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3일 (화)
전체메뉴

[작가칼럼] 웃기는 짬뽕들- 김륭(시인)

  • 기사입력 : 2010-10-15 00:00:00
  •   
  • 문학을 왜 하세요? 어느 문학행사장에서 만난 삼십대 아줌마의 첫 번째 질문이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답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문학 앞에 ‘돈도 안 되고 밥도 안 되는’ 말을 예의상 생략한 지극히 사적인 질문이냐 아님 문학의 역할이나 존재이유에 대한 질문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답은 정답이 아니다. 문학이라는 것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수많은 거짓의 거미줄 속에서 한 올의 진실을 뽑아내는 것이 문학이고, 날이 갈수록 파렴치해져 가는 세상의 질서에 반기를 드는 것이 문학이며, 잃어버린 진실과 아름다움을 찾으려 애쓰는 것이 문학이다. 그렇게 문학은 분명히 무엇인가를 ‘한다’. 따라서 “문학을 왜 하세요?”란 질문은 밥보다 따뜻하고 고마운 그 무엇인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내가 문학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질문은 십중팔구 이렇게 변했을 것이다. “으이구, 인간아 왜 사냐?”

    그런데 문학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내가 만난 아줌마처럼 최소한의 질문 한번 구해보지 않은 채 답을 꺼내드는 인사들이 있다. 그들에게 문학이란 돈도 안 되고 밥도 안 되니 있으나 마나 한 것이고, 그렇게 있으나 마나 한 일에 목을 매는 작가들 역시 돈 몇 푼 집어주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족속들이라 생각하는 부류들이다. 한마디로 ‘웃기는 짬뽕’들의 무식한 생각일 뿐이겠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심각해진다.

    현 정권의 반민주적이고 무지한 문화예술정책에 대해 저항의 몸짓을 보이고 있는 진보적인 문인단체를 대변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의 대다수 시인들과 작가들은 이미 분노했고 배가 터지게 실소했고 한탄하고 있는 중이니까. 글깨나 읽었다는 아줌마의 두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기대를 많이 했는데 왜 못 받았을까요?” 해마다 이맘때면 나오는 노벨문학상 이야기다. 첫 번째 질문과는 근본이 다른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노벨문학상 시즌에만 우리 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이 나라의 분위기를 질타하는 게 당연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것은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발표 당일 AP통신, 스웨덴 공영방송 등에서 고은 시인을 유력 후보로 지목하면서 수상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자 대통령과 장관의 축하메시지 전달, 축하행사 마련, 수상자 작품의 번역지원 확대 등의 조치사항까지 점검하며 호들갑을 떨었다는 정부 관계자들보다 이 아줌마가 훨씬 진지하고 순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은 시인은 2002년부터 수상 후보로 떠오르기 시작해 2005년과 올해는 수상이 유력하게 점쳐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문학을 위해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수상을 대비해 온갖 호들갑을 뜬 관계자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내가 만난 아줌마의 첫 번째 질문처럼 고은 시인에게 문학을 왜 하느냐고 어디 한번 물어나 보았을까.

    물론 이 나라 정부가 문학을 위해 한 일은 많다. 예컨대 분기별로 문예지 게재 우수작들에게 주던 쥐꼬리만한 지원금마저 싹뚝 자르거나 우수문학도서 선정권수를 팍 줄여―뭐, 이건 아주 사소한 일 중의 하나지만―이 나라 시인들과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떨어뜨린 일 등등.

    해마다 노벨문학상 수상 실패라는 소식이 전해지면 수준 높은 번역과 번역가 양성문제가 거론되곤 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정답도 아니다. 문제는 이 나라가 세계적 수준의 문인을 길러낼 만한 토양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문학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조차 없이 노벨문학상을 기대한다는 것은 국가적 차원의 ‘파렴치’일 뿐이다.

    문학은, 돈도 밥도 안 되는 문학에 목을 맨 시인이나 작가들이 세상에 꺼내놓는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밥맛이 없을 때 가끔씩 시켜 먹고 현관문 앞에 내밀어 놓는 자장면이나 짬뽕 그릇이 뒤집어쓴 신문지가 아니란 말이다.

    김륭(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