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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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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비경 환상의 섬 ⑩ 거제 지심도

쪽빛 바다 바라보며 미소 짓는 동백꽃
사람들 오면 부끄러워 더 붉어지네

  • 기사입력 : 2010-03-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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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에서 바라본 지심도 전경./김승권기자/


    지심도에 피어 있는 동백꽃./김승권기자/

    3월, 아직 꽃샘추위가 남았지만 빨리 자신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 봄을 맞으러 남쪽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으로 봄마중을 떠난다. 봄맞이에 나선 길, 포근한 멜로디의 봄 노래가 귀에 감겨 왔다.

    오전 10시30분경 찬 바닷바람에 어깨가 움츠러 들지만 장승포항 앞바다는 비교적 잔잔했다. 막 떠나려는 배를 붙잡아 타고 지심도행에 나섰다. 유명세를 제법 탄 지심도가 목적지인 승선자들 중에는 섬주민과 관광객이 얼추 반반이다.

    뱃길로 약 15분. 손에 잡힐 듯 눈앞에서 일렁이던 섬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지세포의 동쪽에 있는 긴 사각형 모양의 섬, 지심도는 비교적 아담한 편이다. 면적은 356㎡, 해안선은 3.7㎞이며 최고점은 97m다. 옛 문헌에는 조선 현종 45년에 15가구가 이주해 살았다는 기록이 있고 1936년 일본에 의한 강제 병합 후 강제 이주된 뒤론 일본군 1중대가 주둔하며 요새 역할을 수행했다.

    광복 후 쫓겨났던 주민들이 다시 이주해 왔고 현재는 마끝, 한모, 새끝 등 3개로 나뉘는 마을에 14가구 30명 남짓한 주민들이 살고 있다.

    바닷바람에 떨어진 동백꽃. 지심도 동백터널은 떨어진 동백꽃을 보며 걷는 숲길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일제시대 탐조등 보관소

    관광객들과 섬주민들이 지심도 선착장에 내리고 있다.

    지심도 초입, 깎아진 암벽에서 물이 새어 나와 아담한 수로에 졸졸 물이 흐르고 그 위에 떨어진 빨간 동백꽃 한 떨기가 반갑다.

    동백이 지천이라 동백섬이라고도 불리는 지심도는 곳곳에 동백나무가 우거져, 여기서도 저기서도 동백터널에 접어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선착장에 내려 얼마간 굽은 길을 오르다보면 금세 줄지어 선 동백나무를 만날 수 있다. 벌써 동백터널을 만났나 싶어 ‘과연 동백섬이구나!’하고 감탄하며 동백 감상에 들어 간다. 하지만 소박한 활주로에 이르기 전까지 아직 지심도가 자랑하는 동백터널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이니 감탄사를 아껴두어야 할 것 같다.

    약하게 경사진 길을 오르면서 마을 구경을 하다 보면 드문드문 민박집들을 지나 국방과학연구소까지 뒤로하게 된다. 연구소까지는 시멘트길로 덮여 있어 운치는 덜하다. 흙냄새 솔솔 올라오는 섬의 맛을 기대했는데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연구소를 지나 왼쪽을 돌아보니 넓은 터에 체육시설이 설치돼 있다. 조금은 생뚱맞다 싶은 이곳은 폐교된 학교터다. 예전에는 마을 잔치와 같았던 운동회를 개최하기도 했던 운동장은 뛰어노는 학생 대신 주민과 관광객이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학교터를 지나니 시야가 탁 트인 넓은 풀밭이 나왔다. 이곳은 양쪽으로 바다를 볼 수 있는 활주로. 이름은 활주로지만 실제로 비행기가 이용할 정도로 길진 않다. 헬기 착륙장으로 쓰이던 것을 그렇게 부른단다. 활주로 입구에는 희귀종 분홍동백 나무가 가녀린 몸으로 해풍을 맞고 서있다.

    동백터널을 지나면 바다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그대 발길 돌리는 곳’을 만난다.

    망루 앞에 있는 방향지시석.

    마침내 동백터널에 들어선다. 동백터널 속에 들어가니 동백나무가 우거져 바람과 빛을 가린다. 거대한 나무 바구니 속에 들어 앉아 있는 것만 같은 순간, 동백숲에 산다는 동박새, 직박구리, 딱새 등의 노랫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동백림에서 울리는 새소리는 ‘사사사~’ 나무끼리, 나뭇잎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더해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심도에는 동백나무뿐 아니라 후박나무, 사철나무, 종려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어 바다 위의 산림욕장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동백터널을 지나자 일제시대 일본군이 만든 탐조등 보관소가 나온다. 직경 2m 규모로 장승포, 지세포, 진해만, 대마도 등을 감시했던 탐조등 보관소는 지금 창고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마침내 해안선 전망대에 오른다. 넓은 거제 바다와 오른쪽 동섬부터 지나온 해안선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전망대는 지심도의 자랑인 해식절벽의 장관을 구경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으로 그네에 앉아 잠시 푸른 바다와 해안선의 절경을 감상한다. 이어 도착한 망루 앞에는 방향지시석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망루를 지나 몇 m 더 내려가니 종착지 ‘그대 발길 돌리는 곳’이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카메라 속에 추억으로 남기고 발길을 돌린다.

    곳곳에 낚시터로 빠지는 길이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지심도는 낚시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 특히 재래식인 뜰채 낚시가 유명하지만 아직 추워서인지 뜰채 낚시를 즐기는 사람은 없다. 낚시로는 자리돔, 학꽁치, 볼락, 멸치 등을 잡아올릴 수 있다고 한다.

    눈앞에 펼쳐진 대자연의 선물, 이 섬의 주인은 바로 국방부다. 그래서 개발은 제한적이고 주민들의 생활 개선도 쉽지 않은 상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지만 주민들은 어업이 아니라, 땅을 개간해 밭과 과수원을 일구고 유자나 쌀을 재배하는 농업과 민박업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동백이 아름다운 관광지로 이름이 나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져 미미했던 농업도 접은 가구가 대부분이며 지금은 거의 민박을 하고 있다고 한다. 민박을 위해 타지에서 들어온 집도 있다. 원주민이라고 해야 4가구 정도다.

    동백터널 종착지에 ‘그대 발길 돌리는 곳’이라고 써 있다.

    지심도에서만 55년간 살았다는 박계하 할머니가 밭에서 뽑아온 파를 다듬고 있다.

    섬을 한 바퀴 돌아 마을의 끝부분 새끝에 닿았다. 지심도에서만 55년간 살았다는 박계하 할머니(75)의 집에도 ‘새끝할머니민박’이라는 명패가 달려 있다. 탐조등 보관소를 지나 새끝으로 오는 길에 있는 쭉쭉 뻗은 대나무 밭은 박씨 부부가 30년간 일궜던 것이란다. 그는 20살에 시집온 후 바깥 세상이라고는 친정이 있는 장승포, 일운면, 가조도, 지세포밖에 나가 본 일이 없다는 원주민 중의 원주민.

    그는 “예전에는 농사도 더러 지었는데 요새는 전부 민박으로 먹고 산다”며 “사람들은 여름철에 많이 찾아오지만, 동백은 지금이 딱 제철인데 얼마 전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거세 꽃잎이 많이 떨어져 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섬 사람의 일정은 순전히 날씨에 달렸다. 박 할머니는 “날씨 상황 봐서 좋으면 장승포로 나가 목욕도 하고 장도 본다”며 “오늘 마을 이웃들이 장승포에 있는 찜질방에 가자고 하더니 날씨 보니 못 가겠다”고 밭에서 뽑아온 파를 마저 다듬었다.

    지심도 여행이 거의 끝날 무렵,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갈매기민박집 주인은 “아침에 물건을 들여올 때만 해도 날씨가 좋았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었다”며 “섬의 날씨는 시간마다 변화가 심하다”고 말한다.

    마을 입구로 내려오니 바람이 거세져 12시50분 배를 마지막으로 도선 운항이 중단됐다고 했다. 순간 막막해졌다. 터미널과 해경에 도움을 요청해 봤지만 바람과 파도 때문에 접안이 힘들며 배조차 띄울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박계하 할머니의 자녀가 이틀 다니러 왔다가 일주일간 발이 묶였다는 이야기를 웃어 넘겼는데…. 꼼짝없이 섬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보니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졌다.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2~3시간쯤 기다렸을까. 육지에서 회사 선배들이 배편을 수소문한 끝에 조업 후 복귀하는 어선 한 척과 겨우 연락이 닿았다. 베테랑 선장도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지심도 선착장에 배를 댔다. 배에 오르니 파도의 위협이 온몸으로 전해져 눈앞이 아찔했다. 얼굴에 묻은 바닷물을 닦아낼 겨를도 없이 뒤뚱거리며 선실로 몸을 숨겼다. 어선을 집어 삼킬 듯한 파도를 헤치며 지세포로 향했다. 멀어지는 섬을 보니 성난 바람에 흔들리는 동백꽃이 말하는 것 같다. “봄비를 만나기 전에, 바람의 시샘에 시달리기 전에 날 만나러 와요.”

    글=김희진기자 likesky7@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가는 길= 통영-신거제대교-신현-연초-옥포-대우조선해양-장승포항(동백섬지심도 터미널)

    ▲도선운항안내= 3월 1일~10월 15일 (장승포 출발) 8시/10시30분/12시30분/2시30분/4시30분, (지심도 출발) 8시20분/10시50분/12시50분/2시50분/4시50분.

    10월 16일~2월 말(장승포 출발) 8시30분/12시30분/4시30분, (지심도 출발) 8시50분/12시50분/4시50분. 소요시간은 15~20분, 운임료는 성인 6000원/아동 3000원.

    ▲숙박정보= 동백하우스(011-859-7576), 등나무민박(011-584-8758), 갈매기민박(011-9339-3802), 황토민박(011-835-2276), 해돋이민박(016-9664-7180), 전망 좋은 집(019-483-4811), 섬마을 바다풍경(011-9592-7672), 피싱하우스(010-8513-4581), 할머니샛끝민박(010-4871-7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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