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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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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한국사람은 이혼하지 않는다고요?- 윤미향(수필가)

  • 기사입력 : 2010-10-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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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시누이가 왔다.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게 된 친족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던 중 시누이가 하는 말에 나는 귀가 솔깃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시누이 손녀딸이 저희 엄마아빠가 부부싸움만 하면 ‘두 사람이 이혼했을 때 나는 도대체 누구와 살아요?’라며 울먹인다는 것이다. 헤어진 친부모 사이를 번갈아 왕래하며 생활은 또 새엄마나 새아빠와 하고 있는 미국 친구들을 예사로 보아온 아이였다.

    시누이가 ‘네가 동생과 싸우다가도 금방 다시 친해지는 것처럼 엄마아빠도 마찬가지란다. 설사 심하게 다툴 일이 생긴다 해도 한국 사람은 절대 이혼하지 않는다’며 토닥인다고 한다.

    문득 요즘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있는 연속극 생각이 났다. 주인공 내외뿐만 아니라 시삼촌 또는 친정아버지조차 이혼한 사람으로 설정돼 있어 지나치게 시청률을 의식한 내용이 아닌가 하고 외면했었다.

    그런데 줄거리에 이끌려 몇 차례 더 시청하고 보니 소재로 사용했을 뿐 이혼이 주제는 아니었다. 다양해진 삶의 형태로 인해 생기는 갈등 상황을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를 보여주려는 의도임을 어렴풋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주제가 잘 드러나지 못하는 것은 이혼이라는 선정적이고 흥미로운 소재가 너무 남발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혼은 전염병처럼 직장이나 가족, 친구 등 인간관계에서 확산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한다.

    드라마 속 인물들이 비록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은 아닐지라도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연속극이 차지하는 비중이 파격적인 데다가, 이혼을 주제로 하거나 소재 삼고 있는 드라마가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사람들이 거의 매일 텔레비전을 시청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누군들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나도 한때 이혼을 꿈꾸며 서로 맞지 않으면 쉽게 헤어질 수 있는 개방된 사회 분위기가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이혼으로 인해 더 수렁에 빠지는 얘기가 대세였지 요즘처럼 문제 없이 잘 사는 모델은 거의 없었다. 또 자신보다는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사람 된 도리여서 불행한 결혼생활이라도 천형이라 여기며 참고 사는 사람도 있었던 시절이다.

    그때 사회 분위기가 만약 요즘 같았다면, 어리석은 나는 어쩌면 지금쯤 이혼녀가 되어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역시 주위 환경에 영향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혼임을 깨닫게 된다.

    물은 아래로만 흐르지 역류하지 않듯 달라지는 세태 또한 막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혼율 세계 1위 운운하며 가족단위가 계속 무너진다면 사회, 국가단위인들 건사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가끔 결혼을 사업과 같다고 생각한다. 성공하면 엄청난 대가가 따라오지만 실패하면 치명적인 대가를 치르는 것이 사업이다. 노력해도 어쩔 수 없이 망하는 사업은 있어도 사업주 자신이 포기해서 망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스스로 이혼을 결심할 때, 힘들다고 포기해버리는 어리석은 사업주는 아닌지 되새겨 볼 일이다.

    “한국 사람은 이혼하지 않는다고요? 그것은 형님이 대한민국에 사시던 수십 년 전, 그러니까 과장해서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쯤 얘기이고요. 대신 우리는 극복하는 힘이 남다른 민족이니 희망을 품을 수는 있지 않겠는지요.”

    윤미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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