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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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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술에 반하다 ⑥ 의령 구아바주

지역 특산물과 180일의 시간이 빚어낸 약주

  • 기사입력 : 2010-07-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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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병찬 사장이 구아바 약주를 담그기 위해 고두밥에 누룩을 붓고 있다. 앞쪽에 보이는 것이 구아바 잎이다.

    전통주는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신토불이 우리 농산물로 만들어져 저마다 특색 있는 맛과 향, 품질까지 갖추고 있다.

    신이 내린 신비한 식물이라는 뜻을 가진 구아바, 아직 우리에게 다소 낯선 이 과일의 고향은 동남아메리카 열대지방이다. 열매는 물론 잎과 나무껍질 등이 다양하게 활용되는 이 식물은 병충해가 거의 없어 무농약으로 재배하는 친환경적인 작물로 알려져 있다.

    농산물 브랜드 ‘토요愛’로 이름난 의령군은 이 식물을 들여와 특산물로 재배해오고 있다. 오늘 소개할 전통주의 재료가 바로 구아바다. 보통 술은 과일 열매로 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에 만나볼 구아바주는 열매 대신 구아바 잎을 주원료로 한다. 구아바 잎은 당뇨병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의령에서 생산되는 구아바주는 고두밥과 누룩에 구아바 잎을 더해 빚어내는 주도 13%의 약주다. 이름은 ‘백년사랑’이다.

    산딸기 와인이나 유자주, 포도주 등은 열매를 먹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떤 맛이 날 것 같다는 상상을 하지만, 구아바잎은 어떤 맛과 향이 날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궁금증을 잔뜩 안고 의령군 화정면 상정리로 향했다.

    상정리 농협 옆으로 난 작은 골목 안에 화정양조장 ‘조씨술도가’라고 쓰여진 소박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조씨술도가의 사장 조병찬씨의 안내로 주조실로 향했다. 주조실 안에는 10개 정도의 스테인리스 통이 놓여져 있고 선풍기가 열심히 회전하고 있다. 일종의 온도 조절용이다. 여러 개의 통에는 숙성 정도가 다른 구아바 약주와 구아바 생탁 등이 익어가고 있다.

    비닐을 뒤집어 쓰고 자체 숙성 중인 술의 속이 궁금해 눈을 크게 뜨고 내부를 살폈다. 맑은 황갈빛 약주 속에 구아바 잎이 동동 떠있다.

    구아바 약주를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고 싶어 조씨를 재촉한다. 일단 고슬고슬한 고두밥을 쪄내 식혀둔다. 조씨는 100% 쌀을 이용하는데, 특히 조씨의 어머니가 직접 농사 지은 의령 쌀이다.

    미리 물에 녹여 두었던 누룩과 고두밥을 함께 독특하게 만들어진 거름장치 옆에 놓는다. 고두밥이 담긴 그릇을 맨 아래 깔고 사다리 모양을 닮은 받침대를 올린다. 그 위에는 손잡이가 사라져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솥뚜껑이 거꾸로 놓이고, 매우 촘촘한 체를 마지막에 앉히면 준비 완료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60년 묵은 체다. 외조부 때부터 썼다는 이 체는 굉장히 촘촘해서 거르는데 시간은 매우 많이 걸리지만 그럴수록 술맛은 더욱 좋아진단다. 굳이 시간이 더 걸리는 매우 미세하고 촘촘한 체를 사용하는 이유는 누룩찌꺼기는 최대한 거르되, 누룩 성분은 쏙쏙 빼내기 위해서다.

    사용할 체를 옆에 있던 다른 체와 비교해 보여 주던 조씨는 “거름체에 따라서도 술맛 차이가 납니다. 촘촘함의 차이는 술에 들어가는 누룩의 농도 차이가 되고 그것은 술맛의 차이로 이어지는거죠”라고 설명했다.

    구아바 약주는 오랜 시간 숙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누룩 냄새가 술맛에 끼칠 영향을 미리 차단하는 방법이다. 누룩 찌꺼기가 들어간 술은 텁텁해져 맛이 없어진다고 한다.

    누룩을 체에 부어 곱게 걸러낸다. 약간의 물을 부어가며 누룩의 성분을 뽑아내고 누룩 찌꺼기는 따로 분리해 버린다.

    누룩액과 섞인 고두밥에 구아바 잎을 넣을 차례다. 구아바 잎은 혈액순환과 당뇨병에 효과가 있다. 잎은 가을철에 따는데 말린 상태로 보관해 술, 차를 만든다. 새순이 아니라 아래쪽에 있는 오래 묵은 잎을 따야 한단다.

    고두밥 대비 10%의 잘 말린 구아바 잎을 더한다. 그런 다음 고두밥과 누룩액, 구아바 잎이 잘 섞이도록 손으로 버무려준다. 이제 술맛을 내는 것은 시간이다.

    쌀과 누룩, 구아바 잎을 섞는 것은 비교적 간단했지만 구아바 약주를 담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숙성기간과 숙성조건이다.

    구아바 약주는 품온(술 내부의 온도) 27℃를 넘지 않은 상태에서 약 180일 동안 서서히 숙성되는 과정을 거친다. 온도 유지가 중요하므로 수시로 온도계 체크는 필수다.

    완성된 구아바 약주를 병에 담을 시간. 투명한 병에 담겨 세상에 나오는 구아바 약주는 맑은 황색이다. 담가둔 지 180일 갓 지났다는 통에서 약주를 떠 체에 거른다. 옆에 서 있다가 한 입 맛본 구아바 약주 맛은 색달랐다. 일단 구아바 약주만이 가진 향기에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혔다. 향긋하게 코끝을 유혹하는 구아바 약주의 냄새는 구아바 잎의 향기라기보다는 숙성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한 모금 입에 물고 음미해보자니,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흡사 이름 모를 주스를 마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목 넘김 또한 매우 부드러워 술 같지 않은 술이지만, 13%의 주도가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구아바 약주는 오래 숙성될수록 부드러워지고, 저온숙성하면 맛은 더 좋아진다고 한다. 마실 때에도 차갑게 냉장보관해서 먹을 것을 권했다.

    구아바 약주의 원료인 구아바 잎은 구아바 생탁으로도 생산된다. 앞서 구아바 약주와 같은 과정을 거쳐 15일간 숙성시키면 구아바 생탁이 되는데, 숙성 중인 구아바 생탁을 보니 뽀얗고 부드러운 거품으로 뒤덮인 표면에 구아바 잎이 드문드문 올라와 있었다. 구아바 생탁은 쌀을 갈아넣는 방법으로 만들어지는데 알코올 7%를 함유하고 있고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당분으로 달달하면서 부드럽고 깔끔한 맛이 난다.

    의령을 대표하는 전통주, 구아바 약주 ‘백년사랑’은 양조장의 역사에 구아바 약주가 오래도록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해져서 탄생했다.

    앞서 조씨의 외조부가 같은 마을에서 양조장을 운영했다고 한다. 외조부가 하던 양조장을 그의 어머니가 이어받았고 이제 조씨가 어머니와 함께 조씨술도가의 명맥을 지켜가고 있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술도가를 그대로 잃기는 너무 아까웠던 것이다.

    “조그마한 양조장을 남들은 별 거 아니라고 해도 나름대로 역사를 가진 이 양조장을 이대로 끝내버리기는 너무 아쉬웠어요. 어머니가 더 나이 드시면 명맥이 끊기고 말 상황이니 내가 직접 해보자는 결심을 했어요. 지난 2000년부터 술에 대한 공부를 시작해 다양한 술을 빚어 왔고, 이렇게 구아바주까지 담게 된 거죠.”

    조병찬 사장이 발효중인 구아바 약주의 온도를 측정하고 있다.

    구아바 잎.

    술을 만드는 것이 조씨의 본래 직업은 아니다. 그는 의령군 소속 기능직 공무원인데, 단지 술을 만드는 것이 좋아 어머니의 일손을 돕다가 결국 직접 나서게 됐다. 주중에는 업무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에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양조장이 바쁘게 돌아간다. 이렇게 만들어 내는 술이 연간 2t가량 된다.

    다양한 재료로 술을 담그고 새로운 술을 만들어보는 주조 과정이 참 재미있다고 이야기하는 조씨는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좋아하던 술을 끊었지만 술에 대한 강한 열정으로 주지 유지를 맡고 있다.

    조씨가 구석에 있는 통을 벗기고 향기를 맡아 보라고 했다. “이게 민들레 약준데요. 향기 어때요? 너무 향기롭고 좋죠?”

    자신이 새롭게 만들어 낸 민들레주를 자랑하고 싶었단다. 민들레가 통째로 들어가 숙성되고 있는 민들레주는 추석이 되면 특유의 향긋한 향미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다양한 약주 만들기에 도전하며 술에 대한 열정을 키워가고 있는 그는 “처음에 구아바 약주와 구아바 생탁 담는 법을 배울 때는 일주일에 믹서기를 3~4개씩 부숴 먹었다”며 “쌀 100% 술을 만들기 위해 쌀을 갈고 갈고 또 갈다 보니 믹서기 모터가 남아나질 않았는데 그 덕분에 지금은 나름의 방법을 터득했다”고 말했다.

    조씨의 술은 시간에 맞춰 소량으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대량 유통은 먼 이야기다. 주로 그때 그때 전화로 주문을 받는다. 700㎖ 1병당 가격은 1만원으로 의령군내에 있는 하나로마트와 인근에 있는 골프장에서는 구아바 약주를 맛볼 수 있다.

    “의령에 술도가가 5곳 있는데 제각각 맛의 특성이 있으니 꼭 우리 술이 아니더라도 우리 지역 전통주 많이 사랑해 주세요! 물량 공세나 자본력으로 얻는 명성을 원하지 않아요. 제 꿈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을 타고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먼저 찾는 유명한 전통주를 만드는 겁니다.”

    글=김희진기자 likesky7@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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