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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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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박승규 국립마산병원 원장

“환자들이 희망 버리지 않도록 돕는 게 결핵 퇴치 첫걸음”

  • 기사입력 : 2010-02-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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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규 국립마산병원장이 7병동 통로에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20대 초반의 여성이 두 차례나 폐수술을 했지만 합병증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외국에서 연구단계에 있던 신약을 투약해 살려내고 결혼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우리나라 결핵 치료와 연구의 메카인 마산시 가포동 국립마산병원 박승규(47) 원장이 올해로 꼭 20년째 이 병원에 봉직하고 있는 이유이다.

    박 원장은 흉부외과 전문의가 된 후 1991년 국립마산결핵병원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면서 결핵과 인연을 맺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결핵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 중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본원에 많이 입원해 있었습니다. 당시 결핵 치료에 필요한 모든 것이 무료로 제공되었지만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다른 병원에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술을 집도할 의지를 가진 흉부외과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경남에서 폐절제 수술이 가능한 병원은 4곳 정도로, 이 중 한 곳이 국립마산결핵병원인 것에 대해 박승규 원장은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부산에서 태어난 박 원장은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가정의 장남으로서 어렵게 공부하는 동안 고소득을 보장받고 안정적인 직업이 의사라는 생각에 1980년 부산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의과대학을 졸업할 즈음 부산·경남지역에서 부산대학병원이 최초로 심장수술을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의사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흉부외과를 전공과목으로 정했다. 4년간 부산대학병원에서 흉부외과 수련의로서 심장수술은 물론 폐수술, 대혈관수술 등의 훈련을 받았다.

    박 원장이 의사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1990년대 중반에 고소득이 보장되는 개업의나 일반병원 근무를 마다하고 마산병원으로 진로를 정한 것은 결핵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너무나 안타까웠기 때문.

    국립마산병원 김진희 흉부외과장은 “지금 젊은 세대와 원장님 세대가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것은 여러 모로 차이가 많다”며 “결핵으로 고생하는 환자를 보면서 뭔가 일을 해야겠다는 의지와 봉사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1990년대 후반 이후 다제내성결핵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결핵을 사라진 병으로 알고 있던 우리나라도 결핵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국립결핵병원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고 다제내성결핵 퇴치를 위하여 새로운 진단과 치료법 개발 연구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 산물 중 하나가 지난 2005년 미국 국립보건원과 공동으로 설립한 국제결핵연구센터이다.

    마산병원은 지난 20년 동안 국내외 학술지에 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올해에도 유수한 국제학술지에 여러 편의 논문이 발표될 예정이다. 내달 24일 제28회 ‘세계결핵의 날’ 전후에는 해외 결핵 관련 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결핵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박승규 원장이 입원 중인 한 남자 결핵 환자와 치료 경과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박 원장은 스위스 제네바에 소재한 세계보건기구에서 결핵관리담당자로, 그리고 미국 국립보건원 결핵연구실에서 초청연구자로 근무한 경험 덕분에 결핵치료와 관리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대부분의 병의원에서 결핵 환자를 너무 안이하게 관리하면서 문제를 심각한 수준으로 키우곤 했던 점이 안타깝습니다. 지금의 다제내성결핵은 전문적 지식과 책임감 없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결핵이기 때문입니다.”

    근래에 흔히 발생하는 다제내성결핵은 기존의 항결핵제만으로는 치료가 어려워 결핵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치료 성공률이 50% 내외로 2년 가까운 치료 과정은 너무나 힘들어 많은 환자들이 중도에 결핵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

    박 원장은 환자들이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또 다른 환자의 발생을 예방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한 50대 남자가 결핵이 워낙 심해 거동이 불편할 정도가 되면서 스스로 삶을 포기했지만 끈질긴 소통 노력끝에 1년여 만에 완치돼 걸어서 퇴원했는데 고마움의 표시로 직접 농사지은 감 한 상자를 보내왔을 때의 그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마산병원은 결핵 치료에 필수인 좋은 기후,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울창한 산림 등 자연환경적 조건을 고루 갖춘 폐결핵 전문치료기관으로 명성을 이어오고 있지만 대부분의 건물이 1960년대 지어져 시설이 매우 노후돼 장기간 입원 치료를 요하는 결핵 환자들이 많은 불편을 느끼고 있어 시설현대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박 원장은 국립마산병원의 최고의 장점으로 ‘헌신적인 직원들’을 꼽았다. 특히 병동에서 내 가족처럼 결핵환자들을 돌보는 의사와 간호사들이다.

    동료 의사에 따르면 박 원장이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일을 많이 벌이기 때문에 여러 직원들이 힘들어하고 원망도 많이 받고 있단다.

    박 원장은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에서 결핵 발병률 및 사망률 1위라는 오명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결핵 퇴치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결핵관리프로그램 자체는 우수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람, 즉 인적 자원의 관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 결핵 관련 종사자가 책임감을 넘어서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좀 더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정책을 주문했다.

    “국립마산병원은 역사와 인력, 연구 실적 등에서 세계적인 기관으로서의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병원현대화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2014년 자연친화적이면서 결핵 환자의 치료에 가장 중요한 채광과 환기가 적절히 보장되고, 국격을 갖춘 명품병원을 선사하겠습니다.”

    20년을 한결같이 결핵 치료와 난치결핵 진료 기법 개발에 헌신한 박 원장과 그의 동료들에게서 결핵 퇴치의 꿈이 무르익고 있다.

    ☞박승규 원장은= 1963년생으로 초, 중, 고를 부산에서 마치고 부산대 의대에 입학한 뒤 부산대의과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 국립마산결핵병원 공중보건의 근무를 시작으로 국립마산결핵병원 사무관, 흉부외과 과장, 국제결핵연구센터장을 겸임했으며 2006년부터 병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공중보건의로 이 병원에서 근무한 이후 줄곧 가족과 함께 병원 관사에서 살고 있다. 부인 김봉선(50)씨는 국립마산병원에서 자원봉사로 환우를 돌보고 있다. 대학에 다니는 두 아들은 현재 군복무 중이다. 1997년부터 매년 한 차례 지역 의사, 간호사와 함께 동남아 등으로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독서와 테니스, 등산을 즐기며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삶’을 좌우명으로, ‘어제보다 1% 나은 오늘이 되게 하자’를 생활신조로 삼고 있다.

    글=김진호기자 kimjh@knnews.co.kr

    사진=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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