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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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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눈물- 배한봉

  • 기사입력 : 2010-10-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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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둥근 것들은
    눈물이 많다, 눈물왕국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칼로 수박을 쪼개다 수박의 눈물을 만난다

    어제는 혀에 닿는 과육 맛에만 취해
    수밀도를 먹으면서 몰랐지
    사과 배 포도알까지 둥근 몸은 모두
    달고 깊은 눈물왕국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걸

    나는 눈물왕국을 사랑하는 사람
    입맛 없을 때마다 그 왕국에 간다

    사람 몸 저 깊은 곳
    생명의 강이 되는 눈물,
    그리하여 사람 몸도 눈물왕국 되게 하는 눈물,

    그렇기 때문인가? 사람들은
    둥근 것만 보면
    깎거나 쪼개고 싶어한다

    지구도 그 가운데 하나다
    숲을 깎고 땅을 쪼개 날마다 눈물을 뽑아 먹는다
    번성하는 문명의 단맛에 취해
    드디어는
    북극의 눈물까지 먹는다

    -배한봉, '지구의 눈물' 전문('현대시'2월호, 2009)

    ☞모난 것들은 눈물이 없다. 비뚤한 것들은 눈물이 말랐다. 배배 뒤틀린 몸에는 강이 흐르지 않는다. 그런 몸은 암만 배가 불러도 눈물 왕국이 들어서지 않는다.

    나는 둥글지 않아서 눈물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내 몸속에는 강이 흐르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마신 눈물이 그렇게 많다니요! 온갖 둥근 것을 깎고 쪼개어 몸속 깊은 곳에 눈물왕국 하나 만들고 있었다니요! 그래놓고 나는 또 얼마나 이기적으로 목말라 했던가요?

     그리하여 나는 둥근 것을 보면 두 눈을 바로 뜨고 둥근 것을 향해 세웠던 날을 내려놓게 될 것입니다. 그 달고 깊은 눈물왕국에 어머니의 젖이 흐르는 줄 모르고 살아온 죄를 참회하며 둥근 것을 물고 빨아먹던 입을 떼게 될 것입니다. 북극곰과 아마존의 눈물, 지구의 눈물을 못보고 걸어온 길 위에 눈물을 뿌리게 될 것입니다. -최석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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