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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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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비경 환상의 섬 (33) 거제 칠천도

칠천량 바다엔 ‘거북선’이 잠들고
아담한 해수욕장은 마을을 보듬고

  • 기사입력 : 2010-08-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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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천연륙교에서 바라본 칠천도 앞바다./이준희기자/

    칠천연륙교.

    거제도에 속한 66개(유인도 10개, 무인도 56개)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인 칠천도(七川島·904만5490㎡·602가구 1272명).

    ‘칠천도 처녀들은 시집갈 때까지 쌀 3말을 먹지 못하고 간다’는 옛말이 전해질 정도로 논보다 밭이 많은 섬이기도 하다.

    인근 가조도와 마찬가지로 섬 중앙에 우뚝 솟은 옥녀봉(232.2m)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된 칠천도는 어온리의 장곶·어온·물안 마을과 대곡리의 대곡·송포·황덕 마을, 연구리의 연구·곡촌·금곡·옥계 마을 등 3개 리 10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칠천도는 ‘사자가 북쪽을 향해 포효하며 새끼를 낳는 형상’이라는데, 덕만이 치가 사자머리가 되고 수야방 섬과 어온 용바위 끝이 앞발, 연구리 내질등과 조골마을 둥칠 끝이 뒷발에 해당된다. 씨릉 섬은 꼬리, 금곡의 화전산이 새끼를 출산하고 있는 모습이란다.

    ‘칠천도(漆川島)’라는 지명은 고려 성종 2년 칠천도와 가조도에 진주감목관 소관의 목장을 설치해 검은 소(黑牛)와 적마(赤馬)를 방목케 했다는 ‘거제부읍지’의 기록으로 미뤄 칠천도 옥녀봉을 중심으로 검은 소 방목이 옻 칠(漆)과 같고, 그 소떼의 식수원인 7개의 소하천을 상징해 칠천(漆川)이라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일제시대 칠천도에 대한 세부 측량이 이뤄지면서 칠천도의 옻 칠(漆)을 속자인 옻 칠(柒)로 또 약자로 일곱 칠(七)을 표기하면서 일제가 칠천(七川)으로 변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칠천량해전을 소개하는 기념비.

    칠천도 앞바다인 ‘칠천량’ 해협은 임진왜란 당시 원균이 이끈 조선 함대가 칠천량 앞바다에서 일본 수군에게 대패한 조선 수군 최대의 패전지이기도 하다.

    선조 30년(1597) 원균은 함대 170여 척을 이끌고 왜군의 함대 600여 척과 10일간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이 싸움에서 조선 수군은 거북선·판옥선 등 150여 척이 격침되고 1만여 명이 목숨을 잃는 참패를 당했다. 이 패배로 남해안의 제해권을 일본에 빼앗긴 조선은 합천 초계의 권율 도원수 휘하에서 백의종군하던 충무공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해 제해권을 회복토록 하였다.

    2000년 1월 칠천도와 거제 하청면 실전리를 연결하는 ‘칠천연륙교’가 3년 만에 완공되면서 이제는 섬이 아닌 섬이 되어 버린 ‘칠천도’.

    칠천연륙교 전망대에서 바라본 칠천량 앞바다의 거센 물줄기는 슬픈 역사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없이 흘러가고 있다.

    칠천연륙교를 건너면 제일 먼저 만나는 마을이 장곶(長串)마을이다. 칠천도의 관문 격인 장곶 마을은 연륙교가 가설되기 전 칠천도 사람들이 뭍으로 나오는 유일한 통로였다. 이곳 나루터에서 노젓는 배를 타고 본섬(거제도)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러다 일제시대 통통배를, 이후 차도선을 이용해 섬주민들은 건너다녔다. 예전 나루터에는 주막집이 서너 곳 있어 섬사람들이 허기진 배를 막걸리 한 잔으로 채우며 배를 기다렸다고 한다. 

    용의치(오른쪽)와 매미섬

    장곶마을 앞바다에는 작은 여(礖)와 등대가 있는데 이 여를 섬사람들은 ‘용의치’라고 부르고, 등대가 있는 여를 ‘매미섬’이라 부른다.

    ‘용의치’와 ‘매미섬’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져 오는데 아주 먼 옛날 천년 된 용과 매미가 바다에서 하늘로 승천하기 위해 싸움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 광경을 지켜본 마을 사람들이 기겁을 하여 방문을 잠그고 떨었는데 싸움이 여러날 지속되자 한 여인이 부둣가에 나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자 부정을 탄 용과 매미가 승천을 하지 못하고 바다에 떨어져 섬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인은 그 자리에서 돌부처로 변했다고 한다.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용과 매미는 그 한을 풀지 못해 날씨가 흐린 날이면 바다 위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산더미 같은 파도를 일으켰다고 전한다.

    장곶마을에서 길은 양쪽으로 나눠진다. 오른쪽은 물안, 대곡 마을로 이어지고 왼쪽은 옥계, 금곡을 경유, 회주하는 길이다. 예전 칠천도 회주도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연구, 황포, 대곡, 송포마을 사람들은 옥녀봉 고개를 넘어 장곶 나루터에서 배를 탔다고 한다.

    장곶마을 고개를 넘어서면 어온(於溫)마을이다. 어촌 풍경이 정겨운 어온마을과 조골마을을 지나면 섬에서 유일한 해수욕장인 물안(옆개)해수욕장이 있는 물안마을에 이른다. 산으로 감싼 듯 움푹한 곳에 자리잡은 물안마을은 산의 생김새가 여인이 베틀에서 베를 짜는 형상이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바다 건너 장목항에서 바라본 물안마을의 산새는 여인의 음부에 마을이 앉은 꼴이다”고 설명한다. 마을 주민 김영수(75)씨는 “그래서인지 예부터 마을 여인들의 기(氣)가 세고 목소리가 높다’고 귀띔한다.

    푸른 소나무와 파란하늘, 잔잔한 바다와 고운 모래가 인상적인 물안해수욕장.

    물안마을 고개 너머의 물안해수욕장은 아담한 모양이 인상적이다. 휴가철이 지나면서 해수욕장은 한적한 편이다.

    진해만과 장목만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물안해수욕장은 수심이 얕고 파도가 없어 가족 단위의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여기에 얕은 모래에서 바지락도 캘 수 있어 해수욕객들이 일석이조로 피서를 즐길 수 있는 셈이다.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모래성을 쌓는 천진난만한 모습에 한낮의 무더위를 잠시 잊는다. 섬 마을은 바로바로 이어져 회주도로를 따라 조금만 가면 대곡마을과 송포마을이 나온다. 대곡마을 이르기 전 오른편에 위치한 송포마을은 섬 내만에 깊숙이 자리 잡아 천혜의 요새를 이루고 있다.

    칠천도 앞바다는 조류가 세고 물길이 험하다. 그러나 바다가 육지로 깊숙이 들어선 만(灣)이 잘 발달해 양식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칠천도 앞바다는 물고기들의 천혜의 보금자리 역할을 한다. 봄이 되면 감성돔을 비롯한 수많은 물고기들의 산란장이 되며, 여름에는 어린 물고기들의 놀이터가 되고 가을엔 길 떠날 채비를 하는 물고기들의 정거장이 되어 준다.

    부산대학병원 연수원으로 사용 중인 폐교된 칠천초등학교.

    칠천도에서 가장 큰마을이란 뜻으로 이름 붙여진 ‘대곡(大谷)마을’은 옥녀봉 서북단 바닷가 협곡에 자리 잡아 문등산이 오른쪽으로 감아 있고 말굽부리 능선이 연구마을을 경계로 감싸고 있다. 마을 아래에는 1994년 폐교된 칠천초등학교가 있다. 지금은 부산대학병원 연수원으로 변했지만 1941년 5월 문을 연 칠천초등학교는 1885명의 학생을 배출했다는 교적비가 교문 앞에 세워져 있다.

    대곡마을은 산신령의 도움으로 신기한 침(鍼)을 얻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고 어려운 사람을 구제한 신침(神鍼)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대곡마을 깊숙이 자리 잡은 황덕(黃德)마을은 칠천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5분가량 건너야 갈 수 있는 섬 속의 섬이다. 황덕도는 자그마한 섬이지만 안몰, 새지, 지부리 등 3개 자연마을이 있을 정도로 섬주민이 꽤 살고 있는 편이다. 황덕도는 섬에 나무가 없을 때 누런 황토 땅이었기에 누능섬(누른섬)이라 불렀고 한때는 100살 이상의 노인들이 많아 장수섬 또는 노인덕도(老人德島)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 앞 주민에게 섬을 오가는 배편을 물으니 배는 수시로 운행되며 황덕도에 속한 고다리마을에서 도선장에게 전화를 하면 태우러 온다고 설명한다.

    거북이가 연꽃을 물고 있는 형상인 ‘연구(蓮龜)마을’을 지나면 칠천도에서 가장 작은 마을인 ‘곡촌(谷村)마을’에 이른다. 곡촌마을은 옥녀봉을 배경으로 남서쪽으로 자리 잡고 있는 좁은 골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골에’란 지명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금곡(琴谷)마을’이란 지명은 옥녀봉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하늘에 있는 옥황상제의 딸이 죄를 짓고 땅에 내려와 옥녀봉으로 변했다고 한다. 옥녀봉에는 옥녀와 신선이 놀던 놀이터, 거문고를 타던 거문고등, 활량바위, 옥녀샘 등이 있다고 전한다.

    칠천출장소가 있는 옥계마을은 옥녀봉의 전설이 전해지는 옥녀의 머리에 꽂는 비녀가 마을 동쪽 바닷가로 내려와 있는 형상인데 이 등을 옥녀 비녀등이라 부른다. 옥계란 옥녀 비녀등의 옥(玉)자와 비녀 계자를 따서 불렸다고 한다.

    옥계마을과 장곶마을 사이의 바다에 북같이 생긴 ‘북섬’과 거문고같이 생긴 ‘씨렁섬’이 있는데 이 역시 옥녀봉의 옥녀와 관련된 재미난 전설이 전해진다.

    하늘에서 내려온 옥녀는 세월을 보내기 위해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고 용왕신은 북을 치며 함께 즐거워하였다고 한다. 옥녀의 거문고 소리가 ‘씨렁~ 씨렁~’ 소리를 낸다 하여 ‘씨렁섬’이 되었고, 용신이 북을 쳤다고 하여 ‘북섬’이 되었다고 전한다.

    칠천도 회주도로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40여분, 거리는 20km가량이다. 하지만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보려면 2시간은 족히 잡아야 칠천도의 아름다운 비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는 길= 신거제대교에서 신현 방면으로 가다 연초삼거리에서 좌회전해 하청면 실전에서 칠천연륙교로 가면 된다.

    ☞잠잘 곳= 칠천도에는 바다와 등대 ☏ 243-0678, 칠천도 펜션 ☏ 633-9015, 해뜨는 집 ☏010-5108-2807, 칠천도 해변민박 ☏ 010-3590-1420, 물안어촌민박 ☏ 010-4710-9067 등 다양한 펜션과 민박시설이 있어 휴양객들이 편히 쉴 수 있다.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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