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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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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이정록

  • 기사입력 : 2010-10-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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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으니

    두부장수는 종을 흔들지 마시고

    행상트럭은 앰프를 꺼주시기 바랍니다

    크게 써서 학교 담장에 붙이는 소사 아저씨 뒤통수에다가

    담장 옆에 사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한마디씩 날린다

    공일날 운동장 한번 빌려준 적 있어

    삼백육십오일 스물네 시간 울어대는

    학교 종 한번 꺼달란 적 있어

    학교 옆에 사는 사람은 두부도 먹지 말란 거여

    꽁치며 갈치며 비린 것 한번 맛볼라치면

    버스 타고 장터까지 갔다 오란 거여

    차비는 학교에서 내줄 거여 도대체

    목숨이 뭔지나 알고 분필 잡는 거여

    호박넝쿨 몇개 얹었더니 애들 퇴학시키듯 다 잘라버린 것들이

    말 못하는 담벼락 가슴팍에 못질까지 하는 거여

    애들이 뭘 보고 배울 거여 이웃이 뭔지

    이따위로 가르쳐도 된다는 거여 -이정록, ‘이웃’ 전문(시집 ‘정말’, 창비 2010)

     

    ☞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공부만 시키는 것이 최선이라는 우리 모두의 인식이 만들어 낸 비극의 한 장면입니다. 넘어가지도 넘어오지도 못하게 합니다. 소리와 냄새 심지어 마음마저. 칼로 무 자르듯 선을 긋고 선착순 뺑뺑이 돌리듯 줄을 세웁니다.

    그 현장 담벼락을 향해 직설적으로 쏟아 붓는 소리에 귀가 멍해지네요. 더 심하게 퍼부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행상인 보고 행동을 멈추고 입을 닫으라니! 장사를 하라는 거여 말라는 거여? 이웃끼리 선 그어놓고 문 잠가놓고 한 세상 어떻게 살아내라는 거여? 앞서 산 이웃들이 산교육을 해야 한다고 콕콕 찌르고 있습니다.

    학교는 가정의 또 다른 이름이고 그 연장선 위에 놓인 또 다른 공간입니다. 학교를 보면 우리의 미래가 보입니다. 학교 안에 소통불능의 울타리가 쳐져 있다면 서둘러 걷어내었으면 좋겠습니다. 등하교 시간에 어깨를 내주고 마음을 연 학생들의 깔깔 웃는 소리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둥글둥글 살아내야 할 삶! 우리가 그어 놓은 선들에 도리어 우리가 거미줄처럼 친친 감기는 건 아닌지요. -최석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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