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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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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술에 반하다 ② 지리산솔송주

500년 이어온 손맛으로 빚어낸 은은한 솔향

  • 기사입력 : 2010-04-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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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전통식품 명인인 박흥선씨가 함양군 지곡면 창평리 개평마을 자신의 집에서 소줏고리로 전통방식 그대로 솔송주를 빚고 있다.박씨는 일두 정여창 선생의 16대손 며느리이다./김승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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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의 절개를 닮은 선비의 고장, 함양으로 500년 전통의 가양주를 찾아 나섰다.

    향긋한 솔향기가 풍기는 솔송주는 솔잎과 송순으로 만들어진 술이다. 지리산솔송주가 태어난 곳은 함양군 지곡면 창평리 개평마을이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영남 유림을 논할 때 ‘좌 안동 우 함양’이라 했다고 한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뒷산 삼아 자리 잡은 함양은 선비촌으로 잘 알려진 경북 안동과 함께 일찍부터 ‘선비의 고장’이었다. 정씨 집성촌인 함양 개평마을에는 200년 이상된 한옥들이 들어앉아 있는데 이곳에는 조선 5현 중 한 사람인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택이 있다. 500여 년 전부터 정여창 선생의 집에서 빚어 먹던 가양주가 바로 오늘날 지리산솔송주다.

    ◆지리산의 정기 받은 꼿꼿한 술, 지리산솔송주

    함양군 지곡면 창평리 지곡농협 뒤편으로 지리산솔송주를 빚는 (주)명가원 건물이 있다.

    솔송주를 빚는 명가원의 정천상(64)씨와 부인 박흥선(57)씨는 정여창 선생의 16대손으로 대도시에서의 직장생활을 접은 후 고향인 함양에 뿌리를 내리고 조상이 물려준 고택을 지키면서 집안 전통주인 솔송주를 빚어 오고 있다. 특히 주조를 담당하고 있는 박흥선씨는 지난 2005년 전통식품명인 제27호로 지정되어 솔송주의 특별함을 더한다.

    벌써 10여 년이 흘렀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정씨와 부인 박씨는 ‘60살이 되면 귀향해야지’라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씨는 일찍이 홀로 된 노모의 외로움을 모른 체할 수 없었고 예정보다 10년 가까이 일찍 함양행을 택했다. 양조장을 운영했던 큰댁을 통해 자연스럽게 술문화를 접했던 터라 ‘술’이 친근하긴 했지만 그때까지도 솔송주를 빚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솔송주’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담그시던 술일 뿐이었다. 수많은 방문객들을 대접하던 술로 사업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주변에서 유명한 솔송주를 그대로 둘 것이 아니라 명맥도 유지할 겸 생산을 계속해보라고 권유를 했다.

    “어머니가 혼자서 만들고는 하셨는데 손님 접대용으로 조금씩 만드는 것이라 양이 많지 않았어요. 고향에 돌아오니 주변 분들이 그 맛있는 술을 왜 안 만드냐고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솔잎이야 지리산을 끼고 있는 마을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 따로 재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지리산 골짜기에서 흘러 나오는 청정수와 이곳에서 나는 찹쌀을 버무린 술, 솔송주는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우선 찹쌀 죽에 누룩을 잘 섞어 독에 보관해 3일 정도 발효시켜 밑술을 만든다. 마을 주변에서 구한 솔잎과 송순을 깨끗히 씻어 찐다. 이때 송순을 찌는 것은 특유의 떫은 맛을 없애기 위해서란다. 쪄낸 고두밥을 식히고 쪄낸 솔잎, 송순을 밑술과 섞어 보름가량 숙성시킨다. 숙성이 완료되면 술을 채와 창호지로 걸러내 다시 20일 정도 보관한 뒤 맑은 윗술을 떠내면 ‘지리산솔송주’로 이름을 달고 나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발효’다. 날씨에 따라 숙성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매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수백 년간 손맛으로 이어져온 솔송주의 발효과정을 수치화시키기까지 말로 다할 수 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모든 환경을 최적화시킨 후, 술의 맛은 하늘에 맡긴다.

    “제조법을 수치화해 놓기는 했지만 발효가 잘 되고 그렇지 않고는 하늘만이 아는 거랍니다.”

    ‘솔송주’의 다른 이름은 송순주, 송주, 솔잎주 등 다양하다. 하나 같이 솔잎과 송순으로 만들어진 술을 일컫는다. ‘지리산솔송주’라는 이름은 박흥선, 정천상씨 부부가 새로 지은 이름이다. 원래 이들의 술도 송순주라고 불렸다. 1996년 국세청에 이름을 신고하러 갔더니 이미 송순주라는 이름은 임자가 있었던 터라 급하게 이름을 지어야 했다. 이리저리 궁리하던 중 정씨가 기지를 발휘해 ‘솔’자를 하나 더 붙이자고 제안했고 ‘솔송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음~부드럽다.’ 솔송주를 마시고 난 후 자연스럽게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솔송주는 주도가 13%인 발효주와 40%인 증류주로 나뉜다. 13% 발효주는 와인과, 40% 증류주는 양주와 비슷할 것 같지만 그 맛은 완전히 색다르다.

    혀에 감기는 첫맛은 달콤하고 입안에 머무는 시간 동안은 은은하게 솔향기를 느낄 수 있다.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가고 뒷맛은 깔끔하다. 발효주는 부담없이 즐길 수 있고, 증류주는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는 솔엑기스를 잡아서 만드는 공이 많이 들어간 술로 마니아들은 첫잔에 그 진가를 알아본다고 한다.

    “술은 약간 감칠맛이 나야 합니다. 당이 목 넘김을 좋게 하기 때문이죠.” 박흥선 명인의 이야기다. 발효 과정에서 자체당이 만들어지는데 당분의 일정한 선을 조절하는 것이 바로 주조의 기술이다. 그는 ‘주지’, 즉 술의 질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완성된 술로 인정하기까지 박씨 자신이 세워놓은 일정 수준을 넘어야만 포장이 가능하다.

    박흥선씨가 명가원 연구실에서 알코올 농도를 측정하고 있다.

    ◆ 전통주 명인의 전통주 사랑

    박흥선씨는 일두 정여창 선생의 16대손 며느리이기도 하지만, 국가가 지정한 전통식품명인으로 우리 전통주의 명맥을 잇고 있다. 제27호 전통식품명인인 그는 도내에서는 유일한 술 제조명인이다.

    그의 안내로 구경한 연구실은 과학 실험실을 방불케 했다. 수많은 종류의 술과 책이 책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노트는 ‘술’에 대한 공부의 흔적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술은 한 잔도 못한다는 그가 명주를 만들어 내기까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그가 명인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 배경에는 술 빚는 법을 가르친 시어머니 이효의씨가 있었다. 85세까지 직접 솔송주를 빚을 만큼 솔송주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고 시어머니의 솔송주 맛은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정천상씨는 “옛날 어머니가 담근 솔송주 맛을 보기 위해 우리 집을 찾는 사람이 넘쳐 났었다”며 “어머니는 술 빚는 일을 좋아하셨는데 정씨 집안에 시집와 손님을 맞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술을 빚는 것이 곧 당신 삶의 일부분이었던 것 같다”고 추억했다.

    어머니의 가르침과 가양주의 맥을 이어가겠다는 열정과 정성이 누룩 냄새조차 맡지 못했던 박씨를 변화시켰고 지금은 누구보다 솔송주의 맛을 정확히 짚어내는 절대미각을 자랑한다.

    박씨는 “결혼 전까지 제가 술을 빚으며 살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지난 10년간은 눈만 뜨면 술을 만들었죠. 지금도 저는 술을 한 잔도 못하지만 솔송주 맛을 보는 것만은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전통주를 빚는 기술을 지닌 이를 전통주 명인이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이름을 부여받는 조건에는 전통주에 대한 ‘사랑과 열정’도 필수사항일 것 같다. 시종일관 그는 우리 전통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먹거리는 신토불이라고 하면서 술은 와인이며 위스키 등 외국 술을 찾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우리 땅에서 나는 특산물로 만드는 우리 전통주는 저마다 특징이 있고 몸에도 좋지요. 술도 신토불이여야 합니다.”

    그의 딸 역시 전통주 사랑을 이어가려고 한다. 전통주 명인 후계자로 지정되어 솔송주를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전통주에 대한 자부심으로 ‘술 박물관’을 세울 계획도 갖고 있다고 한다.

    “외국에 우리 전통주에 대한 홍보는 거의 안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우리 것을 아끼고 발전시켜야 세계가 알아주지 않겠어요.”

    오래전 굽히지 않은 절개로 나라를 사랑했던 선조의 마음이 솔향처럼 퍼져 우리 전통주의 소중함을 지켜가려는 후대로 이어져오고 있는 것 같았다.

    글=김희진기자 likesky7@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박흥선씨가 명가원 연구실에서 실험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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