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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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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매우 좋음’- 안순자(수필가)

  • 기사입력 : 2010-09-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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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컴퓨터 프린트기를 새로 구입했다. 배달된다던 날짜가 며칠이나 지나서야 연락이 왔다. 휴대전화 번호가 잘못 입력되어 있는 바람에 착오가 생겼다며 집전화로 통화를 한 뒤 쏜살같이 와서 설치를 해주었다.

    설치 후 기사가 친절하게 설명을 하고 나가면서 회사에서 설문조사 전화가 오면 말씀 좀 잘해달라고 했다. 그냥 좋다라고 하지 말고 매우 좋다고 해달라며 재차 부탁했다.

    언제부턴가 전자제품을 사거나 AS를 받고 나면 제품에 이상이 없는지 서비스는 잘 받았는지 등을 질문하는 설문조사 전화가 으레 걸려 온다.

    물건을 살 때뿐만 아니라 보험회사 방문이나 공공기관에 민원상담을 하고 난 후에도 전화가 오는 것을 보고 이런 제도가 차츰 각계 각층으로 확대된 것을 알 수 있다.

    가끔 성가실 때도 있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면 오히려 환영할 제도라고 봐야겠다.

    그런데 대답을 할 때 우리가 느낀 만족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텐데 꼭 자기네들 설문대로 사지선다나 오지선다형으로 1,매우좋음 2,좋음 3,보통…등등으로 구분해서 답을 해달라고 한다.

    일을 하는 입장에서는 ‘좋음’보다는 ‘매우좋음’이라고 해야 근무 평가가 올라가는 모양이다.

    현대는 점점 강도가 놓은 걸 선호하고 있다. 회원을 구분할 때도 VIP로는 성에 차지 않아 VVIP회원을 따로 또 정하듯이…. 나는 이러한 제도를 음식점에도 도입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식사를 한 후 음식점 문을 나서기 전에 설문지에 음식 맛에 만족했는가, 서비스는 어떠했는가 등 그렇게 설문지 자료를 참고로 하여 개선해 나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더 나은 외식문화를 위해 좋은 결과를 낳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소문난 집이라 찾았는데 음식이 가격에 미치지 못해 기분이 씁쓸해진 경우가 있었다.

    게다가 주차장 이용시간도 30분으로 제한하고 있어 그 외 시간의 주차비 부담은 손님 몫이라고 했다.

    밥도 먹기 전 이미 식당 밖에서 차례를 기다리느라 보낸 시간이 30분을 넘어섰다고 하면 자기네들 방침이라 어쩔 수 없다며 일축했다.

    반면 이런 집도 있다. 어느 시장통 죽집에서 두 사람이 각각 죽 한 그릇씩 먹고 혹시 주차권에 도장 찍어 주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은 도장이 없다며, 사양을 하는 데도 굳이 500원을 손에 쥐어 주는 것이 아닌가? 마음의 여유는 꼭 물질적으로 넉넉해야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었다.

    식사 도중에 부족한 것은 없는지 수시로 종업원이 살펴보고 센스 있게 알아서 척척 갖다주는 곳도 있다. 음식도 맛깔스럽고 정갈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곳은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에 또 찾게 된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매우좋음’에 망설임 없이 동그라미를 쳐주고 싶은 사람들이 곳곳에 있기에 마음이 밝아 온다.

    우리가 살면서 자신의 삶이 매우 좋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좋음과 보통 아니 나쁨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는 것이 우리들 삶인 것 같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노력하며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매우 좋은 삶을 향한 길이 아닐까 싶다.

    안순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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