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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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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비경 환상의 섬 ⑨ 통영 곤리도

동백꽃은 마지막 겨울을 배웅하고
포구는 잔잔한 봄바람 맞이하고

  • 기사입력 : 2010-02-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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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 뒷산에서 바라본 곤리도 마을과 앞바다. 붉은 동백꽃이 피어 있다. /이준희기자/


    매섭던 겨울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봄기운이 완연한 남녘의 섬마을은 벌써부터 봄맞을 채비로 분주하다. 산기슭의 양지바른 곳에서는 매화꽃이 꽃망울을 머금고, 들판에서는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잔뜩 웅크린 채 봄이 속히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곤리도의 첫인상은 봄이 오는 소식과 함께 아름다운 섬마을의 풍경으로 시작된다.

    이른 아침 첫 배(오전 7시)를 타고 섬을 나온 곤리도 주민들이 통영 시내에서 볼일을 본 후 삼덕항에서 만나 낮 12시 배를 타고 섬으로 돌아온다.

    삼덕항-곤리도를 하루 8차례 오가며 섬사람들의 발 역할을 하고 있는 ‘협동어촌’(선장 김현재)호의 선실은 섬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이다.

    “시장 나온 김에 외출복을 한 벌 샀는데 7만원이나 달라고 하데, 어떻노 괜찮나?” “나도 한 벌 샀는데 난 9만원 줬는데.”

    섬사람들은 이런저런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통영시 산양읍 삼덕항에서 뱃길로 15분 거리의 ‘곤리도’(昆里島·98만 5669㎡·237명·111가구).

    섬의 형세가 인근 저도와 연대도 사이를 향해 날아 오르는 고니(천연기념물 제201호)와 닮아 이름 붙여진 ‘곤리도’는 예전에는 고니섬, 고내섬, 곤이도(昆伊島), 곤하도(昆何島)라 불리었다. 이와 함께 섬 사람들은 곤리도와 인근 학림도의 섬의 형상이 새와 관련 있다 해 곤리도를 윗섬(웃섬), 학림도를 아랫섬이라 부르고 있다.

    이 섬에 사람이 처음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조 16대 왕인 인조 19년(1595~1645년)으로 추정된다. 당시 곤리도의 서남방향인 갈도로 귀향을 온 김해 김씨가 뗏목을 타고 이곳에 와 정착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전한다. 그래서 이 섬 주민 대부분이 김해 김씨이다.

    2004년 8월 산양읍 관내 수많은 섬들 중 최초로 삼덕리 당포마을 방파제에서 해저관로(L=1560m)를 매설해 남강계통 광역상수도 통수식을 가질 정도로 곤리도는 육지와 지척의 거리다.

    마을 선착장에 내리면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섬마을 가장 높은 곳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통영 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와 섬 주민들의 80%가 생업으로 하는 ‘가두리 양식장’이다.

    햇볕이 내리쬐는 따사로운 언덕 위에 자리한 곤리분교는 전교생이 8명뿐인 작은 분교지만, 정원같이 아담한 학교 분위기와 푸른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권은 뭍에서 온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마을 안길을 지나 언덕을 오르는 길이 수고스럽지만 아름다운 곤리도의 풍경을 감상하려면 이 정도쯤은 감수해도 될 듯하다.

    곤리도는 예전 욕지도와 사량도 쪽의 난류를 따라 많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올라와 낚싯대만 드리우면 볼락, 도다리, 참돔 등 다양한 어종의 물고기들이 잡히는 천연 낚시터였지만 요즘은 마을에서 가두리 양식장을 통해 키우는 어업으로 전환했다.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곤리도 포구. 물결이 잔잔해 호수처럼 느껴진다.

    잔잔한 호수 같은 포구는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다.

    마을 앞 벅수거리를 지나 동네마당새미(동네마당샘) 앞에 서면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길 어귀에 버티고 서 있고, 우물가 옆에 ‘오신장군’(鰲神將軍) 글귀가 새겨진 기둥 위로 기이하게 생긴 솟대패가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기러기도 아닌 것이, 오리도 아닌 것이 시멘트로 만들어진 모습이 참으로 특이하다.

    곤리마을 출신 김동권(62)씨는 아주 옛날부터 솟대와 벅수(장승)가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김씨는 “내가 국민(초등)학교 다닐 때니깐 50년은 족히 지났지. 그때는 이곳에서 충무의 유명한 무당을 모셔다가 바다의 용왕에게 제를 올리는 ‘별신굿’을 3일 동안 성대하게 치렀어. 집집마다 밥상을 새미 앞에 차린 후 제가 끝나면 음식을 배에 싣고 바다에 뿌리며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빌었거든. 다른 섬하고 다른 게 있다면 ‘오신장군’이 새겨진 솟대지”라고 설명한다.

    그는 “예전에는 나무로 솟대와 벅수를 만들었는데 정부의 미신 타파 정책으로 모두 뽑아 버렸다가 이후 마을이 편치 않아 다시 돌로 만들었다”고 덧붙인다.

    골목길을 따라 조금만 언덕을 오르니 서지새미(서제샘·옥류천)가 나온다. 여기서 고개를 들면 거대한 제포구나무(수령 500년 추정·팽나무)를 볼 수 있다. 마을에서 제를 올릴 때면 이곳 포구나무 밑에서 항상 제를 올려 ‘제 받는 나무’라고 하여 ‘제(祭)포구나무’로 불렸다고 한다.

    500년 된 ‘제포구나무’ 앞에서 장작을 패고 있는 주민 천종만씨.

    섬에서 가장 긴 포구인 못개. 까만 몽돌이 해변을 가득 메우고 있다.

    제포구나무 아래서 장작을 패던 천종만(70)씨는 “오랜 세월 풍파를 견딘 제포구나무는 예전엔 할배·할매 암수 두 그루가 있었는데 10여 년 전 태풍에 한 그루가 잘려 나가고 지금은 외롭게 한 그루만 남아 곤리도를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이왕 내친김에 마을에서 산신제를 올리는 산 정상의 당산(독집)에 오른다. 산 정상에 서니 인근 가마섬, 만지도, 오곡도, 연대도 등 다도해의 아름다운 섬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땀도 식힐 겸 바위에 앉으니 신선이 따로 없다. 세상시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평온만이 찾아든다.

    돌담으로 쌓여진 당집은 왠지 으스스하다. 당산 안을 살며시 들여다보니 돌단 위에 보따리만 하나 놓여 있을 뿐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3월 1일이면 이곳에서 마을의 평안을 빌며 산신제를 지낸다고 한다.

    따스한 오후 햇살을 즐기며 산길을 내려오다 마을 오른편의 포장길로 접어든다. 여기서 산등성이를 따라 고갯길로 10여분 가면 섬에서 가장 긴 포구인 ‘못개’(지포·池浦)가 나타난다.

    까만 몽돌밭이 해변을 가득 메운 못개는 여름이면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해수욕을 즐길 정도로 아늑하고 운치가 느껴지는 곳이다.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기운다. 벌써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오는 뱃전에는 낚시꾼들이 잡은 고기들이 펄떡인다. 손맛을 톡톡히 본 낚시꾼의 입가엔 미소가 한가득 피어난다.

    곤리도 산 정상에 있는 당산(독집).

    ■ 당산과 장군봉에 얽힌 전설 이야기

    오랜 옛날 삼덕리 원항마을의 뒷산 장군봉에 있던 마을의 수호신 서낭당 철마(쇠로 만든 말모형)가 어느 날 사라졌다.

    구전에 의하면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어느 날 철마를 탐내던 무리들이 배를 타고 와 장군봉에 있던 철마를 훔쳐 가던 중 원항마을과 곤리마을 중간 지점의 바다에 이르러 갑자기 배가 침몰해 선원들이 모두 숨지고 철마도 바닷속에 잠겼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곤리도가 육지와 가까이 있으나 식량이 항상 부족해 살기 어렵고 주민들이 수명을 다하지 못할 뿐 아니라 총명한 인재가 나더라도 얼마 살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어느 날 유명한 도인이 인근을 지나다 곤리를 가기 위해 배편을 기다리는 노인에게 이르기를 “이 섬의 지세를 살피니 주민들이 고생이 많을 뿐 아니라 인맥을 잇지 못하고 있다. 이는 장군봉의 산세와 정기 때문이다”며 “장군봉 서낭당에 있는 철마를 남몰래 훔쳐 곤리도 당산에 당집(독집)을 짓고 당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면 모든 액운을 면하고 섬이 잘될 것이다”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이에 노인은 곤리마을에 돌아와 기운 센 청년들과 의논해 극비에 부치기로 하고 어느 날 밤 장군봉에 있는 철마를 가져와 곤리도 당산에 묻고 해마다 당신제(별신제)를 지내니 도인의 말처럼 그 이후 곤리도의 인맥도 이어지고 소득도 날로 번창해 살기 좋은 마을이 되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가는 길= 통영 삼덕항에서 곤리도를 오가는 곤리도선은 하루 8차례 (삼덕항 출발: 오전 7시·9시·10시30분·12시, 오후 1시30분·3시·4시30분·5시30분) 운항한다. 요금은 왕복 3000원. 마을이장 ☏010-7156-5069.

    ▲잠잘 곳= 곤리섬 마을에는 주민들이 운영하는 민박집이 4군데 있다. 이복동(☏646-4607), 이정부(☏642-1942), 정홍균(☏643-7263), 김실이 (☏646-8521)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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