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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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키우는 역사논술] (22) 중병 앓는 우리 교육

교육정책 잘만 하면 ‘고칠병’
고육지책 잘못 처방 ‘고질병’

  • 기사입력 : 2010-10-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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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픽= 김문식/

    필자는 젊은 나이에 교육 관련 업체에 몸담아 기획, 홍보, 교재 제작과 함께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 우리 교육에 대해 다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경험과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우리 교육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태초에 교육이 있었다. 문명이 생기면서 지식을 전달하고 지배체제를 고착시키기 위해 교육이 필요했다. 이렇듯 교육은 예전에도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특히 과거제가 정착된 이후 더욱 교육의 필요성이 심화되었다. 다만 당시 교육을 받는 대상은 특권계급에 한정되었다. 책 한 권 값이 집 한 채 값을 호가하던 시절에 어지간해서는 교육을 받기 어려웠다.

    따라서 교육은 그 자체로 신분의 증명이 되었다.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지배층이라는 표식이었다. 과거제는 전부 양반들로 채워졌다. 일부 잡과의 경우 중인들이 시험을 쳤지만, 그 중인들도 크게 보면 지배계급에 가까웠다. 그러다 신분제가 무너졌다. 신분제는 세습이었다. 애초에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신분제가 무너졌으니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분을 상승시킬 것인가? 교육을 받아서 높은 학력수준을 갖추거나, 혹은 영어를 잘하면 나도 높은 신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서양과 역사가 갈리게 된다.

    서구의 귀족들은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무식했다. 귀족들은 공부를 하느라 쩔쩔매는 모습을 ‘어떻게 해서라도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안쓰러운 행위로 보았다. 고귀한 귀족들은 굳이 글자를 몰라도 재산만으로도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전통이 남은 상태에서 근대화가 이뤄졌다.

    그리하여 서구에서는 근대화 이후 신분을 상징하는 것이 ‘학력’이 아닌 ‘돈’이 된다. 그것이 현실이고, 실질적으로 맞는 얘기다. 그렇기에 학력이 높고 낮음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자기 개성을 살려서 어떻게 돈을 벌고 먹고사느냐가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계층도 갈리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10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이어져 온 과거제와 유교 체제의 흔적으로 신분을 상징하는 도구로 여전히 교육이 남아 있었다. 신분제 붕괴와 학교의 보급으로 누구나 공부를 할 기회가 생기기 시작했고, 자신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높은 학력을 가지게 되면 곧 신분상승이 된다고 믿기 시작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배제되고,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결론이 우선되기 시작했다.

    학력이 높거나 영어점수가 높으면 그 사람은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되고, 반대의 경우에는 낮은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낮은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된 이들은 자식을 키우면서 더욱 자녀 교육에 몰두하여 업신여김을 당했던 한을 풀고자 했다. 이렇게 ‘우월하다’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사교육과 학벌체제를 키워온 것이다.

    이 욕망을 극복하지 못하고는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대책을 세워봐야, 백약이 무효다. 1980년대 이후 정부는 수많은 대책을 내놓았다. 아마 우리나라 교육부만큼 교육문제에 대해서 온갖 정책을 대입해 본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허사였다. 과외를 금지했다. 그러자 비밀 고액과외가 생겼다. 대학 본고사를 폐지했다. 그러자 내신점수를 받기 위해서 같은 반 학생이 모두 잠재적인 적이 되어 버렸다. 획일적 교육이라고 논술을 접목했다. 초고액 논술 과외가 생겼다. 재능 있는 학생을 뽑는다며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했다. 역시 입학사정관 특별과외와 자기소개서 대필까지 생겨났다. 이명박 정부는 특목고 300개를 만들어서 특목고 문호가 넓어지면, 사교육이 붕괴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특목고가 많아지니 중위권 학생까지 특목고를 노려 보겠다며, 외려 특목고 학원이 번창했다.

    과연 높은 학력을 가진 사람이 신분이 높은 사람으로 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학력은 낮지만, 경제적 수완이 좋거나 다른 방향으로 머리를 잘 써서 높은 사회적 지위를 취득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러나 수완이 좋아서 돈을 많이 번 사람이나, 애초에 신분이 높은 집안 출신 사람들은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한결같이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부단한 교육의 힘으로 올라선 것이라 포장한다. 많은 서민들은 이 포장에 속아 넘어갔고, 몇 푼 안 되는 재산을 털어서라도 교육을 시키고 높은 학력을 자녀에게 안겨주려는 것이다. 이 악순환을 거치면서 ‘높은 학력을 소유하면, 높은 신분을 가진다’라는 빗나간 신화는 더욱 고착화된다.

    대한민국은 냉혹한 자본주의 국가다. 돈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이해, 재치와 수완, 운과 시간이 맞아떨어져야 큰돈을 벌고 신분이 상승한다. 그러나 지금도 교실에서는 ‘좋은 대학 가면, 돈도 많이 벌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거짓에 속아 우리 아이들이 노예 노동이나 다름없는 기계적 문제풀이를 이어가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다. 대한민국 교육이 중병을 앓고 있다.

    임종금(‘뿌리깊은 역사논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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