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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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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비경 환상의 섬 ⑮ 사천 비토섬

봄 햇살 내려앉은 바다 위로 굴이 고개 내밀고
용궁 다녀온 토끼와 거북이 ‘섬’이 되어 반기네

  • 기사입력 : 2010-04-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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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토섬 앞바다에서 자라는 청정 굴을 한 어민이 채취하고 있다. 저 멀리 창선·삼천포대교가 어렴풋이 보인다.

    굴 집하장 곳곳 마을 아주머니들이 굴을 까느라 여념이 없다.

    “옛날~ 옛날에 남해바다 용왕(龍王)님이 살았대요. 그런데 용왕님이 큰 병에 걸려 병을 고치려면 영약(靈藥)인 토끼 간(肝)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거북이가 토끼의 간을 구하러 육지로 가 토끼에게 남해바다의 용궁인 궁궐도 구경시켜 주고 높은 벼슬도 주겠다고 속인 후 바닷속으로 데려왔는데 뒤늦게 속은 것을 알게 된 토끼가 꾀를 내 ‘간을 볕에 말리려고 꺼내 놓고 왔다’고 속여 도망쳤데요….”

    어린 시절 할머니가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던 옛 이야기 ‘토끼와 거북이’(별주부전)의 배경인 사천시 서포면 비토리 ‘비토섬’(飛兎·165가구·370명·262만3844㎡).

    섬의 형세가 토끼가 날아가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비토’(飛兎)라 이름 붙여진 ‘비토섬’은 월등도, 토끼섬, 거북섬, 목섬 등 토끼와 거북, 용왕이 등장하는 별주부전의 전설이 서린 곳이다.

    끝없이 넓게 펼쳐진 비토섬의 갯벌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지천으로 널린 굴과 바지락, 홍합은 무한한 생명력을 전한다.

    국내 최대의 자연산 굴(石花) 생산지이기도 한 비토섬은 어민들의 넉넉한 인심과 소박하면서도 알뜰한 섬사람들의 희망의 섬이다.

    비토섬은 1992년 비토연륙교가 준공되면서 육지와 하나됐지만 섬 고유의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오랜만에 내리쬔 따스한 봄 햇살과 청명한 하늘이 비토섬으로 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들녘의 보리밭은 햇살에 반사돼 더욱 진녹색을 띠고 잔잔한 바다와 싱그러운 갯내음은 운치를 더한다. 쭉 뻗은 사천대교과 자혜터널을 지나 한참을 가다 대포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비토섬으로 가는 길이다.

    구불구불 이어진 해안길마다 진달래, 개나리, 벚꽃 등이 살며시 피어나 반가운 봄소식을 전하고, 푸른 바다 위로 불어오는 시원한 봄바람은 나그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비토교를 지나자 대형 안내판이 비토섬의 숨겨진 내력을 일러 준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비토해안도로는 비토섬 최고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이다. 끊어질 듯 이어진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 있는 바다를 보며 달리다 보면 어느새 가슴은 갯내음으로 가득 채워진다.

    비토리 낙지포에 이르자 물 빠진 바닷가에서 아주머니들이 뭔가를 주워 그물주머니에 담고 있어 유심히 살펴보니 다름 아닌 굴(石花)이다. ‘바위에 붙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자랄 수 있을까’ 신기한 듯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한 아주머니가 ‘와 보라’며 손짓한다.

    “굴 한 개 잡숫고 가소, 정말 맛있다 카이…, 에헤~ 하나만 무머(먹으면) 복이 없다 아인가베, 한 개 더 묵고 가소….”

    굴 작업장의 동네 아주머니들이 반겨 주는 살가운 인사는 오랜 도심생활에 지친 이방인에게 정겨움을 안겨 준다. 국내 최대의 자연산 굴(石花) 생산지인 비토섬 생굴은 전국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바닷물에서 갓 건져낸 탱탱한 굴은 짭조름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 한마디로 끝내준다. 청정한 바다에서만 맛볼 수 있는 바로 그 맛이다.

    “굴은 바닷물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생물인 만큼 청정한 물에서 자란 굴은 그 맛과 향이 오래 가고 탱탱하지만 바닷물이 나쁘면 굴은 금세 폐사해 버린다”며 비토섬 굴 맛의 비결을 일러준다. 수년 전 폐교된 비토초등학교를 지나 사천 수협활어위판장 입구에 이르면 굴 집하장의 다양한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

    임시 작업장 곳곳마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바다에서 갓 건져낸 굴을 까느라 여념이 없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배를 이용해 바다에서 채취한 굴을 옮기느라 쉴 틈이 없다. 또 이곳 수협활어위판장에는 매일 새벽 6시면 인근에서 잡은 낙지, 주꾸미, 도다리 등 싱싱한 해산물들을 경매에 부치는 경매장이 열린다.

    비토섬 굴은 자연적으로 생기는 굴도 있지만 주로 대나무를 이용하는 걸대방식의 굴양식이다. 걸대방식은 바다 바닥에 대나무를 꽂아 굴이 자라면서 물때에 따라 하루 두 번 햇빛은 물론 대기 중의 공기와 접촉해, 수하식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그 맛은 탁월하다. 반면 수하식 양식은 하루 종일 바닷물에 잠겨 양식되기 때문에 굴이 크고 성장속도가 빠른 반면 맛과 향이 떨어진다.

    하루 두 번 썰물 때면 들어갈 수 있는 월등도.

    물 빠진 비토섬 갯벌에서 어민이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진 갯벌과 굴 양식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다. 바다를 시꺼멓게 수놓은 굴 양식장의 이 광경은 비토섬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색적인 풍경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월등도다.

    섬 안의 자그마한 섬 ‘월등도’, 별주부전에 등장하는 ‘토끼섬’과 ‘거북섬’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먼저 이 작은 섬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평상시에는 바닷물로 인해 차량이 들어갈 수 없지만 하루 두 차례 열리는 썰물 때면 바닷길이 열려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비토섬 내의 또 다른 작은 섬 월등도는 5가구 1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월등도를 ‘돌당섬’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유인즉 토끼가 용궁으로 잡혀간 후 돌아와 처음 당도한 곳이란 뜻에서 ‘돌아오다의 ‘돌’, 당도하다’의 ‘당’자 첫 글자를 따서 ‘돌당섬’이라 부르고 있다.

    거북이 등에 토끼가 올라탄 대형 조형물을 지나 월등도로 가는 길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잔잔한 바다 배 위에서 작업하는 어부와 따스한 햇살에 굴을 따는 아낙네의 모습은 한 편의 그림 같다.

    물 빠진 바닷길에 혹여 차량바퀴가 빠지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지만 이 고민은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차량으로 다져진 바닷길은 단단하기가 일반 흙길보다 더하다. 고개를 넘어 마을로 들어서자 인근에서 밭일을 하던 한 아저씨가 “어디서 왔소”라며 반갑게 맞이한다.

    행여 나갈 일을 우려해 언제 밀물이 시작되냐고 여쭙자, 아저씨는 “저기 토끼섬 앞바다에 보이는 말뚝에 물이 차기 시작하면 서둘러 나가야 한다”며 “밀물이 시작되려면 아직 2~3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섬을 둘러보라”고 권한다.

    물 빠진 월등도의 갯벌 위로 다닥다닥 바위에 붙은 굴은 마치 바다에 하얀 꽃이 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바다에 깔렸다.

    토끼섬

    거북섬

    맞은편 토끼섬은 두 귀를 쫑긋하게 세우고 몸을 움츠린 모습이 마치 토끼의 형상과 같아 절로 웃음이 나온다.

    마을 주민은 “남해 용궁을 다녀온 토끼가 육지에 얼른 내려야겠다는 생각에 월등도를 향해 뛰어 오르다 달빛에 반사된 섬이 생각보다 멀어 바다에 빠져 죽으면서 ‘토끼섬’이 되었고, 건너편의 ‘거북섬’은 토끼가 죽자 용왕님께 혼날 것이 두려워한 거북이가 용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굳어서 섬이 되었다는 슬픈 전설도 전해온다”고 말했다.

    물 빠진 갯벌 위로 흰 갈매기 날고 한 통 가득 바지락을 캔 마을 아낙네가 갯벌을 걸어 나서는 모습에서 삶의 희망을 엿본다.

    ☞가는 길

    비토섬은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곤양인터체인지에서 서포 방면으로 약 10㎞에 위치해 있다. 국도 3호선을 이용할 경우 사천시청이 있는 용현면에서 사천만을 가로질러 걸쳐 있는 사천대교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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