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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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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을 말한다 (18) 연출가 문종근

“끝없이 투쟁하는 인간을 그리는 것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연출 목표”

  • 기사입력 : 2010-09-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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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넨 나를 죽이려 했지만 결국 자네의 두 눈을 찌르고 말았어. 세상 이치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난 바로 자네일세. 자넨 자네의 추악한 부분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어. 그러나 이젠 보았겠지. 자네의 다른 한 부분이 얼마나 추악했던가를. 결국 아름답고 고귀하고 깨끗한 것만 찾아 헤맨 자네의 동태 눈알이 자네 두 눈을 찌른 거고 자네 적개심이 바로 자네 마음을 찌른 거야. (중략) “본디 이 세상 모든 것은 미(美), 추(醜)란 없는 것이야. 그것을 자꾸만 추하다고 보는 자네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일세…” - 연극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의 망령의 대사 중 일부-

    1996년 광주문예회관에서 열린 제14회 전국연극제(6월 13~28일)에서 경남연극사상 최초로 최우수상인 대통령상과 연출상 수상한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이만희 작·문종근 연출·극단 마산).

    연극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는 경남 연극의 자존심을 회복시킨 작품이자, 연출가 문종근(47)의 인생을 반전시킨 역작이다.

    또한 서울 연극과 지방 연극의 괴리감을 해소시킨 작품이며, 경남 연극이 한국 연극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작업이었다.

    연출가 문종근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는 경남의 연극 수준이 전국에 내놓아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음을 확인시켜준 수작이었다”고 자평한다.

    한국 연극의 출발점이기도 한 경남은 그동안 전국연극제에 13회나 참가했지만 단 한 차례도 대상인 대통령상을 차지하지 못해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상태였다.

    문 연출은 작품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를 단순히 불교라는 종교적 소재에 머물지 않고 살아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탈바꿈시켰다.

    작품에서 인간이 가지는 내면세계와 외면세계의 모순점이 대립과 갈등을 통해, 어떻게 표출되고 그 과정에서 인간이 최선을 다하는 이미지를 그리려 했다는 문종근 연출가. 이런 결과로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는 자신이 추구하는 작품세계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경남 연극인들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연출해 냈다.

    “도법의 이중적인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무대장치, 음향, 조명은 물론 자그마한 소품에까지 하나하나 신경을 썼어요. 그리고 배우들의 독특한 캐릭터 구축은 물론이고요. 더욱이 배우들이 작품 속 인물들을 인간들의 군상과 삶을 생생하게 표현해 내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죠”

    경남 연극의 자존심과 새 지평을 연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는 한 인간의 자아와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다루고 있다.

    세속적 번뇌와 견성(見性·모든 망념과 미혹을 버리고 자기 본래의 성품인 자성을 깨달아 앎)의 과정을 극화한 불교극으로 인간의 본질적 고뇌에 접근한 작품이다. 깊이 있는 대사들은 문학적·철학적이고 전체적으로 조화가 뛰어나며 고고한 탈속의 세계가 아니라 속세와 연결된 번민 속에 따뜻한 휴머니티가 담겨 있다.

    ▲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공연 모습./경남신문 DB/

    ▲ ‘그것은 목탁…’ 배우들이 삭발식을 하고 있다./경남신문 DB/

    깊은 산속 사찰을 배경으로 승려들의 일상 생활과 인간적 방황을 진솔하게 그려내 공감대를 형성하고, 인간 내면 깊이 들어 있는 죄나 고통을 육화해 내적 갈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작품 속 주인공 도법스님은 전직 미대 교수이자 조각가이다. 그는 동네 깡패들에게 겁탈당한 아내에 대한 기억을 벗어버리기 위해 선방과 토굴을 전전하며 수행에만 전념하지만 분노와 불안을 떨쳐내지 못한다. 그러던 중 큰스님으로부터 봉국사의 불상을 제작하라는 명을 받게 되고 강한 집념으로 불상 제작에 들어간다. 3년이 지나 불상이 거의 완성될 무렵 난데없이 나타난 망령에 의해 불상이 부서지자 도법은 망령에 대한 증오심으로 격분한다. 도법은 망령과 치열한 다툼 끝에 조각칼로 자신의 두 눈을 찌르게 된다. 그 순간 그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 세상에 미(美), 추(醜)는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스스로가 그저 아름답거나 추하다고 보는 것이고 자신의 두 눈은 바로 그런 세속적인 미와 추의 한계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작품에서 연출가 문종근은 도법의 세계관을 이원구조로 설정한다. 하나는 번민하고 고뇌하는 자기 자신의 어둠, 혼돈의 세계와 또 다른 자기의 분신이 망령이라는 깨달음의 세계관을 강하게 충돌시켜 좌절하지 않고 투쟁해 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무대에 형상화시켰다.

    사실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는 95년도 무대화를 위해 준비한 작품이었지만 ‘도법’과 ‘망령’의 성격화 구축이라는 난제에 부딪히면서 포기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튼튼한 리얼리즘 구조로 연출가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을 요구하는 작품이었어요. 그리고 인간의 추구점이라는 주제를 밑바탕에 두고, 연극성의 원리와 다양성을 추구했지요. 꼭 해보고 싶었는데…. 망령의 성격화 작업에 어울리는 배우를 찾지 못해 결국 포기했어요”라며 지난날을 회상한다. 그러나 작품은 이듬해 송섭이라는 배우를 만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는 제작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작품 속 망령의 성격화 작업과 무대 세트의 디자인이었다고 한다.

    “절의 상징성과 절의 이미지 속에 나타나는 도법의 이중성이 세트 속에 묻어나야 했어요. 그런데 그런 이미지를 표현해 내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는 교육자이신 아버지로부터 ‘연극인의 삶’을 인정받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예술가의 삶이 힘들다는 걸 잘 알잖아요.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셨어요.”

    그리고 2008년 인천에서 열린 제26회 전국연극제에서 정조의 내면 세계를 그린 작품 ‘파란’으로 대통령상을 다시 수상하면서 연출가 문종근의 연극 인생이 절정기를 맞는다.

    연출가 문종근의 연극 인생은 1983년 11월 경남대 완월강당에서 경남대극예술연구회의 제14회 정기공연에 참가하면서 시작됐다.

    대학에 들어오면서 이데올로기와 민주화, 독재 등 낯선 세계를 체험하면서 자연스레 행동 예술을 찾게 됐고 경남대 극예술연구회에 가입했다.

    그러나 그는 첫 공연에서 연출가로부터 ‘사투리도 심하고 발음도 제대로 안 되고 너는 배우 안 되겠다’는 핀잔을 듣게 되면서 연출가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당시 연출 공부를 배울 곳이 없어 불어, 독어, 러시아 동부권의 논문과 이론서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하는 문 연출가.

    85년 3월, 그는 인생의 첫 연출작 ‘호모세파라투스’(분리된 사람들·이강백 작)를 경남대 완월강당 무대에 올리게 된다. 이데올로기 속에 쓰러져 가는 인간들을 다룬 실험극을 연출한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다양한 연극성의 실험을 경험하는 출발점이 됐다.

    2008년 제26회 전국연극제서 대통령상을 받은 ‘파란’.

    그는 요즘 뮤지컬 ‘삼월이 오면’에 흠뻑 취해 있다.

    지난해 3·15 기념사업회와 함께 일하게 되면서 우연히 구두닦이 ‘오성원’이란 인물에 대해 듣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구두닦이 오성원은 1960년 3·15의거에서 민주화를 외치다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숨진 여러 열사 중의 한 인물이다.

    “소외된 계층의 대표적 인물인 오성원은 짧은 삶을 살다 갔지만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좋은 소재가 되겠다고 생각했죠. 지역의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다고 판단한 거죠.”

    ‘오성원’이란 인물은 3·15기념사업회 백한기 회장을 만나면서 뮤지컬화 됐다. 그리고 3개월간의 연습을 거쳐 마산 3·15의거 50주년 기념공연으로 창작뮤지컬 ‘삼월이 오면’이 마산 3·15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에 올랐다. 경남에서 오리지널 시스템에 의해 처음 제작한 뮤지컬이 무대에 오르는 첫 순간이었다.

    연출가 문종근은 “자신에게 있어 연출의 핵심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인간을 바라보는 작품의 표현’이다”고 얘기한다.

    ‘인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는 인간은 완전한 듯하면서도 불완전한 존재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세계와 갈등하고, 그 상처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군상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속성’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처절한 아픔을 감내하며 끝없이 투쟁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 자신이 추구하는 연출이자 목표라고 힘주어 말한다.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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