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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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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식물자원보존구역 곰배령- 손영희(시인)

  • 기사입력 : 2010-09-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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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배령을 다녀왔다. 곰배령은 강원도 인제에 있는 점봉산 자락으로 식물자원보존구역이며 유전자보호림, 국가 장기생태모니터링 장소다. 산악회, 동호회, 여행사 등은 입산 금지다. 산불감시기간 외에만 산행이 허락되고 하루에 입산하는 인원을 제한한다고 한다. 더구나 22년 만의 개방이라니. 이런 매력 있는 내용들이 나를 자극했다.

    입산신고서를 미리 보내 놓은 터라 아침산행 시간에 맞추어 진동리로 올라갔다. 마을사람들이 자율적으로 보호, 관리할 수 있는 생태체험장으로 일부 구간만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4월이면 만발한다는 얼레지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8월이면 모습을 드러내는 곰취, 금강초롱 등이 우리를 반긴다. 계곡 양 옆으로 양치식물인 관중이 군락을 이룬 곳에 오니 마치 중생대로 거슬러온 것 같은 느낌이다.

    이름을 다 기억할 수 없는 들꽃들과 눈을 맞추며 계곡물 소리와 함께 숲길을 걸으니 나도 자연의 일부가 된 것 같다. 얼마 만에 맛보는 기분인가. 인위적인 공원이 아닌 자연이 만들어놓은 풍경 속에서 그동안 쌓였던 노폐물들이 다 씻기는 것 같았다. 한 시간여를 그렇게 걷다가 얼마쯤 힘든 고갯길을 올라가면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고, 곰배령 정상에 오른다. 쥐오줌풀, 미나리아재비 등의 야생 들꽃이 수천 평 군락을 이루고 우리나라 토종 꽃나무인 수수꽃다리가 야생화 군락지를 빙 둘러서 있다. 탁 트인 푸른 하늘이 저절로 눈에 들어오고 바람은 시원하고 가슴으로 행복감이 밀려든다. 내가 살아 있다는 기분 좋은 이 느낌 때문에 여행을 떠나는 것일 게다.

    1982년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에 포함되고, 천연림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놓았다 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누군가의 이런 노력이 있어 팍팍한 일상에서의 탈출을 꾀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쉴 곳을 제공하고, 후세에 물려줄 자연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내가 10년 후, 아니 20년 후에 이곳에 와도 지금 그대로 남아 있을까. 하루 100명으로 입산 인원을 제한해 놓고 있지만 지금의 인원도 사실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은 흔적이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마을 분들이 책임감을 갖고 잘 관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이며 과학자 레이첼 루이즈 카슨이 쓴 <침묵의 봄>이라는 소설이 있다. 1962년에 발간한 이 책의 저자는 소설이라는 이름을 빌려 인류에게 생태환경 파괴를 경고했다. 사람들이 벌레를 죽일 때 쓰이는 살충제가 벌레뿐 아니라 새와 물고기, 그리고 다른 동물과 인간까지 죽인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다루었다. 1940년대 미국은 해충을 없애려고 나무에 DDT를 대량 살포했는데, 내성이 생긴 해충들은 살아남고 그 나뭇잎을 먹은 벌레들이 죽고 그 벌레를 먹은 새가 죽고…, 살충제는 또 땅, 강, 바다로 스며들어 생태계 전체를 오염시킨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농무부와 살충제 기업에 고용된 과학자들이 손을 잡고 카슨을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이며 그녀를 협박했다. 하지만 그녀는 굴복하지 않았다. 책은 10만부 이상이 팔리고 대중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그녀 편을 들었다. 결국 1963년에 DDT 사용이 금지되었다.

    “자연 속에 경이로움과 장엄함이 있다면 과학은 그러한 특징을 더욱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 속에 아무것도 없는데 과학이 그런 것들을 창조할 수는 없겠지요. 바다를 다룬 제 책에 시가 들어 있다면 그것은 제가 일부러 넣은 것이 아니라 시를 빼고는 바다에 대해 제대로 말하기가 어려워서였을 거예요.”

    그녀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그대로를 사랑하였다. 그 속에 최고의 아름다움이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손영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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