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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김태호 경남도지사

“사람들은 내가 왜 미지의 길 택했는지 궁금해하죠”

  • 기사입력 : 2010-04-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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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지사 출마를 접은 김태호 지사의 집무실에는 많은 단행본 책이 책장 한 켠을 차지하고 있고, 통영 연화도의 대형 항공사진이 남해안 시대를 주창했던 김 지사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전강용기자/

    ‘달과 6펜스’의 저자, 꿈틀거리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그리려 했던 영국의 소설가 서머셋 모음은 “정치가나 돈 많은 사람, 학식이 많은 사람들은 내면을 알기 어렵다”고 했다. 그 사람에게서만 풍겨 나오는 향기가 없다고나 할까.

    권력가나 재벌들은 적어도 몇 개의 가면을 갖고 살기 때문이고, 가면이 없다면 권력이나 부를 거머쥘 수 없는 인간세상 구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것인지도 모른다.

    서머셋 모음의 지적에도 김태호 지사를 만났다. 43세에 도백이 됐고, 도지사 자리를 미련없이 버린 한 남자의 성장 과정과 인간적인 면을 보고 싶었고, 많고 많은 일 중 정치를 하게 된 계기와 정치철학도 알고 싶었다.

    젊은 나이에 오를 수 있는 한 높이 올랐으나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려는, 달과 6펜스의 그 사나이(고갱)처럼 속세의 안락과 명예를 버리고, 확정되지 않은 미지의 삶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했다.

    그는 쫓기듯 살아온 6년을 보상이라도 받는 듯 지금은 여유가 있다고 했다.

    “도지사가 되고 처음으로 도청 정원 나뭇가지에 파릇파릇한 싹이 트고 있는 것을 봤다. 봄을 느낄 정도의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선거란 것이, 또 높은 자리에 있다는 것이 인간을 얼마나 메마르게 하는 것인지 새삼 느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3선 도지사 자리를 물리치고 난 지금 소감은 어떨까.

    -후회하지 않느냐.

    “한마디로, 해피하다. 너무 솔직하면 욕 듣지만, 자유 의지가 작동할 환경이 조성돼 있고, 앞으로 펼쳐질 선택의 기회도 많기에 아주 행복하다.”

    -정치철학이 무엇이냐.

    명제에 대한 해답을 내놓듯 단순명료했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정치다.”

    -왜 하려는 일이 굳이 정치여야 하는가.

    (돌아온 대답은 솔직했다)

    “김태호 너 왜 정치하려고 하는가. 자면서 다리가 쩌릿쩌릿하도록 자문자답해 본다. 솔직히 아직도 확실치 않다. 도의원, 거창군수는 내 개인의 영광이 컸다”고 그는 고백한다.

    “도지사를 하면서 진짜 도민에게 도움이 되는가, 이 나라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정치를 하려면 가족보다 나라를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 가족을 버릴 수 있고, 신념을 위해 목숨과 바꿀 수 있겠는가의 문제도 있다.” 지금까지는 풀지 못한 화두였다.

    “이제 정치를 한다면 이에 대한 대답을 확실히 갖고 도전하겠다”고 했다.

    그런 그도 어두운 터널을 많이 지났다. 물론 잘된다는 전제만 있으면 어려움이나 가난도 큰 자산이지만 누구에게나 어려움은 탈출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촌놈 출신들이 다 그렇듯 가진 것 없이 고생했다.”

    “대학원 박사과정 때 결혼을 했는데 반지하방에 살았다. 농 한짝을 못 넣어 창틀을 뜯어 넣었는데 비가 오면 이불이 젖었다. 갓 신혼인 아내가 덤을 더 주는 끝물이나 떨이 때문에 시장 갈 때 항상 늦게 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탈출하고 싶었고, 벗어나고 싶었다.”

    1000만원 마이너스 통장 들고 내려와 도의원 출마했는데 지금은 부자가 됐다고 말한다. 김 지사의 공직자 재산 등록현황에 나타난 재산은 현재 3억938만5000원이다.

    그는 그러나 가난에 대해 이렇게 솔직하게 말한다. “어려움도 큰 힘이 된다. 그러나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큰 힘이 된다는 것은, 더 믿질 것 없다는 것에 바탕을 둔 뱃심이고, 이는 던지고 도전하는 에너지의 원천인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는 “도전하지 않는 것도 실패다”고 강조한다. 그의 좌우명이 ‘도전’과 ‘겸손’이다.

    형제 중에 가장 공부도 못했고, 그래서 꿈도 농부였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농사일로 먹는 것밖에 없었으니 당연했다.” 서울대 농대를 나왔지만 거창농고를 졸업하고 농어촌특례로 서울대에 진학했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그는 어머니보다 아버지 얘길 많이 한다.

    부산에서 사업 실패로 낙향해 소장수를 하던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도 형제 중 가장 많이 거들었다.

    하루는 소 여물을 줘라고 당부하고 출타를 하셨는데, TV를 보다 그만 잊어버렸다. 아버지가 돌아오신 후 “야이 빌어먹을 자슥아, 소죽도 한 끼 못 챙겨 주는 놈이 공직에는 절대 가지 마라. 다 굶겨 죽인다”고 했다. “아버지는 은연 중에 남자의 길과 정신을 심어줬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아버지의 인연으로 우연찮게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야당시절 정치적 운명을 같이 했던 고 김동영 전 의원이 김 지사의 부친과 친구였고, 김 지사가 서울대에 진학하면서 김 의원 집에서 생활하게 됐다.

    야당 탄압이 심했던 시절, 야당 거물급의 집에서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판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셈이다. 그러다 김동영 전 의원이 갑자기 운명을 달리하자 이강두 전 의원이 거창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면서 정치에 직접 발을 디디게 된다.

    부자지간의 교감에 대한 보답일까. 퇴임 후 부모님과 장모님을 모시고 백두산 여행 가는 계획을 가장 먼저 잡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차례도 부모님 손을 잡고 여행하거나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한 적이 없다.”

    동네에서 말썽이 났다면 주범이었고, 소장수 아버지는 몇 번이고 “네놈 손목데기를 작두로 잘라야겠다”고 으름장을 놓기 일쑤인 악동의 어린 시절을 보낸 그였지만 책과는 친했다.

    김 지사의 집무실과 다른 기관장의 집무실에 차이점이 있다.

    대부분의 기관장 집무실 장서는 두꺼운 양장본(하드 커버)의 전집류로 장식해 둔 곳이 많다. 그러나 김 지사의 집무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장서는 대부분 단행본이다. 그만큼 책을 많이 읽는다는 뜻이다.

    지도자 자리에 있거나 지도자가 되려면 책을 가까이 해야 하는 이유를 김 지사는 이렇게 말한다.

    “책을 읽어야 세상의 흐름을 알 수 있고, 그래야 직관이 생긴다. 책읽는 것이나 밥먹는 것이나 똑같다.”

    그는 책을 며칠 읽지 않으면 불안해진다고 했다.

    그의 이러한 독서 습관이 원고 없이 하는 연설과 무관하지 않은 듯했다.

    인생의 선배들이지만 후임 도지사가 될 분에게 조언을 구했다.

    “몸이 편하면 민심이 벗어나고, 몸이 불편하면 민심이 가까이 온다”고 했다. 특히 민원이 생겼을 때 “좋은 것이 좋다고 하면 더 어렵게 된다”며 “옳은 길인가를 먼저 판단하고 설득하는 것이 도정 신뢰를 높이는 것이 된다”고 했다. 자신의 체험을 담아 여과 없이 들려주는 말이다.

    지난 6년간 남해안시대를 국가 법정계획으로 만든 것이 가장 보람이라고 말한다. “후임 지사가 누가 되든 국가의 의지가 담겨 있어 의심의 여지없이 남해안 시대 정신은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시작한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갖는다고 했다.

    도지사를 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일은 의외로 취임 초기 구입한 에쿠스 리무진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던 일이라고 했다.

    “키 때문에 큰 차를 구입한 면도 있었지만 좋은 차를 사면 중요한 외국손님들이 왔을 때 좋겠다고 생각했다. 민생하고 거꾸로 가는 것 아니냐고 했을 땐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지금은 전국 16개 시장·도지사 가운데 가장 싼 차인 카니발을 타고 다닌다. 승용차가 아닌 승합차다.

    김 지사는 지금 생각도 변함이 없다. “도내 어디를 가나 4~5시간 걸리는데 경남도지사에게 승용차는 이동하는 사무실이다. 차기 도지사한테는 좋은 차로 바꿔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진로에 대해서는 선택할 수 있는 미래가 많지만, “어디에 초점을 두고 준비하는 것은 없다. 판단할 때가 있을 것”이라는 말로 앞날을 예견했다.

    이미 보장받은 권력을 박차는 사람. 세상은 이 사람을 정신 나간 사람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범인(凡人)이 알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거짓말 같은 진실이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뭔가에 도전해야 한다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김용대기자 jiji@knnews.co.kr

    사진=전강용기자 j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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