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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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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셋째는 더 예뻐- 김경분(수필가)

  • 기사입력 : 2010-10-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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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널리 알려졌던 산부인과 병원들이 문을 내린 지 오래다. 그때의 병원은 임산부들로 넘쳐나 진료를 받기 위해 한두 시간 기다리는 것은 예사였다. 내가 셋째아이를 낳았던 병원도 오래 전 등산용품 전시·판매장으로 변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입원실이 없어 출산 후 바로 집으로 왔던 생각이 난다.

    지난봄 난 쌍둥이 손자 손녀의 외할머니가 되었다. 키울 일이 큰 걱정이었는데 어느새 방긋방긋 웃으며 옹알이를 하고 눈까지 맞춘다. 일주일에 분유를 두 통 넘게 먹고, 예순 개가 든 기저귀를 네 박스쯤 쓴다는 집안은 쌍둥이들의 흔적으로 항상 전쟁터 같다.

    3차까지 맞아야 한다는 각종 예방접종 날에는 세 사람이 움직인다. 한 사람은 운전을 하고 두 사람은 쌍둥이들을 하나씩 안고 기저귀와 우유병 물통이 든 가방을 메고 병원으로 간다.

    중간 가격의 분유 한 통 삼만원, 기저귀 한 박스 이만원, 각종 예방접종비가 몇 만원에서 이십만원 가까이 하는 것도 있다니 놀랍다. 젊은 사람들이 아기를 잘 갖지 않으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뜻밖에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사위를 볼 때마다 나는 ‘쌍둥이들 분유값 벌어들이느라 고생 많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예전에 내가 살던 뒷집은 자식이 열둘이었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로 저출산을 장려하던 때였다. 보건소의 피임약도, 면사무소 가족계획 담당자의 간절한 설득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밥상은 시래기죽과 보리 껍질로 만든 동그란 개떡 몇 개가 전부였다. 그러나 아이들 모두 포동포동 살이 찌고 싸우고 보채지도 않았다. 방이 좁아 마루나 부엌 섬돌 밑에서 잠을 자고 옷은 방 가운데 거름더미처럼 높게 쌓아 놓고 제각각 마음에 드는 것들로 골라 입었다.

    가난한 집안형편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그 속에서 질서를 배우고 남을 위한 배려를 배웠다. 가난했지만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웬만한 일은 어른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했다. 바쁜 부모를 대신해서 형과 누나들이 내리내리 동생들을 키워냈다. 그들 나름대로의 규칙 속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었다. 지금 열두 명의 형제들은 각자의 적성에 따라 기술도 배우고 공부도 하고 부모를 도와 농사도 짓는다고 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국가에서는 옛날처럼 출산율을 높이려고 애를 쓰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는 것 같다. 임신에서 출산까지만 천만 원이 든다고 하니 부모가 되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딸아이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키우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니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가계에 부담이 되는 예방 접종도 걱정 없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셋째자녀 출산 후부터 받게 되는 산후 도우미제도는 첫 출산 때도 절실히 필요해 보였다. 물론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이런저런 혜택이 조금씩 있다고는 하지만 까다롭게 정해 놓은 그 기준에 맞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가 궁금했다. 첫아이를 서툴고 어렵게 키워 본 엄마가 둘째, 셋째를 가질 엄두를 낼 수 있겠는가.

    웬만한 시골 초등학교는 학생이 없어서 문을 닫고, 아기울음 소리로 시끄럽던 산부인과병원은 임산부가 없어서 문을 닫는다. 출산율이 높아야 경제대국을 꿈꿀 수 있고 우리 사회의 미래도 든든하지 않을까.

    쌍둥이 키우느라 밥 먹을 시간도 없는 딸은 다시는 아기를 갖지 않겠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나는 두 사람에게 슬쩍 말을 해 볼 작정이다.

    “셋째는 더 예뻐!”

    김경분(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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