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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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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비경 환상의 섬 (24) 통영 비산도

한적한 섬마을 언덕배기엔 밭이랑 물결치고…
뒷등 너머 물 빠진 바닷가엔 조개 캐는 손길 바쁘네

  • 기사입력 : 2010-06-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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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산물이 풍부한 비산도 앞바다. 저 멀리 한산도가 보인다.

    어민들이 섬 앞 멍게양식장에서 멍게를 털고 있다.

    섬의 형상이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바다에 앉았다가 날개를 퍼덕이며 비스듬히 날아오르는 것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섬 ‘비산도’(飛山島·13만8778㎡·25명 15가구).

    일명 ‘비생이’라 불리는 섬은 최고 높은 지점이 60m가 채 안 되는 야트막한 구릉으로 이루어졌으며 마을을 중심으로 나지막한 평지가 있는 것이 전부인 작은 섬이다.

    한산면이 거제군에 속했던 시절, 비산도는 거제군 둔덕면 ‘을포’(乙浦)로 불렸으나 통영군에 편입되면서 통영시 한산면 염호리 비산도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산(山)이 날아가는(飛) 형세의 섬이라….’ 지명이 제법 그럴듯하다.

    한산도에서 임시 배편을 이용해 비산도로 향하는 뱃길은 아기자기한 섬들로 둘러싸여 조화롭기 그지없다.

    한려수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통영은 어디를 둘러봐도 맑고 청정한 푸른 바다와 신선한 해산물, 섬마을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이 찾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비산도는 참 아름답다. 구릉과 비탈진 언덕, 자그마한 포구…. 맞은편 섬 좌도와 송도에 가로막혀 본연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아도 섬은 가까워질수록 숨겨진 비경을 그대로 드러낸다.

    마을 앞 방파제 뗏목에서 낚시를 즐기던 젊은이는 낯선 이의 방문이 어색한지 힐끗 쳐다본 후 아무 말 없이 바다에 던진 찌만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인사를 건네자 그제서야 반갑게 “어디서 오셨능교…”라며 말문을 연다.

    그물망에는 감성돔, 도다리, 노래미 등 씨알 좋은 놈들이 서너 마리 잡혀 있다. 비산도 출신 박양호(44)씨. 20대 젊은 시절을 이곳에서 보낸 후 직장을 찾아 섬을 떠난 그는 부모님이 살고 있는 섬을 한 달에 한 번꼴로 찾는다. 그래서인지 섬에는 젊은 사람을 찾아 보기 어렵다. 가구 수는 많아도 실제 거주민은 4~5가구, 10여 명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섬 사람들 대부분 고구마, 마늘, 옥수수, 시금치 등 농사를 지으며 바다에서 생산되는 바지락, 굴 등을 캐 시장에 내다 판다. 특히 노란 고구마는 다른 섬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비산도에서만 생산되는 특산물이다.

    “욕지 고구마 맛있다카는데, 우리는 그냥 줘도 안 먹는다는 거 아닙니까. 다른 데서 온 고구마는 먹어 본께 싱급더라꼬….”

    박씨가 비산도 노란 고구마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다.

    겉과 속이 모두 노란 비산도 고구마는 삶았을 때 달짝지근하며 말랑말랑하고 물컹한 맛이 특징이다.

    또한 피부미용, 암예방, 변비 치료, 다이어트 등에 효과가 탁월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비산도 노란 고구마를 찾는 도시인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떠난 섬은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어 소량의 고구마만 생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산도 정태민 이장은 “지난해 나름 열심히 농사를 지어 70박스(20kg)가량을 주문 판매했다”며 “작황은 괜찮은 편이지만 농사를 지을 젊은이들이 없어 생산에 한계가 있다”며 섬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20여 년 전 비산도는 멍게 양식 등으로 부유하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살 만한 섬마을이었다. 하지만 인근에서 멍게 양식을 대규모로 시작하면서 멍게값이 ‘뚝’ 떨어진 데다 업자들의 횡포도 심해 멍게 양식을 접고 말았다. 지금은 어선 감척 사업 등으로 인해 섬의 교통수단인 배를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다.

    집 사이사이 골목을 지나 다시 하나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정든 고향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경사진 마을 언덕에 올라서니 한눈에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인다. 중간중간 빈집들이 눈에 띄어 안타까움을 주지만 어쩔 수 없이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하는 섬 사람들의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통영시 한산면 염호리 비산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경사진 언덕에서 마을 할머니가 고구마를 심기 위해 이랑을 손질하고 있다./이준희기자/

    바로 옆 경사진 언덕배기에서는 할머니 한 분이 한낮의 무더위도 잊은 채 열심히 밭을 일구고 있다. 송글송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허리를 펴는 할머니의 얼굴에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살며시 다가가 말을 건네자 할머니는 고구마를 심기 위해 미리 이랑을 정비하고 거름을 주고 있다고 답한다. 비탈진 밭에서 미끄러지지도 않고 걷는 할머니의 모습이 신기할 정도다. 하기야 평생을 오르내리셨으니 눈을 감고도 밭을 걸어 다니실 만도 하다.

    비산도는 다른 섬과 달리 학교가 없다. 그래서 섬 아이들은 본섬(한산도)의 학교를 오가며 공부를 해야만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룻배에 몸을 싣고 본섬 여차마을의 염호국민학교를 오갔다. 하지만 10여 년 전 섬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자연스레 나룻배도 사라지고 이제는 정기여객선이 하루 2차례 오간다.

    박씨는 “국민학교 3~4학년 때 수업을 마친 후 나룻배가 오지 않으면 책보따리를 머리에 끈으로 단단히 묶은 후 헤엄을 쳐서 건너다녔다”며 “물이 나면(썰물) 본섬과 비산도 치끝의 거리가 불과 70~80m에 불과했다”고 말하며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한다.

    물 빠진 바닷가에서 마을 할머니가 조개와 고둥을 캐고 있다.

    섬 뒷등 너머 물 빠진 바닷가에는 마을 할머니 3~4명이 조개와 고둥을 잡고 있다. 자연이 준 선물에 감사하며 생활하는 어민들은 욕심 내지 않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할머니들은 빈 통이 어느 정도 해산물로 채워지면 저녁거리 마련을 위해 집으로 향한다.

    섬으로 시집와 40여 년을 비산도에서 생활한 김구균 할머니(68).

    “24살에 뭍에서 섬으로 시집을 온께네 시댁 식구가 12명이라 처음엔 앞이 깜깜하더라꼬. 어린 시누이 새벽밥 해서 학교 보내야 하제. 시어른들 밥 준비해야 하제…. 할 일이 태산인기라! 그래도 지금은 세월이 좋아서 아무 걱정 없다케도….”

    할머니는 애달팠던 섬 생활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살며시 들려준다.

    우편집배원 강양식씨가 배를 이용해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다.

    섬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부둣가로 내려오니 마침 섬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는 우편집배원이 도착했다.

    우편집배원 강양식(55)씨. 7년째 비산도와 좌도 등 인근 섬을 돌며 섬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고 있다.

    그런데 흔히 육지에서 보던 눈에 익은 우편집배원의 풍경이 아니다. 우편집배원은 자전거나 오토바이 대신 큰 배를 이용해 섬을 오가고 있다.

    배 안의 물간에는 물고기 대신 우편물로 가득하다. 오전 11시께 본섬(한산도) 우체국 우편물을 수령한 후 섬을 모두 돌고 나면 오후 3~4시 다시 본섬으로 귀항한다.

    강씨는 “예전엔 이틀에 한 번꼴로 섬을 찾았는데 요즘엔 택배물이 늘어 하루에 한 번씩 꼭 섬을 찾는다”며 “섬지역 특성상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태풍 등 날씨로 인해 우편물을 배달하지 못할 때가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비산도의 정겨운 풍경들을 한가득 가슴에 담아 돌아오는 길, 뱃전에서 행복감이 밀려온다.

    비산도 뱃길에 있는 ‘상여섬’. 아름다운 효자 어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

    ■ ‘상여섬’의 아름다운 전설

    비산도로 향하는 뱃길에서 유독 작은 섬 하나가 눈에 띈다. 소나무가 듬성듬성 솟은 모습은 마치 연꽃을 바다 위에 둥둥 띄워 놓은 듯한 모습이다.

    ‘상여섬’(생이섬)이다. 임시 배편의 백 선장은 뱃전에서 ‘상여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병든 어머님이 돌아가셨지만 너무 가난해 장례마저 치를 수 없게 된 효자 어부가 ‘꽃상여로 어머니를 보낼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며 눈물과 한숨으로 한탄하고 있을 때 난데없이 바다에서 섬 하나가 둥둥 떠오르더니 작은 바위들은 푸른 소나무로 변했고, 소나무 위에 백로떼가 날아와 아름다운 하얀 꽃이 되었다고 한다. 백로떼가 슬프게 울부짖는 소리와 파도소리가 어우러져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였다고 한다.

    어부가 섬을 상여 삼아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자 마을 사람들은 “효자는 하늘도 알아보는구나. 어머니를 지극히 모시니 하늘이 꽃상여를 보내주는 것이겠지”라며 입을 모아 감탄했다고 한다.

    지금도 어민들은 잔잔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상여섬을 보며 어부의 효성을 되새긴다고 한다.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일화(逸話)지만 ‘지극한 효심에는 하늘도 감동한다’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 가는 길

    비산도는 한산도와 지척에 있지만 배편은 하루 두 편밖에 운항하지 않는다.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오전 7시, 오후 2시 섬을 오가는 여객선(섬누리호)를 이용하면 된다.

    ☞ 잠잘 곳

    비산도는 민박집이 따로 없다. 하지만 인심 좋은 마을 이장(정태민 ☏017-873-3983)에게 부탁하면 마을회관 등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다.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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