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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3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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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비경 환상의 섬 (39) 사천 늑도

대교 따라 차 오가며 ‘섬 아닌 섬’ 됐지만
섬의 향취와 넉넉한 섬사람 인심은 그대로…

  • 기사입력 : 2010-10-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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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선·삼천포대교에서 바라본 ‘늑도’./이준희기자/


    연륙교 밑으로 선박들이 정박해 있다.


    청동기시대 말기의 대표적인 유적지이자 철기시대 해상 국제무역항으로 명성을 떨친 ‘늑도’(勒島·316명 136가구·32만㎡). 섬의 지형이 마치 말굴레와 비슷해 ‘굴레섬’으로 불리기도 한 늑도는 ‘고려사’에 ‘구라도’(九羅島)로 표기하고 있다.

    행정구역상 사천시 동서동에 속한 ‘늑도’는 본래 진주군 삼천포면에 속하였으나 1906년 삼천포면이 사천군에 편입되면서 수남면 늑도로 바뀌었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문선면에 편입되었고 1918년 수남면과 문선면이 삼천포면으로 통합된 후 1931년 삼천포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늑도동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1995년 행정동 폐합으로 동서동에 속하게 됐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창선·삼천포대교’가 위용을 자랑하는 다리 아래 자리 잡은 ‘늑도’는 섬 주위에 학섬·초양도·신도·박섬·두응도·마도·저도·딱섬·모개섬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징검다리처럼 이어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5개의 그림 같은 다리(삼천포대교·초양대교·늑도대교·창선대교·단항교)가 하나로 연결된 ‘창선·삼천포대교’는 보고 걷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2002년 창선·삼천포대교가 개통되면서 늑도는 더이상 ‘섬이 아닌 섬’이 되어버렸지만 아직까지 섬의 향취와 넉넉하고 후덕한 섬사람들의 인심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하북개 마을과 집앞(양지몰·음지몰), 동낙끝(동내끝) 3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늑도는 물이 아주 귀해 섬사람들이 밤이면 마을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긷는 것이 큰 일거리였다. 오죽하면 섬사람들이 물의 애환을 담은 노래를 불렀을까

    ‘사천 늑도 굴섬에 사람 살기 좋다마는/봄 한철 님 그립고/가을 한철 물 기립고/ 물이나 펑펑 쏟아지면/빨래나 펑펑 하고 지야 ~’

    늑도는 물이 귀해 섬여인들 사이에 이런 노래가 전해져 오고 있다. 오랜 세월 구전으로 전해져 오는 노래를 정확히 아는 여인들은 없지만 물이 귀한 섬의 애환과 무동력선을 타고 수개월씩 바다로 나간 남편을 그리는 애달픈 사연이 담겨져 있음을 짐작케 한다.

    낚시꾼이 갓잡은 싱싱한 꽁치를 들어보이고 있다.

    마을 방파제 앞에는 서너 명의 조사들이 물살이 거센 바다를 향해 연신 낚싯대를 던진다. 문어 채비를 갖춘 낚시꾼들은 수시로 줄을 감았다 풀기를 되풀이한다.

    “수십 번을 던져야 한 마리 잡힐까…허허, 그래도 재미 삼아 하는 낚시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며 즐거워 하는 꾼들.

    운 좋은 낚시꾼은 벌써 제법 큰 문어 한 마리를 그물망에 채워 두었다. 바로 옆 여조사는 긴 민장대로 꽁치와 전갱이를 연신 낚아 올린다. 제법 큰 씨알의 꽁치는 먹음직스러워 보일 정도다. 섬 전체가 낚시 포인트인 늑도는 감성돔, 볼락, 노래미, 도다리 등 다양한 어종들이 낚인다.

    늑도는 물살이 거세기로 유명하다. 삼천포항과 남해 창선 사이의 바다는 폭이 좁고 조류의 흐름이 빨라 고려시대부터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이용되었다. 우리나라 연안을 빈번히 침범하는 왜구의 노략질을 방비하기 위해 설치한 구라량(仇羅梁)의 영으로 수군만호가 있었던 늑도는 남해 적량, 하동 노령과 함께 목을 지키는 중요한 요충지 역할을 담당했다.

    늑도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79년, 부산대 박물관이 지표조사를 통해 학계에 알려진 후, 2차례(1985년 10·11월, 1986년 5·6월)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초기 철기시대인 BC 1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주거지와 무덤, 바리형 민무늬토기, 덧띠토기, 민무늬 항아리, 숫돌 등이 출토됐다. 이후 1998년부터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이 연륙교 설치계획에 따라 부산대·동아대 박물관, 경남고고학연구소 등 3개 기관이 참여한 3차 발굴조사에서 주거지, 분묘, 토취장, 토기소성가마터 토기, 석기, 철기 청동기 등의 인공유물과 인골, 조개류, 곡물류 등의 자연유물 수만 점이 출토됐다. 특히 원형수혈주거지의 온돌시설, 토광묘에 부장된 인골과 개뼈, 패각층의 반량전, 오수전 등 중국화폐, 야요이계와 낙랑계 토기 등이 발견되면서 늑도가 대외교역과 한·중·일 고대 동아시아지역 문화교류의 중심지인 국제무역항이었음을 잠작케 한다.

    또한 늑도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섬인 만큼 곳곳에 서려 있는 전설 또한 늑도의 신비감을 더해주는데 바로 ‘드문돌 바위’가 그러하다.


    과부할매가 빨래를 했다는 전설이 있는 ‘서답돌’.


    늑도 북쪽 끝에 있는 과부할매다리.

    옛날 지리산에 힘이 장사인 과부 할매가 바다구경을 위해 산을 내려왔는데 도착한 곳이 바로 늑도였다고 한다. 섬사람들의 넉넉한 인심과 뛰어난 풍경에 반한 과부할매는 이 섬에서 살기로 하고 먼저 지리산에서 빨래를 하기 위해 산에서 큰 바위를 들여다 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북쭉 바닷가에 있는 과부할매 서답(빨래)돌이다. 하루는 과부 할매가 섬마을 사람들을 불러놓고 말하기를 ‘내가 이 섬에 살게 돼 여러분의 은혜를 입었으니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자, 섬주민들은 한결같이 뭍으로 건너갈 다리를 놓아 줄 것을 요구해 과부할매는 지리산 산신령을 찾아가 돌을 옮길 두꺼운 가죽치마를 부탁했다 한다. 그러나 산신령이 이를 거절하자 다시 늑도로 돌아온 과부할매는 자신의 앞치마로 바위를 날라 육지로 연결되는 징검다리를 놓기 시작했으나 앞치마가 닳아 해지고 힘에 부쳐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고 마을사람들은 전한다. 지금도 물 빠진 북쪽 바닷가에는 큰 바윗돌이 이어진 모습과 어른 키만한 넙적한 모양의 큰 바위를 볼 수 있어 당시의 이야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늑도는 2002년 창선·삼천포대교가 개통되면서 섬 마을에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작은 섬 마을에서 육지로 바뀐 섬은 우선 태풍, 비바람 등으로 인한 배편 걱정이 사라졌다. 그러나 조용하던 섬 마을이 사람들로 북적이면서 주민들의 불만도 늘어갔다.

    섬마을 이옥례(63) 할머니는 “배편 걱정은 사라졌지만 대신 낚시꾼을 비롯한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각종 쓰레기들로 섬이 넘쳐난다”며 “특히 주말이면 관광객들과 자동차의 소음, 먼지 등으로 창문도 열어 놓지 못할 지경이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또한 주민들의 생활도 달라졌다. 예전 섬주민들은 바다를 터전으로 바다만 바라보며 살았으나 이제는 횟집, 낚시점, 민박집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들어섰다.

    늑도는 부자 섬이었다. 돈이 흔해 ‘돈 섬’이라 불릴 정도로 늑도는 어업이 성행하면서 섬마을 사람들은 풍족한 생활을 했다.

    원시적인 어업인 ‘연승어업’이 주를 이뤘지만 인근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수십 척의 대형 어선들이 동해와 남해, 서해를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선원 감소와 정부의 어선 감축 등으로 인해 어선들의 수가 크게 감소해 지금은 5척 안팎의 어선만 남았다.


    해양호 선원들이 깃대를 만들고 있다.

    마을 앞 부둣가에는 어민들이 따가운 가을 햇살에도 아랑곳없이 어장을 손질하느라 분주하다. 사흘 후 출항을 앞둔 ‘해양호(22t)’ 선원들은 바다 한가운데 내린 어장을 표시하기 위한 ‘깃대’ 작업이 한창이다.

    선원들은 “28시간을 꼬박 내달려 이어도 인근에 도착하면 제철을 맞은 민어와 참조기, 우럭 등을 잡기 위한 작업에 바로 돌입한다”며 “10일간의 출어기간 동안 높은 파도나 강한 바람으로 인해 하루라도 작업을 하지 못하면 손실이 크다”고 말한다.

    섬 마을은 연승어업 채비인 주낙을 손질하는 여인들의 손놀림도 바쁘다. 낚시바늘을 묶는 여인의 손놀림은 능숙하다. 바늘 하나를 묶는 데 채 1초가 걸리지 않는다. 30년 넘게 주낙 채비를 묶었다는 한 할머니는 “배 한 척이 출어하는데 700개의 주낙 바퀴(통)가 필요하니깐 얼마나 많은 낚싯줄을 묶어야 하겠느냐”며 잠시도 손을 멈추지 않는다.

    늑도 북쪽 끝에 있는 과부 할매다리와 서답돌을 지나 만난 외딴집 앞바다에는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한 원시적인 어로ㅡ방식인 죽방렴이 설치돼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침 물(어장)을 보러 온 부자가 죽방렴 한쪽의 쪽문을 열어 조류에 밀려온 각종 부유물을 걷어내고 있다.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한 원시적 어로방식인 ‘죽방렴’과 낚시를 하는 강태공의 풍경이 여유로워 보인다.

    조수간만 때 조류의 힘을 이용해 멸치 등 각종 어류를 잡는 죽방렴은 물살 빠르고 수심 낮은 곳에 V자로 양 날개를 설치한 후 물고기를 유인하는 일종의 물고기 함정이다.

    어민들은 “죽방렴은 하루에 두 번 물을 보는데 사리물 때가 중요하다”며 “삼천포에는 인근 마도, 신수도 실안동 등에 20여 개 죽방렴이 있으며, 남해와 창선도를 연결하는 창선교 인근에도 20여 개의 죽방렴이 우리의 전통어법을 고집하며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한려해상의 아름다운 쪽빛 바다와 점점이 박힌 크고 작은 섬들, 그리고 아름다운 창선·삼천포대교가 어우러진 늑도는 깊어가는 가을, 우리들의 빈 가슴을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찾아가는 길 = 남해고속도로 - 사천IC - 3번 국도(삼천포항 방면) - 창선·삼천포대교(사천IC에서 23km)

    ☞잠잘 곳= 창선·삼천포대교가 연결되면서 한려민박(☏835-1178), 늑도민박(☏835-2281) 등 숙박시설이 들어서 있다.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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