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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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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비경 환상의 섬 (23) 통영 수도

‘섬마을 인심’ 벗 만난 듯 반겨주고
‘바다호텔’은 낚시꾼들의 낭만 쉼터

  • 기사입력 : 2010-06-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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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도 새바지 마을은 언덕길을 따라 집들이 이어져 있다. 마을 주민이(가운데) 손을 흔들어 반긴다./이준희기자/

    통영시 용남면에 위치한 ‘수도’.

    “수도 물맛이 끝내 준다카이, 오데 가서 이 물을 맛볼 수 있겠노…!”

    ‘수도’(水島)는 말 그대로 ‘물섬’이다.

    섬은 산이 높지 않고 나무가 많지 않아도 땅 속에서 물이 ‘펑펑’ 솟는다.

    섬의 정상 부근에 샘이 하나 있어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마르지 않는다 하여 이름 붙여진 섬 ‘수도’(41만2184㎡·30명 15가구).

    지도(紙島)와 어의도(於義島) 사이의 중간에 위치한 수도는 행정구역상 통영시 용남면에 속하지만 섬사람들의 생활은 대부분 거제에서 이뤄진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이름 지어진 ‘수도’는 갈바람(서풍)의 이름을 딴 ‘갈바지’(서부), 샛바람(동풍)의 이름을 딴 ‘새바지’(동부), 그리고 마을에 오래된 큰 귀목나무가 있어 이름 붙여진 ‘귀목지’ 마을이 있다.

    섬은 용남면 내포마을에서 뱃길로 20여 분 거리에 있지만 오가는 배가 없어 거제 성포항에서 하루 2번(오전 7시30분·오후 3시 30분) 섬을 오가는 객선을 이용해야 한다.

    임시 배편을 이용해 찾은 수도 귀목지 마을엔 사람 사는 정겨움이 묻어난다. 배가 부둣가 선착장에 닿자 섬주민들은 마치 오랜 벗을 만난 듯 외지인의 방문을 반긴다.

    오랜 섬생활에 사람이 그리워서일까? 마을 앞 정자에 앉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날도 더운데 퍼뜩 그늘로 오이소!”라며 손짓한다. 30~40년 전만 하더라도 40여 가구, 200여 명의 주민들이 살았을 정도로 붐볐던 작은 섬마을은 다른 섬과 마찬가지로 이제 나이 든 노인들만 남아 고향을 지키고 있다.

    마을 앞 정자에 모인 주민들.

    한 달 만에 섬을 찾은 수협 기름배. 어민들이 드럼통에 기름을 채우고 있다.

    마침 마을 선착장에는 수협에서 섬지역 어민들을 위해 운영하는 기름배(통영호)가 한 달 만에 섬을 찾아 어민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욕 봅니다…, 어서 오이소.” 섬사람들이 건네는 정겨운 인사에 수협 직원들은 고단함을 잊는다.

    “수협에서 기름배를 운영 안하면 어민들이 직접 수협에 가서 기름을 타야 하는 기라. 얼마나 번거럽노. 근데 수협이 이래 기름을 섬까지 직접 갖다주니 얼마나 좋노. 우리는 기름통하고 돈만 준비하모 되는기라….” 큰 드럼통에 기름을 채우는 빈충도(61)씨는 기름배가 어민들의 발 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민들의 표정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한 드럼(200ℓ)에 14만3110원하는 기름값이 너무 비싸 어민들의 고민이 크다.

    어민들은 요즘 고기가 잡히질 않아 기름값도 못하고 돌아올 때가 부지기수인데…, 기름값은 계속 치솟아 정말 죽을 맛이란다.

    빈씨는 “예전엔 봄에는 도다리, 노래미, 겨울엔 대구 등 수도 앞바다에 고기들이 넘쳤는데, 요즘엔 고기가 통 잡히질 않는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마을 정자 아래서 이런 저런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할머니들의 푸근한 모습에 발걸음이 저절로 포구나무 아래로 향한다.

    마을 정자 옆 우물.

    그런데 정말 수도에 물이 많긴 많은가 보다. 정자 옆 포구나무 아래 우물이 두 곳이나 있다.

    할머니들은 “지금은 마을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포구나무 아래 우물은 오랜 세월 주민들과 함께한 ‘생명수’였다”고 한다. 당시 윗우물은 식수로, 아래우물은 주민들이 채소, 빨래 등을 씻는데 사용하는 허드렛물을 긷던 곳이란다.

    빈씨는 “수도에 물이 많은 것은 거제 계룡산과 고성 거류산의 물줄기가 섬을 통과하면서 물이 많다고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며 “저기 보이는 칠부 능선의 오동나무까지는 아무 곳을 파도 물이 솟는다”고 말한다.

    수도는 물이 풍족해 예전에는 농사도 많이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섬을 버리고 떠나면서 소를 키울 사람도 없고, 논밭을 일궈 나갈 젊은이들도 사라져 농사를 포기했단다. 

    수도 마을 어촌계에서 운영 중인 ‘바다호텔’. 뒤편에 어의도가 보인다.

    대신 마을 앞바다에 지난해부터 해상콘도(바다호텔)를 들였다. 20여 명이 한꺼번에 잠을 잘 수 있는 해상콘도는 지난해 1기, 올해 2기를 들여 총 3기가 마을 앞바다에 떠 있다. 그늘막에 오색으로 단장한 해상콘도는 수도마을 어촌계에서 운영하며 수익금은 마을발전자금으로 사용한단다. 해상콘도에서 하룻밤을 묵는 데 10만원이면 그렇게 비싼 편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섬을 오가는 배편이 없어 손님들을 뭍에서 데려오고 데려다주는데 10만원의 경비가 추가 소요돼 하룻밤을 묵는 데 총 20만원 상당의 경비가 드는 셈이다.

    마을 주민들은 바다 위 해상콘도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도다리, 노래미, 장어 등 다양한 어종의 고기도 낚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밤바다의 아름다운 풍경도 즐길 수 있어 더없이 낭만적이라고 말한다.

    빈씨는 “고기 한 마리 잡힐란가 이제 바다로 나가 봐야것다” 며 발걸음을 뱃머리로 돌린다. 그의 손에 고기를 담을 빈 들통이 들려 있다. 하지만 돌아올 땐 들통에 고기들로 퍼득거릴지 ….

    15년여 전 폐교된 지도국민학교 수도분교로 가는 길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낙엽이 수북이 쌓였다.

    우거진 대나무숲과 풀숲을 지나 왼쪽으로 접어드니 어두컴컴한 대나무숲 사이로 교문이 드러난다.

    오래 전엔 분교 운동장에 40여 명의 아이들이 뛰어 놀았다는데…. 지금은 교문 앞 기둥과 녹슨 그네, 부서진 철봉만이 남아 이곳이 학교였음을 알려 줄 뿐이다. 폐교된 학교를 나와 계속 언덕을 따라 재를 넘으면 갈바지로 가는 길이다. 하지만 풀숲에 가려 고갯길을 찾을 수가 없다. 섬에 사람들이 많았을 때는 갈바지로 가는 온전한 산길이 있었으나 사람들이 떠나면서 풀숲이 길을 막아 갈바지 사람들은 배를 이용해 마을을 오간단다.

    다시 마을로 내려와 마을 언덕의 예배당(수도교회) 앞 계단을 따라 재를 넘는 새바지 마을로 향한다. 전날 내린 비 때문인지 산길이 미끄럽다. 대나무숲이 우거진 길을 지나자 이내 새바지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경사진 언덕 아래로 유자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새바지 마을 고개 정상에 서니 뿌연 운무 사이로 거제 가조도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섬은 너무도 거대해 연륙교만 없으면 마치 육지 같은 느낌이다.

    새바지 마을의 한 집에 핀 연꽃

    언덕길을 내려 서니 마을 초입의 연꽃을 키우는 집이 이채롭다. ‘섬에 웬 연꽃?’ 궁금한 마음에 대문조차 없는 마당 안으로 들어서자 주인은 간데없고 수십 개의 연꽃 화분만이 햇살에 반짝거리고 있다. ‘이 많은 연꽃을 어디에 쓰려는 걸까.’ 묻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지만 답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모두들 바다로 나간 걸까, 마을엔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

    연꽃집 맞은편에는 섬에서 가장 오래된 샘이 있다. 작지만 족히 100년은 된 듯한 우물은 모래 사이로 맑은 물이 샘솟아 도랑으로 물이 흘러 넘친다. 그 물맛이 어찌나 달고 맛있는지…, 기가 막힌다. 어디서 이런 물이 솟을까?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랫집은 커다란 대문 대신 그물로 얼기설기 엮은 그물대문이 집주인을 기다리고 서 있다.

    청명한 푸른 하늘과 맑은 바다, 그리고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은 한 편의 그림 같다.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다. 새바지에서 다시 재를 넘어 귀목지 마을로 돌아오자 마을 주민들이 포구나무 아래 정자에 모여 정담을 나누고 있다.

    할머니들은 “마을 구경 잘했소. 이젠 고만 돌아보고 이리로 오소”라며 손을 잡아 끈다.

    주민 빈충도씨가 잡은 볼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할머니가 손수 끓인 커피 한 잔과 강정 등을 먹으며 땀을 식히고 있을 무렵 1시간여 전에 바다에 나갔던 빈씨의 배가 돌아왔다. 근데 손에 든 것은 도다리 몇 마리와 큰 볼락 한 마리가 전부다.

    “고기가 통 안 잡히네요. 인건비는 고사하고 기름값도 안 나오니… 허허”라며 쓴웃음을 짖는다.

    섬주민들의 바람은 사람들이 찾는 섬마을을 만들어 사람 냄새가 피어났으면 하는 것이다. 부속 섬인 초아섬을 돌아 저 멀리 가조연륙교를 바라보며 돌아오는 배편에서 섬사람들의 소박한 꿈을 되새겨 본다.

    ☞가는 길

    수도는 행정구역상은 통영이지만 배편은 거제시 사등면 성포항에서 하루 2차례(오전 7시30분·오후 3시30분) 섬을 오가는 객선을 이용해야 한다.

    ☞잠잘 곳

    섬에는 따로 민박집이 없고 대신 해상콘도 3기가 있다. 또한 최근 지어진 마을회관이 있어 인심 좋은 마을 이장(조학범 ☏010-8980- 2934)에게 부탁하면 하룻밤 묵을 수 있다.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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