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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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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비경 환상의 섬 (20) 통영 읍도·연도

바닷길 사이로 손 내밀면 닿을 듯한 두개의 섬
읍도 해안가 넓은 바위 위엔 군데군데 공룡발자국이…

  • 기사입력 : 2010-05-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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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영 도산면 도선리에 속한 연도(왼쪽)는 바닷물이 빠지면 육지(오른쪽)인 칠성 끝과 불과 150m 거리밖에 안될 정도로 가까운 섬이다./이준희기자/

    읍도 마을 앞 바닷가에서 어부들이 굴 양식장을 살펴보고 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의 섬, 읍도(邑島)와 연도(鳶島).

    통영 도산면 마상촌 마을 선착장에서 뱃길로 7~8분 거리의 읍도(3만6268㎡. 32명 16가구)와 연도(10만 8109㎡. 7명 5가구)는 손 내밀면 금세라도 닿을 듯 지척(咫尺)에 있지만 섬을 오가는 배편이 없어 어찌 보면 가깝고도 먼 섬이다.

    물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읍도와 연도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만 읍도는 도산면 오륜리에, 연도는 도산면 도선리에 속해 있다.

    섬을 오가는 유일한 방법인 읍도 마을 이장(김정문·50)의 ‘통통배’를 이용해 섬으로 향했다.

    푸른 바다 위에 하얀 양떼 같은 부표(浮標)들이 파도에 밀려 춤을 추는 바다를 가로질러 읍도로 가는 길은 너무나도 평안해 세상의 근심걱정을 잠시 내려놓게 한다. 배가 읍도 선착장에 닿자 마을 앞 부둣가 작업장에서 굴 종패작업을 하던 서너 명의 할머니들이 외지인의 방문이 의아한 듯 이리저리 살핀다.

    임진왜란 당시 고성군 현감이 임시 피란해 이곳에 진을 치고 살면서, 고을 이름이 원님이 살았다고 하여 고을 읍(邑)자를 써서 ‘읍도’라고 전해지는 섬은 예전 ‘부자섬’이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읍도를 뭍의 사람들이 ‘돈섬’이라고 했을까?

    읍도 마을이 한창 번성기 시절이던 40여 년 전에는 54가구 250여 명의 주민이 이 작은 섬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주낙배도 12척에 이르러 주문진, 대청도로 오징어와 복어를 잡으러 떠났고, 10년 후에는 선박의 규모를 키워 50t급의 주낙배 7~8척이 남해안 앞바다를 누볐다. 그만큼 읍도 섬주민들의 배질이 능수능란했다. 그래서인지 읍도에는 다른 섬에서 보기 드문 기와집이 6~7채 보인다. 사람들이 떠난 지금은 폐가로 변해 흉물스럽지만 예전의 읍도가 풍요로웠음을 증명하고 있다. 또 태풍 매미로 지금은 흔적만 남았지만 마을 부둣가의 ‘정미소’ 또한 다른 섬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다.

    김 이장은 “어릴 때 마을 앞 선착장에 만선을 한 배들이 깃발을 꽂고 들어오면 마을에 큰 잔치가 벌어졌다”며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지만 섬사람들로 북적이던 그때가 지금은 그립다”고 말한다.

    통영 도산면 오륜리 읍도 마을. 다른 섬에선 보기 힘든 기와집 몇 채가 예전에 ‘부자섬’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읍도의 당산나무와 마을회관.

    10여 년 전 폐교된 읍도국민학교. 학교가 암반 위에 세워져 있다.

    4년 전 새로 고친 마을회관에 올라서니 읍도의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300년은 족히 된 듯한 큰 당산나무 아래 자리 잡은 마을회관은 말끔하게 정돈돼 여름이면 민박집으로 변한다.

    오래전 폐교된 읍도국민학교는 무성하게 자란 풀들이 아이들을 대신하고 있다. 당산나무 옆의 학교를 옆으로 옮겨 ‘반석 위에 세운 학교’는 김 이장이 학교를 졸업하던 73년께는 전교생이 110명에 이르렀단다.

    그는 “학교 운동회가 벌어지는 날이면 마을 주민 모두가 운동장의 바위에 앉아 응원을 했다”며 지난날의 즐거웠던 추억을 회상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 섬을 떠난 학교는 폐교됐다.

    운동장 안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바위 위에 앉은 학교 운동장 한쪽에 뜻밖에도 깔끔하게 정돈된 무덤이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다.

    “무슨 무덤이냐?”고 묻자 김 이장은 “학교를 이곳으로 옮기기 전부터 있던 무덤인데 마을 주민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데 외지인들은 신기한지 꼭 질문을 한다”고 말한다.

    읍도는 바위섬이다. 섬의 어느 곳을 파헤쳐도 1m 정도만 내려가면 암반을 만난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터만 있으면 밭을 일궜다. 농사라고 해봐야 고구마, 보리, 마늘 등이 전부지만….

    읍도 바닷가 넓은 암반 위에 있는 공룡발자국(경남문화재자료 제203호).

    학교를 벗어나 바닷가로 내려서자 3~4평의 암반 위에 원형 모양의 발자국이 군데군데 박혀 있다. 공룡발자국이다.

    김 이장은 “해안가에 넓게 펼쳐진 암반에서 공룡발자국 140여 개, 사람의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3개의 흔적을 발견해 1993년 경남문화재자료 제203호로 지정됐다”며 “아마도 고성 상족암 해안의 공룡발자국 화석과 연계된 한반도 중생대 공룡의 분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섬마을 사람들은 공룡발자국 흔적의 발견이 달갑지 않다. 공룡발자국이 마을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은 “공룡발자국 때문에 집은 고사하고 마을 해안로조차 제대로 낼 수 없을 정도로 규제를 받는다”며 “시에서 문화재 관리를 제대로 하든지 아니면 볼거리 제공 차원에서 관광지로 개발하든지…, 지정만 해놓고 방치하면 무슨 소용이냐”며 불만을 토로한다.

    읍도 할머니들이 부둣가 작업장에서 굴 종패작업을 하고 있다.

    읍도 섬 한 바퀴를 돌아보는데는 대략 1시간여. 마을 앞 작업장에는 여전히 서너명의 할머니들이 모여 굴 종패작업 중이다. 읍도를 벗어나 연도로 향하는 외지인에게 할머니는 “섬에 뭐 볼게 있던교…?, 그래도 한때는 이 섬이 잘 살았다카이…”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검게 그을린 할머니의 얼굴과 깊게 파인 주름살, 쭈글쭈글한 손등에서 오랜 세월 세파를 견뎌낸 인고의 흔적이 묻어난다.

    읍도 선착장에서 다시 통통배를 이용해 연도를 향한다.

    읍도에서 불과 500여m 떨어진 연도는 일명 ‘솔섬’이라 불리기도 한다. 암반이 대부분인 읍도와 달리 연도는 토질이 좋고 소나무가 많아 ‘솔섬’이라 부른단다. 하지만 어떤 이는 섬의 형세가 하늘을 나는 솔개 형상을 하고 있어 소리개 ‘연’(鳶)자를 썼다는 설도 있다고 전한다.

    김 이장은 “연도는 마을이장이 도선리에 따로 있으며 주로 바지락과 자연산 굴 채취를 생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조용한 섬마을에 발을 내디뎠건만 주민을 찾아 볼 수가 없다. 한가로이 염소들이 풀을 뜯고 있을 뿐 모두들 어디로 갔는지 ….

    임씨 집성촌인 연도 마을 나지막한 언덕에 올라서니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드러난다. 마을 한가운데 우물은 오랜 세월 주민들과 함께한 듯 군데군데 부서지고 파여 섬사람들의 손때 묻은 흔적이 역력하다.

    김 이장은 “중학교 시절 배가 오지 않으면 도선리 칠성 끝에서 집을 향해 ‘배를 보내 달라’고 고함을 질렀다”며 “부르다 지치면 헤엄을 쳐서 연도로 건너온 후 다시 헤엄을 쳐 읍도로 가 배를 직접 끌고 왔다”고 한다. 그는 이어 “물이 많이 나는 8~9 물때면 연도와 도선리 사이가 불과 100~150여m밖에 되지 않아 헤엄을 쳐서 종종 섬을 오가곤 했다”며 옛추억을 더듬는다.

    때묻지 않은 섬사람들의 순박함과 훈훈한 정을 느낀 하루, 돌아오는 배편에서 만남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한다.

    ☞가는 길

    읍도와 연도는 육지에서 가까운 섬이지만 섬을 오가는 배편이 없다. 때문에 도산면 오륜리 마상촌 마을 선착장에서 읍도 마을 이장(김정문 011-9533-2611)의 배편을 이용해야 한다. 배편 이용료는 왕복 5만원 정도.

    ☞잠잘 곳

    읍도마을에는 민박집이 따로 없다. 대신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해 민박집으로 사용하고 있다. 깔끔하게 정돈된 마을회관과 오래된 당산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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