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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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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비경 환상의 섬 (38) 고성 자란도

붉은 난초 피던 곳엔 코스모스 하늘하늘
섬마을 노부부 손인사엔 사랑이 가득

  • 기사입력 : 2010-10-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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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성 수태산 보현암에서 내려다본 ‘자란도’./이준희기자/

    자란만 앞 해변에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있다.

    “오데서 왔능교, 자란도에 뭐 볼께 있다고… 아무튼 ‘자란도’ 멋지게 한 번 소개시켜 주소.”

    능청스런 자란도 섬주민 이동철씨의 말솜씨에 정감이 묻어난다.

    고성군 하일면 송천리 동남쪽에 자리 잡은 섬 자란도(紫蘭島·22명 19가구·58만9000㎡).

    붉은 난초가 섬에 많이 자생해 ‘자란도’(紫蘭島)라 불리기도 하고, 섬의 생긴 형세가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과 같다 하여 ‘자란도’(自卵島)라 불리는 등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지는 섬이다.

    자란도에는 ‘고을개’(읍포)와 ‘모래치’(사포) 2개의 자연마을이 있는데 ‘고을개’는 옛 고을 원님이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모래치’는 모래사장이 있다 하여 불리었다 한다.

    섬 정상에는 성(城)이 있었다고 하며 말을 사육하였다고 하는데…, 성을 쌓았던 흔적은 아쉽게도 우거진 풀숲에 가려 찾을 수가 없다.

    자란도는 하일면 용태마을 하중촌 선착장에서 뱃길로 5분이면 닿는 가까운 섬이다. 하지만 섬을 오가는 배편이 없어 어찌 보면 ‘가깝고도 먼 섬’이다.

    촉박한 시간에 배편을 마련하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자 용태마을 한 주민이 나서 자란도에 사는 이동철씨를 소개시켜 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섬을 찾은 날이 하필이면 고성군 소가야 문화제와 군민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소가야 문화제’는 고성에서 열리는 일년 중 가장 큰 축제의 하나로 읍면 소재지 군민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화합과 친목을 다지는 축제다.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 잔잔한 호수 같은 초가을의 자란만은 한 폭의 그림이다.

    산지가 많아 농사 짓기가 어려운 섬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모래치 마을 앞 방파제 인근에서 통발을 걷어올리는 어민은 게잡이가 신통찮은지 빈 통발만 연신 걷어올린다.

    “통발에 뭐 좀 들었어요…?”라고 묻자, 나이가 지긋한 어민은 “요즘은 게가 어디로 갔는지 통 보이질 않는다”며 “혼자 집에 있는 게 심심해 소일거리 삼아 하는 게잡이지만 최근엔 미끼값도 건지기 힘들다”며 투덜거린다.

    모래치 마을 앞 방파제 인근에서 어민이 텅빈 통발을 걷어올리고 있다.

    한 할머니가 게잡이용 생선을 옮기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마을 아주머니가 게잡이용 미끼(생선)를 집으로 옮기느라 분주하다. 한 상자에 7000원가량을 주고 뭍에서 사온 미끼는 갈치와 전갱이 등 온갖 잡어들로 가득하다.

    마을안 풍경은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다. 하지만 어촌의 넉넉한 인심은 그대로인 듯하다.

    한가로이 마을을 거닐던 섬마을 노인들은 이방인의 출현이 낯선지 힐긋힐긋 쳐다보다 살며시 말을 건네기도 한다.

    멸치, (갯)장어, 감성돔, 참돔, 게 등을 잡거나 굴을 양식하는 섬주민들의 생활은 풍족하진 않지만 마음만은 항상 풍요롭다.

    자란만 중앙에 자리 잡아 겨울이면 물메기잡이로 유명한 자란도는 봄이면 감성돔을 잡으려는 낚시꾼들의 발길이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봄철이면 자란도 섬주민들은 고성의 특산물인 참취 채취로 분주하다. 고성은 맑고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취나물로 유명하다.

    향이 독특한 고성 취나물은 진통, 현기증, 항암효과에 탁월해 한약재로도 사용되고 있다. 특히 자란도에서만 자생하는 ‘참취’는 청정해역의 해풍을 맞고 맛과 향이 더해 도시인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마을주민이 마당에 널린 은빛 멸치를 뒤집고 있다.

    모래치 마을 끝에는 멸치잡이 어장이 있다. 따가운 햇살과 해풍을 맞은 은빛 멸치는 그저 바라만봐도 먹음직스럽다.

    마당 한가득 널린 은빛 멸치를 큰 비를 이용해 뒤집는 여인의 모습은 풍성한 가을의 들녘처럼 넉넉해 보인다.

    모래치 마을을 돌아 고을개 마을로 가는 해안로는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어 잡초들로 우거져 있다. 그러나 마을을 잇는 1km가량의 해안로는 고성 자란만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거닐 수 있어 더없이 여유롭다. 초가을의 기분을 만끽하기에 그만이다.

    고을개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맨먼저 만나는 것은 마을 우물. 우물 한쪽의 두레박이 정겹게 느껴지지만 우물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는지 이끼와 각종 부유물로 뒤덮여 있다.

    자란도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수도 공급이 되지 않아 섬주민들이 빗물을 받아 식수와 생활용수로 이용하는 등 큰 불편을 겪었다. 척박한 땅이라 지하수를 파도 식수로 사용하기 힘들 정도로 물맛이 간간해 그동안 섬주민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다행히 2005년 하일면 학림리에서 수연, 송천리를 지나 자란도까지, 육상과 해상을 잇는 광역상수도가 설치되면서 섬주민들의 생활이 수월해졌다.

    옛 고을 원님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고을개 마을은 예전 사람들이 제법 많이 살았나 보다. 지금은 폐교돼 일반인에게 매각됐지만 마을 중앙에는 분교가 있었다고 한다.

    1969년 수태초등학교 자란분교로 개교한 초등학교는 한때 학생수가 30명에 이르렀을 정도로 많았지만 학생들이 줄면서 1992년 3월 폐교됐다.

    방치된 분교는 2년 후 일반인에게 매각돼 지금은 개인용도의 별장으로 변했지만 섬사람들에게 분교는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곳이다.

    마을 골목길에서 메주콩을 손질하시던 할머니는 섬을 찾은 이의 방문이 반가운지 환하게 웃으며 맞는다.

    “하루 종일 있어도 말할 일이 없다”는 할머니는 “해가 저물면 무서워 일찍 문을 걸어 잠그고 잠을 청한다”고 얘기한다. 고을개 마을에는 10가구의 집이 있다. 하지만 7가구는 빈 집이고 3가구만이 사람이 살고 있다. 80대 노인 부부 한 집과 할머니 두 분이 살고 있는 마을은 썰렁하다.

    텃밭에서 잡초를 뽑던 최명돌(79) 할머니는 “아들 내외는 도시로 나오라고 하는데 내가 도시에 나가 뭘 하겠노? 경로당에서 10원짜리 고스톱밖에 더하겠나, 그럴 바에야 차라리 마음 편하게 땅이나 파며 사는 게 훨씬 낫지 않겠냐”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섬마을 노부부가 기자를 용태마을 선착장에 데려다주고 잘 가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섬이 ‘자란도’이다.

    돌아오는 배편에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 주는 섬마을 노부부의 손짓에 사랑이 묻어난다.

    한평생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온 섬사람들, 섬이 그리워 섬을 떠나지 못하는 섬사람들, 오늘도 이들은 섬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찾아가는 길

    국도 14호선(고성방향) → 고성읍 시외버스터미널 우회전 → 국도 33호선(진주방면) → 상리면 부포사거리 좌회전 →하일면 송천리 용태마을 선착장(☏자란도 이동철 010-2975-1488).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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