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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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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술에 반하다 ③ 산청 십전대보주

10가지 한약재 넣어 ‘보약술’ 빚었죠

  • 기사입력 : 2010-05-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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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용길 사장이 십전대보주에 사용할 약재를 손질하고 있다.

    아름다운 술 한 잔이 마치 선약 같아서/다 시든 얼굴도 소년처럼 붉게 하네/신풍을 향하여 늘 곤드레 취한다면/인간세계 그 어느 날이 신선 아니랴-이규보 ‘술 한 잔에 젊어지네’. 우리의 선조들은 술 한 잔과 함께 시를 읊는 풍류와 멋을 즐겼다. 그중 고려시대 문신이자 문인이었던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 국선생전, 동명왕편 등을 지은 명문장가로 이름나기도 했지만 술을 노래하는 시를 여러 수 지을 정도로 술을 가까이 했다고 한다. 특히 누룩 등을 의인화해 당시 시대상을 비판한 ‘국선생전’은 등장 인물과 지명 등을 술과 연관된 한자로 골라 썼는데 애주가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치 선약(仙藥) 같아 소년의 얼굴처럼 붉게 만든다는 묘약 같은 그 술에 몸을 좋게 하는 약재라도 들어있다면 금상첨화. 지리산 자락을 끼고 있는 우리 지역 전통주 중에도 그런 술이 있다. 바로 십전대보주다.

    ‘십전대보’란 병을 앓아 전신이 쇠약해졌을 때 몸의 기력을 회복하기 위한 약이다. 인삼, 백출, 백복령, 감초, 숙지황, 작약, 천궁, 당귀, 황기, 월계와 대추, 생강을 더해 달여 마시면 10가지 모두의 효험이 있다는 뜻으로 십전대보탕이라고도 했다. 한약방에서나 들을 법한 십전대보라는 단어를 술병이 가득한 도가에서 듣다니, 애꿎은 귀가 의심을 받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십전대보의 재료가 들어간 술이 산청에서 빚어지고 있다. 약초와 동의보감의 고장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산청, 십전대보로 술을 담그는 ‘산청전통주’를 찾아갔다.

    초록 옷으로 갈아입은 산들이 겹겹이 싸여 있는 금서면 평촌리, 저 멀리 보이는 지리산을 옆에 두고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야 했다. 가는 길은 마치 휴양지에라도 온 듯 자연 속으로 한 발씩 가까이 가는 느낌이었지만 막상 주조장에 들어서자마자 반기는 것은 코를 톡 쏘는 누룩 냄새와 약재 냄새, 시큼한 과실주 냄새였다.

    할아버지 때부터 양조장을 운영했던 진용길 사장(58)은 가업을 이어받아 다양한 전통주를 빚어 오고 있다.

    처음에는 막걸리로 시작했지만, 막걸리 붐이 생기기 훨씬 전의 일이라 양조장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변화를 꾀했다. 지역 특산물로 눈을 돌린 진용길 사장의 눈에 한방약초축제에서 보았던 다양한 종류의 약재들이 눈에 들어왔다. 몸에 좋은 약재를 술에 넣으면 웰빙문화가 널리 퍼진 현대사회에서 특징을 갖는 술이자, 산청의 특산물로서 내놓기에도 손색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바로 약재를 첨가한 술맛을 내기는 어려웠다. 특징을 살리면서도 독하지 않고 맛있는 술을 빚기 위해 3년간 연구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십전대보주를 완성했다.

    십전대보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약재를 첨가하는 단계 전까지는 막걸리를 담그는 과정과 같다.

    우선 효모를 증식시키기 위해 주모를 담근다. 주모는 누룩과 밀가루를 섞은 후 28℃에 맞춰 약 4~5일을 그대로 둬야 한다. 그 사이 고두밥을 쪄낸 후 완성된 주모를 넣고 1차로 담근다. 주모와 고두밥을 넣는 과정을 ‘담금’이라고 한단다.

    이때 주모가 발효되면서 스스로 온도가 올라가는데, 주의할 점은 30℃가 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온도계를 꽂아 수시로 측정하면서 온도 유지를 하고 있다. 만약 30℃에 가까워지면 꽈리 모양의 냉각기를 이용해 온도를 낮춘다고 한다. 24~48시간이 흐르고 난 후 같은 방법으로 2차 담금 후 다시 24시간을 보낸다. 2차 담금 후 품온(자체 온도)을 살피며 그대로 둔다.

    품온이 28~30℃로 오르면 드디어 십전대보주의 가장 중요한 순서인 약재 첨가 단계다. 인삼, 백출, 백복령, 감초, 숙지황, 작약, 천궁, 당귀, 황기, 월계 등 10가지 약재를 손질해 술에 넣는다.

    진용길 산청 지리산전통주 사장이 발효 온도를 측정하고 있다.

    진용길 사장이 손질한 약재를 담그고 있다.

    진용길 사장은 “보통 막걸리는 2차 담금으로 끝나지만, 3차 담금까지 진행하는 것이 우리 술의 차이점입니다. 과정을 늘려 술을 빚는 시간을 더 길게 하면 술의 맛이 보다 부드럽고 중후해지지요”라고 설명한다.

    술 속에 담긴 약재는 서서히 우러나 술에 섞인다. 약재를 건져낸 후에는 약재를 삶아 그 물을 부어 향과 맛을 더한다. 이후 마지막 3차 담금을 한다. 역시 30℃ 이하로 온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10~15일간 밀봉 상태로 공기와의 접촉을 차단하면서 숙성되도록 둔다. 모든 과정을 거쳐 잘 익은 술은 1~2차 정밀 여과 작업 후 68℃로 살균시킨 후 병으로 포장된다. 숙성 중인 술은 짙은 갈색이지만 정제돼 투명한 병에 담겨 나온 십전대보주는 맑고 연한 황토빛을 띤다.

    그 전 단계가 막걸리와 비슷해 막걸리와 십전대보탕을 각각 준비해 섞으면 얼추 비슷한 맛이 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의문에 그치는 것이 좋다.

    진 사장은 “십전대보주는 적정 온도에서 발효 과정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둘을 섞은 맛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십전대보주를 가장 맛있게 즐기려면 어떻게 마셔야 할까.

    십전대보주가 가장 맛있는 온도는 16~18℃ 정도라고 한다. 단시간 내에 마실 거라면 상온에서 보관하는 것이 좋고, 오래 두고 마실 거라면 냉장고에 보관하되, 마시기 전에는 상온에 잠시 꺼내 놓는 것이 좋다.

    진 사장은 너무 오래 두면 어떤 술이라도 맛과 향이 날아가기 때문에 가능한 한 6개월을 넘기지 않도록 하라고 조언했다.

    최근 발표된 리서치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음주자들 70% 이상이 ‘술’ 하면, 소주를 떠올린다. 맥주, 막걸리, 와인, 위스키가 뒤를 잇는다. 지역 특성을 살린 전통주들은 저마다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진 사장 또한 전통주의 명맥을 잇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전통주의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있다.

    그는 “산청에서 나는 약재만을 이용한 전통주를 만들어 볼 생각이고, 전통주 개발을 꾸준히 해 나갈 것이다”며 “술맛을 제대로 알고 마시는 사람이 늘어 우리 전통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지속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글=김희진기자 likesky7@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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