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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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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최평규 S&T그룹 회장

“사장은 직원들이 인재가 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지요”

  • 기사입력 : 2010-03-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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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평규 S&T그룹 회장이 창원 S&T중공업 내에 있는 방산품전시장에서 K-2전차에 장착되는 세계 최초의 1500마력급 6단 자동변속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전강용기자/

    “대한민국 기업인 중에서 저처럼 31년간 사장을 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한마디로 골병이 든 거죠.”

    창원에 기반을 둔 S&T그룹 최평규(58) 회장의 얘기다.27세에 직원 7명으로 창업해 31년 만에 국내외 22개 계열사,직원 3500여 명의 그룹 회장이 된 그의 경영철학은 `생각 즉시 행동’이다.

    아울러 현장경영과 투명경영을 지속적으로 실천해 왔다고 자부한다.

    예나 지금이나 열정적으로 일하고,저녁에는 직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노래방에서 격의 없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가끔은 주말을 이용해 낚시를 떠나거나 무작정 완행버스를 타고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기도 한다.

    # 유년시절

    최 회장은 1952년 9월 경남 김해시 주촌면에서 2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작고한 부친은 활동적이고 도전적인 사고를 지닌 분이었다. 면사무소, 세무서에서도 근무를 했고, 군 장교를 지내기도 했으나, 가정형편은 들쭉날쭉해 불안정했다고 회상했다.

    “내가 기업하면서 탄탄한 경영, 무차입 경영을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실제로 그룹의 모태인 S&TC와 S&T홀딩스는 31년째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어머니를 가장 존경한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자녀 4명을 키우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활력이 강했다고 한다. 팔순이 넘은 지금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신다. 최 회장의 부지런함은 어머니를 닮았다.

    # 대학시절과 미국 이민

    경희대 기계공학과 71학번인 그는 공부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찾아다녔다. 서울 휘경동, 이문동 근처에서 닭발장사도 했다. 닭집에서 버리는 닭발을 공짜로 가져와 동네 포장마차에 되팔았다. 이렇게 해서 돈을 벌면 명동의 맥주 집에 앉아 하룻 저녁에 다 써버리기도 했다. 졸업 후에는 에어컨 제조업체인 ‘센츄리’에 취업을 했다. 5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고, 일본 히타치제작소에서 1년 동안 기술연수도 받았다.

    1979년 처가 식구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장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보조로 근무하며 하루 18시간을 일하는데, 한마디로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6개월을 지내다 귀국을 결심했다.

    “어머니가 한국에 계셨고, 고향에 대한 향수도 남달리 심했어요. 미국생활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기 시작했던 때였습니다. 일본 히타치제작소 연수를 마치고 알게 된 미국인 맥얼로이씨의 전화를 받았어요. 자기가 개발한 특허 제품이 있는데 한국에 가서 팔아 볼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었죠.”

    # 창업부터 그룹 회장이 되기까지

    맥얼로이씨의 공장을 찾은 최 회장은 열교환기 핵심부품인 핀튜브를 만드는 피닝머신(공작기계)을 보고 ‘한국에 가져가서 발전설비 국산화에 기여하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1979년 귀국한 그는 17평 아파트를 팔아 인천시 주안공단에 직원 7명(자신 포함)의 삼영기계(현 S&TC)를 설립했다. 당시 관세까지 포함해 약 9000만원 하던 기계를 수입하기 위해 아버지, 형님, 매형 집을 은행에 담보로 맡겼다. 그만큼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 기계를 가지러 가 있는 동안 10·26사태가 터졌고, 기계 수입을 일단 포기해야 했다. 서울로 돌아온 그는 연말까지 술만 엄청 마셨다. 그런데 1980년 1월 12일 행운이 찾아왔다. 정부가 1·12조치를 단행해 원달러 환율을 600원에서 480원으로 낮춘 것이다. 원화기준으로 기계값이 무척 싸진 것이다. 1월 20일 기계를 들여왔고, 그렇게 운 좋게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정말 열심히 뛰었다.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공장 일과 영업을 하면서 하루에 거의 2~3시간밖에 자지 않았다. 회사는 조금씩 나아졌고, 부천시 삼정동·도당동으로, 김포시 마전리· 금곡리로 공장 이전을 거듭했다. 1997년 창원 팔룡동을 거쳐 현재의 성산동에 자리를 잡았다. 창업 31년이 된 지금은 성공적인 M&A로 국내외 22개 계열사에 직원 3500여명을 둔 그룹으로 성장했다. 창업 첫 해 1억원도 되지 않았던 매출액은 지난해 약 1조5000억원으로 급증했다.

    # 이제는 소통경영이 대세

    현장경영을 줄곧 강조해온 최 회장은 근래 들어 입버릇처럼 ‘소통’을 주문한다.

    “소통경영은 그냥 말을 많이 하는 거예요. 우리나라 문화가 굉장히 침묵하는 그런 경향이 있잖아요. 사실 서로 소통이 안 되면 스피드경영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최 회장은 일단 직접 나서서 소통문화에 솔선수범할 것이라고 한다. 제대로 소통이 안 되면 어떤 기업이든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최 회장은 작년에 부산 쪽 일이 잘 풀려서 올해는 창원 S&TC와 S&T모터스에 더 많이 있으려고 한다.

    “올해 그룹 슬로건이 소리 없이 강한 기업인데, S&T모터스는 지난 2~3년간 소리 없이 준비해 왔어요. 작년 10월 이탈리아 밀라노 국제전시회에 출품한 700㏄급 크루즈형과 딜럭스형 오토바이는 국제시장에 내놔도 손색없는 제품입니다. 가격도 우리가 20% 더 싸고, 아주 잘 빠졌어요. 앞으로 소형 50㏄ 정도의 스쿠터급 전기이륜차로 전면 개편될 것입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전기스쿠터가 한국에서 나올 거예요.”

    # 올해 6~8월 M&A 매물 쏟아질 것

    HMC투자증권은 지난달 S&T그룹의 M&A를 높이 평가하는 투자보고서를 내 눈길을 끈 바 있다. 금호아시아나, 두산, STX 등 M&A로 성장한 여러 그룹 가운데 가장 성과가 좋다는 평가였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M&A란 걱정 없는 편안한 기업이 리스크를 안고 들어가는 것이다. 굉장한 고난의 길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현금 유동성 여유를 갖고 나서야 한다.”

    부실기업을 인수해 튼실하게 키워내는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최 회장은 “현재로선 M&A 대상 기업이 없지만, 인수해 달라고 요구하는 기업은 많이 있다”고 했다.

    최 회장은 또 올해 2분기와 3분기 사이에 M&A 매물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 우리나라 국가 전체를 보는 시각과 내 시각은 다릅니다. 오는 6, 7월 기업에게는 어려운 시기가 올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기업현장에 있어 보면 남이 잘 못 보는 게 보일 수가 있어요. 예전에는 금융, 대기업 등 큰 게 무너졌지만, 이번에는 밑에서부터 무너져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 낌새가 지금 보이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국민 전체로 보면 서민가계의 부채가 눈에 안 보이게 굉장히 늘어나고 있어요. 밑에서부터의 위기, 이것은 심각한 사태가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지금 눈에 안 보이게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 그는 천상 사장이라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사실 하고 싶은 것은 별로 없어요. 여기까지 온 것도 많이 온 거고. ‘회사를 더 키우고 싶다’ 이것도 말이 안 되고. 회사는 키우고 싶다고 키워지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하면 저절로 커지는 거죠.”

    그래서 다시 물었다. 누군가 ‘당신은 어떤 사람이요’ 하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겠느냐고.

    “소크라테스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하하하! 자신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진짜 애매하잖아요. 나 자신을 나도 모르니까요. 어떤 때는 굉장히 치밀하고 어떤 때는 굉장히 저돌적이라는 거죠. 만약 경륜이 쌓이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싶습니다. 사실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은 국어교사였어요. 그런데 엉뚱한 길로 와서 이 고생 아닙니까. 결코 행복한 것만은 아니에요. 허허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회사를 꾸려간다는 게 어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그런 점에서 31년간 사장을 하고 있는 최평규 회장은 정말 대단한 CEO라고 하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드물 것 같다. 그가 천상 사장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두 시간여 인터뷰 후 뒤늦게 가진 점심식사 자리에서 그가 한 말이다.

    “사장은 직원에게 월급만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직원들이 인재가 되도록 도와 주는 사람입니다.”

    ☞최평규 회장= 혈액형은 O형, 키 176㎝에 체중 85㎏. 별명은 ‘호빵맨’이지만 자칭 ‘대두’이다.

    회사에서 그보다 머리둘레가 큰 사람을 못 봤다고 한다. 소통을 위해 직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고, 2차 노래방도 곧잘 동행한다. 정태춘 노래와 ‘솔아 솔아 푸른 솔아’‘광야에서’ 등 운동가요를 즐겨 부른다.

    타고 다니는 벤츠는 2005년 5월 목 신경을 다친 이후 병원에서 목 부위에 충격이 덜 전달되는 벤츠를 권해 그해 11월 구입한 것이다. 가장 즐기는 음식은 라면에 밥 말아 먹기. 물론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 토종음식도 즐긴다. 양식은 먹고 나면 돌아서서 다른 곳에 갈 정도로 즐기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완전 촌놈’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대화가 없는 자리는 소주 반병도 못 마시지만 맘에 맞는 이와는 밤새 마시기도 한다.

    글=홍정명기자 jmhong@knnews.co.kr

    사진=전강용기자 j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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