선의 의원 출신이었다면 이번 취임이 시빗거리가 될 수 있었겠는가 싶다.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도 고향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해서 낙선의 고배를 삼킨 적이 있다. 그 일로 해서 누구도 외솔 선생을 한글학자로 인정하지 않고, 선생의 업적을 비하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정치에 꿈을 가진 것이 병역기피나 재산은닉 같은 범죄가 아니지 않은가.

    이만기 대표이사는 재단업무 이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취임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가진 문화예술계를 찾아다니는 일에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지적과 우려처럼 재단 업무에 생소한 것이 있다면 공부를 해서라도 배우고, 어떠한 작은 문제라도 독단적인 결정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모든 일이 귀가 열려야 눈이 열리는 법이다.

    경남에서 문화예술행사에 가장 많이 참석하는 부지런한 대표이사가 되길 바라며, 문화예술인의 현장 목소리를 가장 크게 듣길 바란다. 무엇보다 가슴에 꽃을 달고 화려한 단상에 앉는 대표이사가 아니라 가장 낮고 춥고 어두운 객석에서 박수를 보내고, 뒤풀이에서 허물없이 따뜻한 술잔을 나누길 바란다.

    이제 문화예술계도 그의 취임을 환영하고 잘하면 박수를 보내 주고 잘못하는 일에 비판 또한 아끼지 말았으면 한다.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지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지는 정답이 없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일이 정답이라 생각한다.

    천하장사 이만기 선수가 경남문화재단이라는 새로운 씨름판에서 보여줄 ‘명승부’를 기대한다. 문화예술계의 박수를 받지 못하고 시작한 자리지만 떠날 때는 기립박수를 받고 떠나는 경남문화재단 대표이사 이만기이길 바란다.

    정일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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